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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은 Oct 27. 2024

6화 (1)사수는 자신을 다 써버린 사람 같았다

꿈이길 바랐다. 잠깐의 악몽인 줄 알았으니까. 이 순간이 꿈이길 빌다 나의 모든 순간이 꿈이 빌고 있는 미칠 노릇. 도다리와 고대로가 죽었다. 사고 직후 구급차에 실린 그들은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거뒀다. 피투성이 엄마 품에 안겨 가느다란 울음을 토해낸, 그들의 작은 아기를 남겨둔 채.


장례식은 빠르게 준비되었다.


사수는 택시 안에서 한바탕 운 것을 끝으로 더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그들의 죽음을 알렸고, 도움을 청했다. 병원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례식장이 잡혔고 불태워진 그들이 안치될 봉안당까지 마련되었다. 그사이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쏟아지는 눈물을 훔쳤다. 이리저리 잰걸음 치는 사수의 뒷모습을 지독하게 쏘아보았다. 눈감고도 풀 수 있는 기초 문항이라는 듯, 그들의 죽음을 속전속결로 해결해 나가는 사수의 건조함에 잠깐 반감을 느꼈던 거다.


'슬픈 거 맞아? 무슨 슬픔이 저렇게 빨리 사라져?'


그땐 몰랐다. 사수가 딱 필요한 타이밍에만 눈물이 터지는 해괴망측한 병에 걸려버렸다는 걸.


자신을 쏘아보는 나를 저쪽 구석에서 힐끔거리던 사수는 내 울음이 시들해지자 쭈뼛쭈뼛 내게 다가왔다. 입술을 꽉 다문 채 바닥에 널브러진 나를 일으켰다. 그 순간 사수의 어깨 위로 흘러내린 회색빛 베일. 그 끝엔 말라버린 얼룩과 말라가는 얼룩이 선명하게 뒤섞여 있었다. 사수는 더는 울지 않은 게 아니라 내 앞에서 더는 울지 않은 것이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 자기보다 두 배는 큰 나를 의자에 앉힌 사수가 거친 숨을 골랐다. 무표정한 사수의 얼굴 위로 택시 안에서 자신을 때리고 쥐어뜯으며 절규하던 조금 전의 사수가 포개졌다. 제육덮밥? 그놈의 밥이 뭔데! 밥이 뭔데! 라고 소리치며 사수는 내가 보아온 그 어떤 아기보다 더 아기처럼 울었었다. 사수의 입꼬리가 자동으로 씰룩씰룩했다. 고장 난 스위치가 제멋대로 켜져버린 것처럼. 이렇게 울 수도 있었구나. 사수의 울음에서 비린내가 났다. 이러다 사수가 진짜 아기가 돼버리는 건 아닐까? 나는 그들의 죽음을 잠깐 잊고 말았다. 사수는 자신을 다 써버린 사람 같았다.


가로등 불빛이 어두운 택시 안을 번쩍번쩍 훑고 지나갔다. 그 찰나의 찰나에도 여전히 내 시선이 머무른 곳은 울음을 머금은 채 흔들리는 사수의 입꼬리였다. 위쪽 손잡이를 부여잡고 흐르는 가로등 불빛과 함께 흐느끼는 사수는 마치 온몸으로 벼락을 흡수하는 피뢰침 같았다. 세상 꼭대기의 피뢰침.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 그들과 원 없이 입꼬리를 떨며 턱 빠지게 웃었던 그날.

"뽀뽀해! 뽀뽀해!"

카메라 앵글 속 도다리와 고대로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열세 살 내가 헤벌쭉 외쳤던 그날.




*




그날, 부부는 나와의 해묵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침 댓바람부터 놀이공원에 입장한 참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어색한 기류를 잔뜩 흘리며. 가만있다가 뜬금없이 티격태격하질 않나, 남의 도움은 눈곱만큼도 필요 없을 타이밍에 굳이 서로를 챙기질 않나, 입장권을 끊고 돌아서는 별 의미 없는 순간에 오홍홍홍, 우홧홧홧, 누가 협박이라도 하는 듯 억지웃음 짓질 않나. 그들은 조금의 인간미도 없이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로봇 같았다는 뜻이다. 그들은 로봇 흉내라도 내 포장하려 했겠지만, 사실 나는 놀이공원으로 출발하는 차 안에서부터 이미 눈치챘다. 이 부부, 어젯밤에 대판 했구나.


