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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A Jan 05. 2019

면접의 종말.

언젠가는 일하는 사람이 귀해지는 때가 오겠지.

오랜만에 안경을 벗었다. 일회용 렌즈를 산지 이년이 넘어서는데도 다 쓰지 못했다. 렌즈를 끼고 차분히 화장대 앞에 그나마 얼마 있지도 않은 장비를 주섬주섬 꺼내본다. 이건 이년 전에 산 마스카라인가. 아, 이건 사 년 전에 선물 받은 블러셔이군. 유통기한 따윈 개나 줘버리자. 쓰지도 않는 색조화장품을 사 모으기엔 백수의 나에게 전투의 날들이 얼마 없다. 


사람들이 묻는다.

 일하고 싶지 않냐고. 
물론, 일하고 싶은 마음은 든다. 


매일 출근해서 모니터 앞에 앉아 점심시간이 오는 줄 모르고 일에 몰두하는 시간, 그 집중력에 빠져들고 싶다. 돈이 아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일할 때의 쾌감을 나는 안다. 즐거운 일, 재미있는 일 말고 해야하니까 그리고 익숙하니까 퇴근시간을 향해 규칙적으로 최강의 능력치를 끌어올리고 했다. 그 때의  원더우먼 같은 내 모습이 그립다. 


되도록 연봉 높은 곳, 연차도 적당한 곳에 이력서를 메일로 보내본다. 무려 워크넷을 통해서다. 국가에서 재취업자를 위해 만든 전국 방방 곳곳,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일하게 만들겠다는 집념이 만들어낸 시스템 치고는 사과 폰에서 잘 돌아간다. 일주일에 한 번 메일을 보낸다. 그렇게 세 달을 보내고 나면 나는 더 이상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더 이상은 없다. 


이제는 더 이상 기댈 곳 없는 완전한 백수가 되기 전 워크넷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한 나는 원서를 넣는다. 매주, 꼬박꼬박. 그러나 연봉과 연차가 맞는 일들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이 곳에 지원을 하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 정도로, 연봉은 낮고 여자인 내게 맞는 일은 없다. 다들 알아서 추천받고 가는가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추천받았다가는 지인의 체면을 걱정하거나 지인을 욕하는 상황이 올 것 같은 촉이 온다. 결정적으로 그마저도 귀찮은 백수의 게으름은 매번 메일을 보내는 것도 최대의 노력을 한 것이다. 


아, 어쩌다 내가 면접을 보게 된 걸까. 

뒤늦은 후회가 밀려오며 오랜만에 마스카라로 속눈썹을 한껏 올려둔다. 

월급 180만 원, 세전이다. 게다가 2개월 단기 계약. 업무는 대충 읽어보니 잡다한 일을 다해야 할 것 같다. 나와는 전혀 맞지 않은 직급과 일, 그럼에도 면접을 가기로 한 건, 1차 서류 전형에 붙었다는 문자 때문이었다. 2명을 뽑는데 지원자가 26명 정도였다. 나 때문에 떨어진 한 명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겸사겸사 세상 구경도 해보고. 그리고 경력에 맞춰 임금은 건설기술자에 맞게 조절 가능하다니까. 


한편으론 이 경력에 떨어지는 것도 우스울 뻔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쓸데없이 사회생활을 오래 한 나는 꼰대이다.


여기저기 취업에 대한 글을 읽으며 연봉과 근무조건에 대해 까다롭게 구는 사람이라는 댓글을 보았다. 나처럼 지원해놓고 면접까지 보러가면서 궁시렁대는 그런 비슷한 일에 대한 비판들이다. 


꼭 고용하는 쪽에서만 면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고용이 되는 쪽에서도 면접은 중요하다. 면접관의 자세와 면접 보는 장소, 진행하는 방법까지 모든 것이 그 회사를 말한다. 얼마나 체계가 잡혀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열려있는지 짧은 순간이지만 꼰대가 되버린 내겐 얼마나 꼰대적인 사람들인지 순식간에 읽힌다. 물론 그건 내가 이제는 닳고 닳은 사회인이기 때문이다. 간절히 취업을 바라고 있던 첫 직장 면접에선 나 역시 까막눈이었다. 


제주도의 가을은 겨울을 맞기에는 너무 따뜻하다. 가벼운 옷을 입고 혹시 모르니까 포트폴리오를 아이패드에 하나씩 집어넣는다. 다른 이들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첫 번째로 대기장소를 안내받았다. 일찍 도착한 나를 보고 그제야 사람들은 면접 준비를 시작한다. 내가 면접을 보기로 한 곳은 관공서는 아니지만 정부의 정책을 현장에서 실현시키는 무슨 센터이다. 사기업도 아니고 공기업도 아닌 애매한 경계선은 임금에서부터 느껴지긴 했다. 월급은 공무원 같아도 분위기는 예측불가, 어쩌면 좋을지도 모른다는 막역한 기대감과 한 번쯤은 정책이란 것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호기심이 여기까지 나를 이끌었다. 


