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2일
달빛이 방전될 무렵, 우린 그때를 새벽이라 불렀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그때를 기회로 여긴다고 했다. 무엇을 하든 그들처럼 나도 기회로 삼아보고 싶었다.
생각
게으른 늦잠은 '깨진 유리'와 닮았다. 채워지지 않은 잠은 '완전한' 잠이 깨진 것이고, 무질서한 게으름은 '질서 있는' 시간이 깨진 것이다. 깨진 유리는 주워 담기가 쉽지 않다. 한번 내어주면, 잠도 시간도 주워 담을 수 없다.
행동
오늘도 행동의 시작은 새벽이었다. 최근 한 달 동안 나는 새벽독서 시간에, 초유기체인간*과 '아미엘 일기'를 병행해서 읽고 있다.
대화
아미엘은 나를 향해 손짓했다. 커피를 마실 거냐고 묻는 듯했다. 곧, 아미엘에게 다가갔다.
나는 아미엘에게 물었다.
"아미엘에게 새벽은 어떤 의미야?"
'새벽?, 나에겐 태어나기 위한 행동의 시각이야*
그의 일기를 읽기 전에는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짧은 한 마디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어나기 위한 행동이라...' 아미엘! 나도 그 말 조금은 이해가 돼. 작가는 생각이 끊임없이 태어나는 사람이라고 느꼈거든.'
나는 새벽이야말로 볼 수 없고 알지 못했던 틈을
스스로 채우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빈틈을 알면서 채우려 하지 않지, 매일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걸 깨닫기 어려워하고"
아미엘은 사유의 저 위 어딘가에서 거니는 듯했다
"그 빈틈은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데?"
갑자기, 아미엘의 막 태어나고 있는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야, 무궁무진한 정신의 층위지"
"거기서부터 아미엘의 행동이 시작되는 거고?"
아미엘은 새벽을 '하루의 스위치를 켜는 시간'이라고 말하며, 커피잔을 들었다.
나는 커피 한 모금의 카페인이 온몸으로 퍼질 때, 정신의 스위치가 켜지는 것을 떠올리며, 아미엘의 말을 격하게 공감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말하는 '기회'란 이런 것이었구나!
아미엘은 하루의 스위치라는 그 의미가 자연의 액즙을 정신에 퍼져서 집중시키*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한 마디는 내 머릿속에 카페인보다 강한 자극을 주었다.
오늘 나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한 줄을 남겨볼까 한다.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이 시각 부지런히 '태어나는 행동'들을 해나가야겠다고 말이다.
무엇보다도 새벽을 채움으로써, 나의 하루가 단단해짐을 느끼고 있다. 마음을 붙들어주는 힘을 받고 있는 듯하다. 생각의 닻을 끝없는 내면에 박아두고 나면, 마음에 들지 않는 하루였을지라도 매일 '나'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선택권이 주어지지만, 집어드는 사람들에게만 기회가 되는 시각이 새벽일 것이다. 사유의 틈을 채우고, 정신적인 충만을 함께 얻을 수 있는 이때, 나는 정신의 징검돌*을 또 하나 놓아본다.
< 오늘도 독자분들과 소통하며, 징검돌을 하나씩 놓습니다. 글벗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851년 4월 2일 , 아미엘의 일기 중.
* 아미엘일기, 아미엘, 동서문화사, 2019.
* 초유기체 인간, 정연보, 김영사, 2017.
[빛작 연재]
화 5:00a.m. [빛나는 문장들]
수 5:00a.m.
[자연이 너그러울 때 우리는 풍요롭다]
목 5:00a.m. [빛나는 문장들]
토 5:00a.m. [아미엘과 함께 쓰는 일기]
#아미엘 #징검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