운전석에 앉은 고대로는 도다리가 차에 타지도 않았는데 출발해버렸다. 첫 놀이공원이 설레어, 나는 가장 먼저 뒷좌석에 몸을 실은 참이었다. 막 손잡이를 잡고 차문을 열려던 도다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차는 기습적으로 나아가고, 도다리는 따따블을 외치며 택시를 잡듯 절박하게 손을 흔들며 뛰기 시작했다. 위아래로 잔물결 치는 도다리의 손짓이 사이드미러 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도다리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쯤 다행히 멈춰 선 고대로는 게거품을 물고 조수석에 올라타 진짜 갈라서고 싶냐고 눈을 뒤집는 도다리에게 사랑하는 여보 자기가 당연히 옆자리에 있는 줄 알고 출발한 거라 해명했지만, 막 사랑에 눈을 뜬 열세 살 내가 보기에도 그건 어림 반 푼어치 없는 거짓말이었다. 그때, 도다리는 그의 안중에 없었다. 그는 그 정도로 들떠 있었다. 열세 살 먹은 나보다도 더. 나는 쫄딱 늙어버렸다. 멈추라고, 내가 소리쳤지만 그는 달렸다. 멈추고, 뒤에 뭘 두고 온 건지 똑똑히 보라고 악을 썼지만 그는 콧노래나 흥얼거리며 가속페달을 밟았다. 놀이공원까지 그대로 골인할 듯한 아주 신이 난 속도였다. 나는 뒤돌아 오열했다. 뒤창을 긁으며, 잡으려 할수록 잡히지 않는 도다리를 거의 반실신 상태에서 부르짖었다. 그제야 고대로는 조금 놀란 목소리로 왜? 왜? 왜? 오줌? 똥? 하며 끼익-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말이다. 그러나 사건은 내가 그들이 대판 했다고 확신하게 된 진짜 이유가 아니었다. 서로를 향해 웃는다고 웃는데, 곤란한 지점에서 멈춰 서버리는 그들의 어정쩡한 입꼬리가 바로 그 진짜 이유였다. 왜냐하면 나도 그래봤으니까. 그 아이와 대판 했을 때, 나도 입꼬리 좀 떨어봤으니까.


사랑 어쩌고 여보 어쩌고 하는 변명이 먹혀들지 않자 고대로는 급기야 급발진을 주장했다. 그때부터 그들의 입꼬리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박자로 흔들렸고 말이다.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댄 자신이 본인도 난처하다는 듯 웃는 고대로. 그런 고대로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는 도다리. 한마디로 썩소. 어정쩡하게 요동치는 그들의 입꼬리는 말 그대로 급발진과 급정거의 무한 반복이었다. 더불어 그건 사랑과 이별 사이에서 갈팡질팡해본 사람만이 아는, 숨길 수 없는 떨림이었다.


열세 살 때라면 바야흐로 그 아이의 고백 편지가 내 책상 서랍에 쌓여가던 때였고, 그 아이는 편지 속에서 이미 나와 결혼해 딸이든 아들이든 나를 쏙 빼닮은 아이의 아빠가 된 때였다. 나는 처음엔 시큰둥했지만, 어쩌다 편지가 안 오는 날이면 그 아이를 향해 떫게 미소 짓곤 했었다. 딱 지금의 저들처럼 입꼬리를 떨며. 주말 이틀에 월요일까지 포함해 사흘 동안 안 왔을 때는 아예 대놓고 입꼬리를 씰룩이며 그 아이를 째려보았다. 기다림이란 게 그랬다. 처음엔 일방이었다가도 결국엔 쌍방이 되는.


놀이공원 솜사탕 가게 앞에서 로봇처럼 웃어대는 고대로와 도다리를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정확히는 동시에 바르르 떨리는 그들의 입꼬리를 보며. 애나 어른이나 사는 건 똑같구나. 누구나 자기 입꼬리에 자기만의 무게를 얹고 살아가는구나. 싸운 티 안 내려고 싸운 거 다 티 나게 웃는 그들을 보고 있으려니 어찌나 웃기던지, 결국 나는 꺽꺽대며 웃고 말았다. 침까지 흘려가며 웃는 내가 그들도 웃겼던 걸까. 숨넘어가게 웃는 나를 한참 바라보던 그들은 그제야 입꼬리를 제대로 떨며 웃었다. 서로에게 애정 어린 눈을 흘기며. 서로의 솜사탕을 뺏어 먹으며. 서로의 입가에 붙은 솜사탕 찌꺼기를 떼어주며. 웃다가 사레들린 내 등도 번갈아 두드려가며. 웃음은 로봇에게도 쉽게 전염되었고, 전염에 취약한 그들은 비로소 조금 사람 티가 났다.


분위기가 말랑해진 그 틈을 노려 나는 그들을 포토존으로 유인했다. 뽀뽀해! 뽀뽀해! 밀어붙였다. 뽀뽀는 화해의 도장이요,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던데. 그들이 로봇 티를 벗은 게 웃음이 전염되는 그사이 무언의 화해까지 해버려서 그런 건지 궁금했다. 아니라면, 내가 알아서 멍석 깔아줄 때 못 이기는 척 진짜 도장을 찍길 바랐다. 여느 부부들이 싸울 때마다 내가 찍는지 안 찍는지 두고 보라고 큰소리친다는, 그 가짜 도장 말고 말이다. 사흘 동안 편지를 받지 못한 내가 입꼬리를 쫙 잡아당기며 째려보았을 때 그 아이는 곧바로 삐져버렸다. 그걸 풀어주기 위해 나는 받은 편지보다 더 많은 편지를 썼었다. 다툼이란 게 그랬다. 처음엔 쌍방이었다가도 결국엔 일방이 되는.