일찍 도착한 나와 비행기를 타고 조금 늦어버린 첫번째 면접자 사정 상, 내가 첫 번째 면접자가 되었다. 훗, 기대되는 군. 정도의 설렘을 가지고 면접관이 있는 장소를 향했다. 


소장급 두 명, 그리고 부소장급 내지는 오래된 실장급 두 명. 소장급은 관공서에서 나왔고 실장급은 외부에서 모셔온 전문가 느낌이다. 순간, 저를 뽑아주세요.라는 마음은 사라졌다. 


건축 일을 하면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전문가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예술하는 사람이다. 반은 사기꾼이었고 반은 금수저였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을 내가 아는 게 아니기에 다른 부류의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예술을 논하는 사람 치고, 디자이너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고 디자인을 강조하는 사람 치고 일다운 일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건 순전히 나의 운이 더럽게 나쁜 탓이다. 


이력서에 붙은 안경을 쓰고 집에서 찍은 사진과 전투력을 한껏 끌어올린 나의 모습을 보고 다들 한 마디씩 한다. 이력서의 사진을 바꾸라는 둥, 실물이 훨씬 나으시네요.라는 둥. 칭찬을 듣는 듯 환하게 웃었지만 차라리 안경 쓰고 나올 껄 이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문득 웃으며 그 얘길 던지는 면접관을 보며 엉뚱한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만일 대학을 졸업하고 연봉을 쫓아 입사하지 않고 대학원을 거쳐 연구소에 들어가거나 공무원 시험을 봤다면 내가 면접관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나도 저렇게 얘기했겠지.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론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용서가 되는 건 아니다. 


한참을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여행 다녀온 이야기, 경력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정책에 대한 이야기. 이 곳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아느냐. 그리고 지원한 일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도 아느냐. 등등. 최대한 솔직하게 대답했다. 뭐, 이름은 거창하나 그 정책, 결국 아직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기본적인 계획조차도 없는 거 아니냐는 말을 아주 공손하게 말이다. 그거 소위 선진국에선 한물 간 정책이야. 라고 말하고 싶었다. 어디선가 베껴도 좀 다르게 베끼지. 그대로 가져오는 건 또 머야. 라고 말하고 싶었다. 


좋은 계획은 세금을 얼마든지 써도 좋다. 이 분야에서 어느 정도 굴러먹은 경력이 있는 내게는 그 좋은 계획이라는 것 속에 숨어있는 허수와 그 단물을 쪽쪽 빨아먹고 있는 전문가 집단이 보인다. 그걸 모른 척 방관하는 공무원들과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이름을 더 알릴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관심사인 교수들까지. 한 가지의 정책이 발표되기까지 꽂힌 빨대들이 보인다. 나중에 덕분에 좋아졌다고 얘기하는 일반 시민들이 꽂은 빨대가 가장 작다. 


그 빨대 꽂은 사람들 중에 유난히 선한 것을 이야기하고 바람직한 사회상을 논하고 디자이너의 사명에 헌신하는 이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이다. 어슴프레 투영되어 보이는 것 같은 느낌, 그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을까. 나는 면접관 앞에서 내가 얼마나 잘났는지와 특별한 경력을 지녔는지를 자랑했다.


 어디 뽑아볼 테면 뽑아봐.라는 느낌으로.


역시 뽑히지 않았다. 그렇게 두 달, 세전 월급 180만 원의 일자리를 놓쳤다. 비행기 타고 왔다는 곱게 원피스 입고 나타난 어린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면접을 잘 보이지 위한 자리로 생각한다. 그러나 재취업자에게는 잘 보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다. 내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일지 이 곳은 어떤 분위기인지, 사장님은 배가 좀 나왔는지, 직원들의 분위기는 어떤지, 사무실은 볕이 잘 들어오는지 기타 등등. 



일보다 더 어려운 건 사람이고, 사람보다 더 무서운 건 조직이다. 



간절히 어떤 일이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어떤 타이틀이라도 주기만 한다면 행복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 번 뛰쳐나와 봤지 않은가. 지금껏 겪어온 일들을 갑자기 밀려오는 불안함과 좌절감에 잊어 버리고 불나방이 되지 말자. 


언젠가는 함께 일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함께 일하는 사장님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또 뜬다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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