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는 외로움을 안 탄다?
나는 직업상 하루 종일 나가지 않을 때도 있지만 급하게 방송이 잡히거나 행사 일정으로 지방을 가거나 하면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까지 집에 못 들어갈 때도 있다. 토끼를 키우기 전 나는 강아지를 좋아하는 dog person이었다. 고양이처럼 도도한 매력보다는 나를 따라다니는 강아지가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룸에서는 짖어대는 강아지를 키우기가 힘들고 강아지가 주인이 나간 후 하염없이 문만 바라보고 있는 사진과 영상을 본 후 나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강아지가 내가 없는 시간 동안 나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는 너무도 슬픈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피비를 데리고 와서 폭풍 서칭을 해보니 ‘토끼는 사회적인 동물이라 전혀 외로움을 안 탄다. ’라는 정보를 보게 되었고, 내심 피비를 데리고 오면서 마음이 편했다. 내가 집을 비워도 이 아이는 외로움을 타지 않을 테니 부담감이 줄어든 기분이었달까?
그런데 내가 느껴본 바로 토끼도, 아니 토끼는 외로움을 탄다. 그렇다고 우리 토끼 외로울 테니 두 마리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하면 큰일 나기 쉽다.
두 마리 이상의 토끼를 키우기 위한 합사는 매우 어렵고 희박하기 때문이다. 사실 토끼의 합사는 어렵지만 합사에 성공하게 되면 토끼 두 마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서 같이 붙어서 지낸다. 그들은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생활한다. 그래서 보호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고 토끼 보호자들은 말한다.
그들이 정말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면 굳이 둘이 그렇게 붙어 다닐까?
또 한 마리를 키우는 경우(나와 피비의 경우처럼)는 그 토끼랑 보호자가 교감이 잘 이루어졌을 경우에 그 토끼는 보호자에게 뜻밖의 신뢰감과 사랑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갑자기 달려와서 보호자의 다리에 기대어 눕는다든가 또는 50번을 불러도 절대 오지 않다가 한번 ‘피비야~’하고 이름을 불렀는데 달려온다든가 하는 등 말이다.
이런 행동을 토끼가 보여주는 경우에는 그 토끼는 보호자와의 유대감을 형성하는데 굉장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고 또한 보호자와 함께 있을 때가 좋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토끼가 사회적 동물이라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 생각한다면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얼마 전 토끼를 키우면서 알게 된 분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토끼는 원래 무리 생활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무리라고 생각하게 되면 계속 그 무리와만 소통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피비와 소통이 굉장히 잘 된 것을 보고 아마 피비는 나를 본인의 ‘무리’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이 글을 보고 함부로 토끼의 합사를 시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토끼는 ‘영역동물’ 이기 때문에 본인의 영역에 누군가가 들어오는걸 굉장히 싫어한다. 또한 같은 성별이라면 더더욱이 자신의 영역에 오직 해는 나 하나여야지 하늘 아래 해다 또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로 싸워 하나가 심하게 다치거나 죽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성이 다르다면 조금은 합사가 가능한 경우가 더러 많다고는 하지만, 성별이 다를 경우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것이 있다. 바로 ‘중성화’ 과정이다.
중성화가 없이, 또는 이미 발정이 시작된 후 하는 합사는 굉장한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성별이 같은 경우 역시 중성화과정을 거치지 않은 토끼는 다소 사나운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두 경우 모두 중성화는 필수다.
여하튼 나는 피비만 생각해서 다른 토끼를 데리고 올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그러던 나도 잠시 친구네 토끼를 맡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너무도 무지했던 나와 친구는 친구네 토끼 (이름은 랄라)를 바로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서 이동장 문을 열어 피비와 같이 지내게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아찔한 일인 것이, 둘은 같은 성별에 중성화도 되어 있지 않았다. 거기에 피비의 영역으로 완전히 뿌리 박힌 그 원룸에서 피비는 방목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랄라가 피비의 영역에 침입을 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피비는 꽤나 랄라를 귀찮아 했지만 많이 참아주었다. 랄라가 피비를 졸졸 따라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타고나길 착하게 태어난 피비는 랄라가 본인보다 1달이나 늦게 태어난 아기니까 봐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종종 랄라가 피비를 귀찮게 하고 피비 밥을 탐하고 피비 자리를 탐했지만 피비는 랄라를 물거나 위협하지 않았다.
