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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A Mar 09. 2017

추억 vs 현실

기억의 변신을 대하는 백수의 자세.

오늘의 도시는 지난 초겨울과 다르지 않다. 나는 백수가 되었지만 세상은 변함이 없다. 어쩌면 세상이 변함이 없어서 내가 달라져야 하는 것일지도.


오래간만에 '사무실'을 찾는다. 격식 없는 인터뷰는 시작부터 어설프다.  11시로 정해진 시간에 맞춰 도착한 이는 나밖에 없다. 오히려 나를 보고 당황한 듯 회의실이 사용 중이라 미안하다며 창고로 사용되는 다용도실로 안내한다. 훈훈한 덕담이 난무했던 인터뷰가 끝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선다.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 팀 정도의 단위밖에 안 되는 작지만 탄탄해 보이는 회사와의 만남이었다. 나의 연봉과 해야 하는 업무 사이의 괴리를 인정하자 대표는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표정을 읽은 나는 더 솔직해진다.

제가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적응하는 시간이 회사로는 손해이니까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절절함보다는 여유가 튀어나온다. 회사가 나를 뽑아줘서 너무 감사했던 것은 애송이 시절 20대 한 번으로 끝이 난 건가. 너와 나의 연결고리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면 우린 잘못된 만남임을 쿨하게 인정한다.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이 이렇게 존재할 수 있음을 알려준 기회에 감사를 전하며 명함 한 장을 받아 들고 나온다. 실업급여에 증명해야 하니까.(대표가 보여준 자세와 회사의 분위기는 좋았다. 다만 나의 경력과는 맞지 않았을 뿐)


강남의 큰 대로 사이로 들어서면 보이는 4층짜리 작은 건물. 얼핏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강남스럽지 않은 빌라들이 가득 찬 작은 골목길이다. 문득 대학시절 드나들었던 교수님 사무실이 떠오르며 노동착취를 경험이라 착각했던 학생시설이 떠오른다. 반면 대기업을 들어가 대로에서 바로 보이는 번쩍거리는 대형빌딩들만을 드나들었던 날들도 떠오른다. 묘한 느낌이다. 유리문을 열고 나오며 뒤돌아보지 않는다. 강남대로로 나선다. 활짝 웃는 나의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다.


백수인 내가 스스로에게 가장 경계하는 것은 지난날의 화려함을 현재에 비추지 않는 것이다. 단순히 잘 나가는 직장인에서 실직자로 변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걱정이 나를 좀먹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실패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대학도 재수 없이 갔고 원하는 회사에 취직도 했고 결혼이야 힘들게 했지만 결국 했으니까. 그렇기에 백수, 실직상태가 실패처럼 느껴지는 것은 처음으로 겪는 좌절이다. 스스로 선택하든, 등 떠밀려 나왔든 현재의 실직상태에서 중심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마치 거친 바다에서 스스로 노젓기보다 바람이 불기만 바라는 자포자기 상태가 돼버릴 것 만 같다. 실패는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아가고 있지만 부정과 연민으로 가득 차 세상을 탓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희망'을 노래하며 실업급여를 타내는 긍정적이고 여유로운 백수의 그림자는 이제는 굳어져버린 머리로 젊고 영리한 후배들과 경쟁하며 높아진 콧대를 낮춰야 하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누군가는 마음먹기라 말하며 노력하라 격려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적어도 지난날보다 초라해지지 않을 기본 생활비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는 사람들은 그 시작이 경제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너무 쉽게 간과한다. 가난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만드는 정책이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허술한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부자가 되고 싶은 열망에 휩싸인 사람들 사이에서 그저 먹고 살 정도만을 바라는 소시민들의 작은 바람을 좀 더 자존심을 지켜주며, 당연한 사회 구성원의 자격으로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어쩌면 남들은 절절하게 직장을 구하고 있을 그 인터뷰를 그렇게 심심하게 마치고 나오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지금의 소신이 언젠가는 무너질지도 모르겠다는 어렴풋한 예감에 씁쓸해진다.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향수'에 젖어든다. 그토록 치열했던 눈치보기, 다들 불안해하던 승진의 문턱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사원이 너끈히 발주처를 상대하는 실장이 된 모습까지 나만이 기억하는, 나만을 위한 아름다운 기억들이 떠오른다.


무드셀라 증후군 : methuselah syndrome  추억은 항상 아름답다고 하며 좋은 기억만 남겨두려는 심리


나는 지금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의 생존을 위해 악다구니를 써대는 순간 사이마다 눈부시게 빛났던 '나, 오로지 나만 기억하는 나'가 있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변했는가에 놀랐던 때가 오기까지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무럭무럭 성장하는 과정이 있었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나는 상사에게 인정받는 사원이어서 회사 가는 날이 좋았었고 일 잘하는 대리여서 뿌듯했고 승진에 누락되지 않아서 행복했다. 그 추억이 퇴사 순간에는 또렷하던 부조리함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일들로 바꿔 놓으려 하고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던가, 너라면 달랐을 것 같냐는 변명들이 희망퇴직을 선택하게 했던 이유를 용서받지 못할 절대 악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쨌든 나 역시도 9년 동안을 몸 담으며 같은 방향을 달렸던 일원이었다. 좀 더 달렸다면 지금쯤은 더 강한 부조리함을 겪으며 나가지도 못하고 내 몸을 썩게 만드는 욕을 입에 달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나와 보면 내가 누렸던 편안함이 기억나고 화려한 나를 추억하게 된다. 나약한 나의 단면이 무척 인간적이다. 이리저리 뻗어가는 나의 생각들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며 저 멀리 안드로메다까지 뻗어본다.


그러나 나는 어쩌면 나의 존엄성을 무너뜨려야 할지도 모르는 실직상태를 선택했다. 나라의 배려에 감사하나 충분하지 못하다. 언젠가는 부모의 배려에 기대야 할지도 모르는 못난 자식이 된 것이다. 안드로메다로 뻗어간 생각을 들여다보며 내 맘 속 한편의 불안함을 인정한다. 마음가짐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을 백수로써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시 뻔뻔하게 나 스스로에게 당당해져야겠다.


직장인이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직장인의 생각이 변해야 한다. 나라, 회사, 상사, 후배,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들이 나를 사회에 적합한 인간으로 만들어 왔던 지난날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라의 정치에 무관심했고, 회사의 부조리함을 눈감았고, 상사의 비인간적인 행동에 저항하지 않았으며, 후배를 하수인으로 바라보아야 적당히 물들어 살 수 있는 날들이었다. 표현이 과하다 느껴지지만(그렇게까지 속물은 아니었다) 그건 지금 내가 무드셀라 증후군이라 그런 거고, 냉정하게 바라보자. 뒤틀려진 사회 속에서 잘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면서 내가 얼마나 뒤틀려져 있었던가를.


인터뷰는 딱 지금 내게 필요한 이벤트가 되어 주었다. 단단히 마음먹고 들어선 백수의 길이다. 쉽게 직장인으로 돌아가지 않을 테다.

뒤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저 사이에 앉아서 보는 뷰가 더 멋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그림자가 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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