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정보혁명 시대의 소비자는 영리하다. 이제 단순한 일방적 광고 메시지는 잘 먹히지 않는다. 연예인이 제품을 들고 나와 멋지게 웃어주면 물건이 팔리던 시절은 지났다. 제품 가격과 속성에 따라 고관여 저관여를 나누던 광고 이론도 현재는 별로 유효하지 않다. 온라인 시대의 소비자는 정보를 자유자재로 다룬다. 적극적 정보 공유가 이루어지고 언제 어디서든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필요하다면 정보를 만들기까지 한다. 이제 소비자는 기업의 광고 메시지보다 개인의 사용 경험을 더 신뢰한다. 기업들은 신뢰받는 개인 채널에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 리뷰를 의뢰한다. 리뷰는 페이스북이던, 유튜브던 어느 채널에서나 가장 인기 있는 카테고리다.
경험을 파는 것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블로그에 정보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웃이 많다는 한국의 대형 포털 블로그 리뷰들은 업체들의 바이럴로 점철된 지 오래다. 그러자 사람들은 보다 개인 일상에 집중된 SNS에서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는데, 이 역시 오래 지나지 않아 광고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드는 방식의 광고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개인 채널 운영에는 시간이 든다. 블로거나 유투버, 그 외 소셜 이용자들이 기꺼이 시간 들여 게시물을 제작하는 건 소비자 이익을 위한 봉사정신이 투철해서가 아니다. 개인 채널이 어엿한 마케팅 채널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기업 의뢰로 작성한 포스팅이라 해도 어쨌든 개인 경험이 담겼으니 휘황찬란한 미디어 광고보다는 신뢰받는다. 연예인 부럽지 않은 인기의 온라인 크리에이터들도 많이 생겨났다. 인스타그램에서 각광받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경우만 보아도 인기 있는 일반인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해진 것이 바로 콘텐츠다. 넘쳐나는 정보 공유 속에서 사람들 눈에 들기 위해서는 남다른 재미를 포함해야만 한다. 온라인이 막 보편화되기 시작했을 당시에는 정보만 올려도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다. 그땐, 아이템이 중요했다. 지금은 포털에 검색어 하나만 쳐도 다 볼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검색 결과가 나타난다. 노출은 매출과 직결되는 일이어서 많은 사업자들이 바이럴 전문 업체에 매 달 수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행태가 자리 잡았다.
하지만 웹 마케팅의 전문가 다수가 상위 노출에 연연하기보다 질 높은 게시물을 꾸준히 제작하여 올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월간 Bi에 게재된 온라인 마케팅 전문가 정진수 씨 칼럼에 따르면, 잘 만들어진 콘텐츠는 검색 알고리즘마저 뛰어넘는다고 한다. 날이 갈수록 똑똑해지는 검색 봇은 특정 키워드 반복의 매크로식 콘텐츠를 걸러내는데 열중이다.
사람들은 같은 정보라면 더 재미있고 참신하게 만들어진 쪽을 선호한다. 정보 그 자체는 이제 별 귀할 것 없이 들판에 널린 자갈처럼 굴러다닌다. 정보는 원석이며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정보의 이면에서 새로운 정보를 찾아내서라도 매력적으로 만들어내야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중요해진 것이 바로 콘텐츠의 방식이다. 무얼 보여주느냐보다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나 이상의 채널을 운영하는 개인이라면 수없이 고민해보았을 문제다. 좋은 콘텐츠란 무엇인가? 게시물을 꾸미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강좌나 포스팅은 많다. 내가 여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건 기법이나 기술이 아닌 좋은 콘텐츠에 반드시 담겨야 할 마음을 움직이는 어떤 힘에 대한 내용이다.
나는 부업을 달고 사는 생계형 감독이다. 아이가 생기며 생계 쪽에 더 무게 중심이 쏠린 탓에 지금은 작품보다 부업을 더 많이 한다. 종종 강의도 하는데 그중 요즘 제일 인기 있는 건 학생들 대상의 스마트 폰 영화 제작 과정이다. 감독으로선 썩 훌륭하지 못해도 선생으로선 제법 괜찮은지 후기가 나름 괜찮다.