뽀뽀해! 뽀뽀해! 나는 막 밀어붙였다. 사람 티가 조금 난다곤 해도, 아직 반인반봇인 그들에게 자발적 화해를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삐걱삐걱 포토존에 선 그들은 내가 밀어붙이는 만큼 도리어 서로에게서 멀어져 갔다. 이건 누가 봐도 대판 한 거였다. 지나던 사람들이 킥킥댔다. 서로를 그렇게 어려워한다는 사돈끼리도 그러진 않을 듯한 먼 거리에서 입술은 한껏 내밀고 엉덩이는 뒤로 쭉 뺀 게, 앵글 양쪽에 위태롭게 걸쳐진 그들은 상대의 급소를 쪼기 위해 볏을 세운 쌈닭들 같았다.


"45도! 45도!"


나는 전문가로 보이는 저쪽 사진사 아저씨처럼 손을 까딱까딱하며 적절한 포즈까지 집어주었다. 앵글 속 쌈닭들이 스르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에? 고자비!  45도? 이게, 피도 안 마른 게, 45도?"


"그런 행위를 어디서 어떻게 배운 건지 진지하게 실토해 볼까."


앵글 속 쌈닭들이 서서히 내게 다가왔다. 나란히. 나란히. 입꼬리 가득 보드라운 미소를 머금고.


"어디서 배웠을까요? 하라는 봉사는 안 하고 만날 보육원 담벼락에 붙어서 희희낙락하시던 분들, 어디 가셨을까요?"


걸어오던 그들이 걸음 모양 그대로 멈춰 섰다. 애매한 지점에서 함께 멈춰버린 그들의 입꼬리를 바르르 바르르 떨며.


슬그머니 포토존으로 되돌아간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고대로가 도다리의 얼굴을 감싸자 도다리가 고대로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마치 그 분야의 도사들처럼, 와락 입술을 맞댄 그들이 같은 속도로 고개를 엇갈렸다. 이제야 앵글의 중심에 제자리를 잡은 그들만의 담벼락 포즈. 나는 핏 웃음이 났다. 화해란 게 그랬다. 처음엔 일방이네 쌍방이네 따지다가도 결국엔 다 까먹고 마는.


내가 째려보았다는 이유로 된통 삐진 그 아이는 하루에 두세 번씩 쏟아지는 내 편지에도 화를 풀지 않았다. 연필 잡는 손가락에 생긴 물집이 터지던 날 결국 나도 터지고 말았다. 이럴 거면 때려치우자고, 그냥 너도 나 시원하게 한번 째려보고 다 없던 일로 하자고 악다구니를 썼다. 그 아이는 당황한 듯 한쪽 입꼬리를 달달 떨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화 풀어, 안 그럼 나 또 삐질꼬얌. 나는 주저앉아 울었고, 그 아이는 내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연필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왼손을 꼬옥. 그 손을 하염없이 쓰다듬으며 그 아이는  귓가에 속삭였다. 뽀뽀는 화해의 도장이요,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래. 우리 엄마 아빠가 그랬어. 넌 손이 제일 예뻐.


포토존,이라는 낡은 팻말 아래로 알록달록한 조화가 무릎 높이로 쌓인 그곳. 그 안에서 입술을 맞댄 채 45도로 고개를 엇갈린 도다리와 고대로. 선선한 가을바람에 그들의 머리칼이 부드럽게 흩날렸다. 벽이랄 것도 없는 뻥 뚫린 그곳에서, 그들은 자람 보육원 담벼락에 딱 달라붙던 그때로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자연스러웠다. 세상이 정지되는 마법. 나는 담벼락 저만치에서 그들을 흘깃거리던 흐뭇함을 가득 담아 외쳤다.

"하나! 둘! 셋!"


찰칵.


사진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임무를 마친 나는 헛기침을 하며 촬영이 끝났다는 신호를 주었지만, 입술을 맞댄 부부는 여전히 한창이었다.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는 듯이. 이쪽 45도 저쪽 45도 서로의 뒤를 살피며. 이 순간 우리에게 위험한 건 호흡곤란뿐이라는 듯이. 푸르른 자연 위를 나는 한 쌍의 자유로운 야생 닭처럼. 나는 카메라를 내리고 그들에게 다가가 어금니를 앙다물며 말했다.

"뒤를 좀 보심이……"

포토존엔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까마득했다.


그 사진은 부부의 영정 사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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