빵, 방직기, 그리고 노래 (사유재산에서 저작권까지)

by 나무파파

만약 내가 구운 빵이 내 것이 아니라면, 나는 빵을 구울까? 장발장은 고작 빵 하나를 훔쳐 달아난 이유로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 빅토르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읽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의 처지를 동정한다. 나 역시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감정이 가라앉은 뒤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 모두가 배고프다는 이유로 빵을 훔친다면, 누가 빵을 굽겠는가?’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사냥과 채집뿐만 아니라 남이 모은 식량을 빼앗는 것도 자원 확보 수단이었다. 그러다 농업혁명과 함께 잉여 생산물이 등장하고 집단이 커지면서 인류에 계급이 등장하였다. 지배층은 남의 재물을 빼앗는 행위를 단죄했고,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인류에게 정립되기 시작했다. 내 빵을 빼앗는 이는 국가가 처벌해 준다. 그래서 나는 안심하고 빵을 굽는다. 남는 빵은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벌고 부를 축적한다. 국가가 사유재산을 보호하자 개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그렇게 점차 사회가 발전하자 소유권을 단순히 빵과 같은 실재하는 재화에 국한시키기 어려워졌다. 제빵사는 식빵만 만드는 게 아니라 크로와상, 바게트 등 다양한 빵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빵을 만드는 기술에도 보호받아야 할 자산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바로 특허권과 같이 기술에도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국가가 창발적인 기술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하자, 똑똑한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부를 축적하는 것에 열정을 쏟았다.


그에 대한 역사적 사례가 18세기 영국이다. 영국은 어느 국가보다 빠르게 새로운 기술의 배타적 권리를 인정해 주었고, 이는 또 다른 기술의 발전을 자극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면직물 생산을 폭발적으로 늘린 방직기이다. 플라잉 셔틀(1733년)과 스피닝 프레임(1769년) 등 면직물 생산과 관련 부품과 기술을 특허로 보호하자, 기술자들의 개발 의지가 높아졌다. 다양한 발명품은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생산 과정을 자동화하였다. 그렇게 영국은 산업혁명을 이뤄내며 엄청난 국부의 증가와 함께 해가 지지 않는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에 오른다.


발전하는 기술과 증가하는 자본은 더 많은 무형의 것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국가는 소유권의 범위를 넓혀야 했다. 기술에 이어 창작물에도 보호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싹트며 저작권이 탄생하였다. 저작권의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인쇄술의 발명을 언급해야 한다. 인쇄술 발명 이전에는 창작물의 복제가 어려웠다. 책을 복사하기 위해서는 글과 글자를 아는 지식인이 모든 내용을 직접 필사해야 했다. 하지만 인쇄술이 발명되며 과거보다 책의 복제가 간단해지자 저작자의 권리 보호에 대한 인식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18~19세기 많은 나라에서 저작권이 법제화되었고, 1886년 베른 협약을 통해 국제 저작권 보호 체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창작자의 권리 보호는 문화 창작물의 시장실패를 보완하여 창작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동기를 부여하였고, 이를 통해 인류사회가 향유하는 지식과 문화의 양이 대폭 확대되었다.


그렇게 저작권은 비교적 장대한 역사를 가진 법률임에도 불구하고, 창작자의 권리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이 정립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인쇄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두꺼운 책을 한 장 한 장 복사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대중가요는 음반을 사는 것 외에는 라디오에 흘러나올 타이밍을 기다려 녹음을 해야만 소장 가능했다. 이처럼 복제가 어려워 창작자의 권리를 위협하는 사례가 드물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며 저작권은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되었다.


디지털 세계에서는 버튼 클릭 몇 번이면 데이터가 복사된다. 그리고 또다시 클릭 몇 번이면 데이터를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인터넷이 발달하고 보급되어 디지털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도가 높지 않았다. 그래서 다양한 창작물을 복제하고 보급하는 데에 불법이라는 인식이 부족했다. 그렇게 저작권에 대해 미숙한 시민의식과 급속도로 발달된 기술이 만나며, 수많은 창작물이 창작자에게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채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되었고, 새로운 창작 의지는 점차 줄어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창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1987년 한국저작권심의위원회가 설립되었고, 저작권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2006년 한국저작권위원회로 조직을 확대개편하였다. 저작권 위원회는 스마트쉐어링 캠페인, 초중고 대상 저작권 교육, 저작권 보호 자율준수 프로그램 등 다양한 캠페인과 교육을 통해 시민의식을 높였고, 무수히 많은 저작권 분쟁을 해결하며 창작자들의 권리 보호에 앞장섰다. 그렇게 불과 십 수년 만에 저작권에 대한 올바른 시민 의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불법적인 공유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감히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국가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 뉴욕 한복판에서 BTS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독일 사람과 영화 ‘기생충’에 관해 토론한다. ‘오징어게임’을 본 브라질 친구와 우리나라의 전통놀이를 즐기고, 이탈리아 중소도시의 한 서점에는 한강 작가의 소설이 전면에 전시되어 있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개발도상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지금의 선진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기까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한 저작권은 결코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실재 재화에서 기술, 그리고 창작물까지, 국가가 보호하는 개인의 사유재산의 영역은 확대되어 왔고, 이는 인류의 발전을 이끌었다. 보호 대상은 어디까지 늘어날 것인가? 이와 관련해 인류는 새로운 과제를 마주한다. 바로 인공지능이 생성한 결과물에 대한 권리이다.


최근 챗GPT를 통해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생성 이미지가 있다. 바로 지브리풍 ㅇㅇㅇ이다. 가족사진이나 연인과의 셀카,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챗GPT에게 부탁하면 서정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지브리풍의 그림체로 재탄생시켜준다. 결과물을 보고 있자니 이런 의문이 든다. 누군가 이 그림을 단순히 소장하는 걸 넘어 수익 창출에 활용한다면, 그림의 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 원래 사진의 주인? 챗 GPT를 만든 오픈 AI? 아니면 지브리 스튜디오? 이와 유사한 문제는 무수히 나올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생성형 인공지능에게 김영하 작가 필체로 로맨스 소설 작성을 요청해 얻은 결과물을 출판한다면, 창작에 대한 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


이처럼 앞으로 거대언어모델(LLM) 기반의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을 활용한 창작물의 권리 귀속 문제는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 낼 것이다. 아직 이러한 분쟁이 사회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시간문제라 생각한다. 지금은 첨예하지 않은 문제라 해서 묵과할 수는 없다. 보통 법은 사회 인식이나 기술 발전 보다 한 발 늦게 움직였지만, 이번만큼은 다르길 바란다.


우리 사회가 특허권과 저작권으로 소유권을 확장하는 과정에는 많은 사회적 반발과 논쟁이 수반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저작권법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성장통처럼 그러한 갈등과 숙론의 과정을 마친 인류는 새로운 창작의 영역을 마주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029 말의 품격(이기주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