많은 영상 미디어 관련 강의가 제작 스킬에 중점을 둔다. 장비를 능숙하게 다뤄 멋지게 촬영할 수 있도록. 하지만 내 강의는 절반이 프리 프로덕션 과정이다. 기획과 아이디어, 시나리오에 무게를 가장 많이 둔다. 기술의 활용보다 기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일깨워주기 위해서다. 영화의 생명력은 관객으로부터 나온다. 관객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영화란 무엇일까? 아이들에게 답을 말해주진 않는다. 실습과 토론, 발표, 조사를 포함한 생각 훈련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려 한다. 10대 아이 혼자 간단한 기획서를 쓰고 실현 방안을 계획하여 구성과 시나리오 하나를 다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답은 스스로 찾도록 한다. 되도록 모두의 답이 다르게. 이때,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무얼 말할까의 주제가 아니라 주제를 어떻게 말할까 하는 표현 부분이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되묻는다. 너는 종족이 뭐냐?
당연히, 사람이다. 그럼 누구에게 보여주고자 영화를 만드느냐? 가장 아끼는 인형이나 로봇은 아닐 거다. 귀여운 반려동물도 아니고. 아빠나 엄마, 친구들. 혹은 불특정의 누군가.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영화든 공연이든, 음악과 미술, 책이나 만화, 모든 시청각 장르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관객도 사람, 만든 것도 사람. 그렇다면 사람의 이야기를 하면 된다.
동물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 동물들이 사람처럼 행동하고 사람 사이 감정을 표현해서다. 의인화에 의한 모든 콘텐츠도 궁극적으로 사람 이야기다. 월. E의 표정에서 우리는 인간의 외로움을 본다. 토이스토리는 장난감 속성에 포인트를 맞추었다기보다 추억과 그리움을 장난감에 투영하여 풀어낸 애니메이션이다. 다른 장르에서도 마찬가지다. 매개가 다를 뿐 전부 사람의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에는 진정성이 담겨있다. 좋은 콘텐츠에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담겨있고. 진정성은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며, 마침내 좋아요와 공유 버튼으로 손이 가게 이끈다. 사람 없이는 진정성도 없다.
모든 콘텐츠에 사람이 직접 나올 필요는 없다. 사람은 다른 형태로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생 택쥐페리는 상자 그림 한 장에서 소년의 쓸쓸함과 천진난만함이 동시에 묻어 나오도록 만들었다. 사람 사는 세상이기에 거의 대부분 요소에 사람이 담겨있다.
중요한 건 감정이다.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주요 감정을 콘텐츠에 담아야 한다. 몰입을 일으키는 모든 요소가 재미이다. 슬픔과 연민, 기쁨과 환의, 의욕, 자극, 웃음, 긴장, 공포, 하물며 지루함까지. 그 어떤 감정이라도 ‘공감’을 건드릴 수 있다면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좋아요와 공유 버튼을 누르도록 손가락 신경에 자극을 주는 건 뇌가 아닌 심장이다.
우리 브랜드에 어울리는 콘텐츠 아이템을 뽑았는데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막막하다면 사람과 공감을 중심에 두자.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역시 인생을 산다. 살며 겪은 감정들을 찬찬히 떠올리며 자신 안에 집중하자. 나를 들여다보는 행위로부터 좋은 콘텐츠가 탄생한다. 제작자 자신 맘도 울리지 못하는 콘텐츠가 타인의 관심에 들 확률은 없다고 봐도 된다.
콘텐츠란 무엇인가? 그 넓은 범위를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긴 어렵다. 특히, 마케팅에서의 콘텐츠란 아무거나 가져다 붙이면 다 그렇게 부를 수 있을 것처럼도 보인다. 몇 줄 글부터, 짧은 동영상이나 카드 뉴스가 대하소설이나 장편 영화, 복잡한 논문보다 더 깊이있고 유익한 가치를 전달하지 못할 것도 없다. 어쩌면 성의보다 중요한 건 성심이다. 마음을 다해, 그 마음이 자아내는 감정을 담자. 그런 감정은 내 안에 모두 있다. 사람에게 있다. 고객은 모두 사람이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이 좋은 콘텐츠 제작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