딱 한번, 정확히 내 눈으로 보질 않아서 정황은 알 수는 없지만, 까불던 랄라가 피비에게 화장실로 불려 가 혼쭐인 난 적이 있다. 내 책상에서 화장실이 보이지 않아 내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던 나는 화장실에서 랄라가 혼비백산에서 뛰쳐나오는 걸 보고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가 본 화장실에서 태연히 서 있는 피비를 발견했을 뿐이었다.
애기여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피비 언니만 따라다니던 똥꼬 발랄 랄라.
아마 랄라를 봐주다 봐주다 욱하는 찰나의 순간이었나 보다 하고 추측할 뿐이었다. 둘은 어쨌건 남들이 겪는 ‘둘 중 한 마리가 죽을 때까지 싸운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사람을 좋아하지 않던 랄라와 사람을 좋아하던 피비의 동거는 그리 맞지가 않았다. 둘의 성향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랄라는 다시 원래 엄마에게 돌아갔고 피비는 나와 쭉 살았는데, 피비는 내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그쪽으로 쫄쫄, 내가 설거지를 하면 부엌 쪽으로 쫄쫄, 내가 가는 곳마다 쫄쫄 쫄 따라다녔다. 소위 ‘껌딱지’라는 별명이 붙어 있을 만큼 피비와 나는 굉장히 친밀했다.
사실 토끼는 사람이 자꾸 만지고 보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하룻밤만에 도 폐사를 할 수 있는 굉장히 스트레스에 취약한 동물이다. 그럼에도 피비는 우리 집에 온 첫날부터 시작된 나의 애정공세를 싫어하지 않았고, 매일 피비를 물고 빨고 하던 나와의 정서적 교류조차 너무나 잘 이루어졌었다.
내가 ‘피비가 이랬어요, 피비가 저랬어요. ‘하고 카페나 SNS에 올리면 달리는 댓글들은 항상 ‘와 우리 토끼도 저랬으면... ’ ‘우리 00 이도 안아봤으면...’ 등등 부러움을 한껏 실은 글들이었다.
대신 나 역시 피비의 그런 성향을 알기에 최대한 외부 약속을 잡지 않고 친구를 만나도 우리 집에서 만나거나 웬만하면 피비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남들은 2박 3일 정도는 토끼 혼자 두고 여행을 가기도 했지만 내가 없는 공간에 혼자 있으면 날 기다릴 피비를 알았기에 그렇게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피비를 혼자 두지 않고 꼭 누군가에게라도 부탁하고 떠났다.
피비가 생후 2주가 되던 날부터 살았던 집이기에 피비가 다른 집에서 지내는 건 큰 스트레스가 될 거라고 판단해서 나는 내가 여행을 가더라도 피비를 어딘가에 호텔링을 하지 않고 꼭 피비를 집에 두고 다른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부탁해서 잠시라도 들러 줄 것을 당부했었다.
일단은 본인의 영역에서 벗어나 두려움을 주고 싶지 않았고 내가 없는 외로움을 느낄 아이가 본인 영역에서의 안정감은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2층 침대를 사고 잠을 자는 동안은 피비는 1층에서 혼자 있었는데 내가 잠을 자고 1층으로 내려오면 늘 신나 하면서 토끼가 신나면 귀를 흔들면서 몸을 흔드는 행위인 ‘빙키’를 하곤 했었다.
내가 외출을 했다가 들어와서 ‘피비’ 하고 부르면 부리나케 달려와서 나를 반기기도 했었다. 나이가 들고 나서는 ‘엄마 몇 시간만 놀다 올게’ 하고 약속하고는 약속한 시간을 한참 넘겨 집에 오면 화가 난다는 듯 삐져서 나오지 않거나 말을 듣지 않을 때도 많았다.
토끼에게도 나름의 타이머가 내재되어 있어 이 시간은 밥 먹는 시간, 이 시간은 자는 시간.. 등등 정해져 있는데, 이쯤이면 와야 할 엄마가 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 토끼는 다 느끼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동물이 뭘 알겠어’라고 생각하고 토끼를 키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비를 통해서 보면 정말 내가 마음을 주고 소통하면 토끼도 그에 응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비도 외로움을 느끼고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토끼는 사회적 동물이라 혼자서도 잘 지내
토끼는 혼자 둬야 해, 토끼는 가둬 키워야 해..
전부 잘못된 이야기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