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 일찍 도착한 장례식장. 무지근하게 어깻죽지가 뭉쳐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사수를 따라 빈소로 들어섰다.
하얀 국화가 작은 재단을 장식하고 있었다. 사수가 영정 사진을 마주하고 섰다. 믿을 수 없는 방식으로 한자리에 모인 우리. 나는 또다시 콧날이 시큰해졌다. 그러나 잠깐 그러곤 말았다. 내 품에 안긴 그들의 아기가 온전히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인생 한 달 차인 이 아기는 좀체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칭얼거리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대략 십 분 간격으로 용을 썼다. 그때마다 데일 듯 뜨거운 아기의 숨결이 내 몸 여기저기에 닿았다. 나는 까딱하면 부서져버릴 것만 같은 작은 날개뼈를, 온 힘을 다해 조심스레 쓸어내려 보았다. 아기는 그 손길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결국엔 울음을 터뜨렸다.
고자아.
아기의 정밀검사가 이어지던 어젯밤, 사수로부터 아기 이름을 전해 들은 나는 우수수 소름이 돋았다. 그들은 기어이 사고를 치고 간 모양이었다.
도다리의 임신 소식을 듣던 날이었다. 고대로는 아기 이름을 '고자아'로 확정했다고 식구들에게 발표했다. 사수는 푹 고개를 떨궜고, 나는 부르르 들고일어났다. '고자'아 라니. 이 무슨 망측한 소린가. 나는 펄쩍 뛰며 내 안에 겹겹이 쌓인 여자 고자의 울분을 토해냈다.
"고대로! 절대, 절대 안 돼! 아들이어도 문제지만 딸이면 어쩌게? 내 별명 몰라? 고자라고! 고자!"
"자비, 나는 언제나 직진해 왔다, 고대로. 고자아, 자기 자신을 또렷하게 바라보라는 뜻이다. 절대 물릴 수 없다. 수염도 나지 않은 그때 지어놓은 이름이니까. 실생활에 무리 없이 적용 가능한 이름일까, 의문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내게 이런 날이 오리란 걸. 오늘이 오리란 걸 말이다. 결정적인 건 이 이름을 다리가 한 방에 오케이 했다는 거다."
아직은 푹 꺼진, 도다리의 배를 쓰다듬으며 고대로가 말했다.
"뭐야? 진짜 오케이 했어? 도다리? 응? 도다리?"
나는 도다리를 몰아붙였다.
"고자비 동생 고자아. 어때?"
어때, 라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 마당에 돌림자라고? 나는 허무했다. 생선과와 이름을 나란히 해온 한 인간으로서 여자 고자의 고충을 백번 공감한다던 도다리는 이제 와 딴소리였다.
고대로와 도다리. 어쨌든 그 기능을 하긴 하는 그들의 이름 역시 그들의 혈육 작품이라 들었다. 세상의 수많은 말을 거르고 걸러 한 자 한 자 빚어낸다는 이름. 손수 지은 그 이름과 함께 그들을 보육원에 맡겨야 했던, 그들의 친부모 말이다. 설마 작명 감각도 유전이 되는 걸까? 나 고자비는 아찔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 고자아를, 미래의 '고자'를 나는 지금 안쓰럽게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내 품에 안겨 세상모르고 잠이 든 아기를. 어떻게 보면 엄마, 어떻게 보면 아빠가 떠오르는, 어떻게 보면 반반, 어떻게 보면 누구도 떠오르지 않는 새하얀 얼굴을.
자아는 울다가도 사수에게만 안기면 그치는 여느 아기와는 달랐다. 그래서 안 그래도 눈물바다였던 우리 셋의 첫 만남은 습하다 못해 꿉꿉하기 그지없었다.
밤샘 검사를 마친 자아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울다 지쳐 이제 막 잠이 들었노라, 의료진의 설명이 이어졌다.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울다 지쳐 잠든 아기를 사수는 오야오야, 다짜고짜 안아 들었다. 딱 봐도 무심코 발현된 습관이었다. 자다 깨버린 아기는 바로 몸을 떨며 울기 시작했다. 작은 입술이 댐 수문 개방되듯 왈칵 열렸다. 검사 결과는 안 봐도 정상일 듯했다. 자아는 그 정도로 건강하게 울었다. 놀란 사수는 황급히 '재우기' 기술에 들어갔다. 어째선지 기술이 심화될수록 아기의 울음소리 또한 심화되었다. 아기는 온몸으로 도리도리를 하며 사수를 거부했다. 사수의 베일이 틀어졌다. 내가 바로잡으면 틀어지고 의료진이 바로잡으면 틀어졌다. 저절로 바로잡히기도 했다. 사수는 그렇게 장장 세 시간을 고군분투했지만, 뭘 하든 족족 실패였다. 40년 내공에 빛나는 어떤 육아 기술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던져진 아기를 쉽사리 만족시키진 못했다. 다른 방식 중에서도 조금 더 다른 방식이었다. 사수의 이마에 삐뚜름하게 걸쳐진 회색빛 베일에 굵직한 띠를 그리며 땀이 번졌다. 그 땀이 흐르자, 사수는 결국 내게 자아를 넘겼다.
나 역시 육아라면 자신 있었다. 똥 기저귀 갈아가며 키워낸 보육원 동생이 몇 명인지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사수의 아성을 뛰어넘는 실력자라곤 감히 생각해오지 않았다. 조금 전, 사수의 품을 벗어난 자아가 교과서 속 팔일오 광복의 미소로 내 품에 안겨오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자아의 작은 손이, 내 교복 셔츠의 단추와 단추 사이를 파고들기 전까지는.
이런 아기는 나 역시 처음이었다. 자아는 사수보다도 나를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앉으면 딱 뱃살이 접히는 부위, 내 배꼽 근처를 특히 좋아했다. 어쩌다 거기가 조금이라도 접히면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쪽 단추와 단추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요술램프라도 문지르는 양 그 부위를 마냥 쓸었다. 내가 왼쪽 오른쪽 번갈아 안아봐도, 자아는 왼손 오른손 번갈아 가며 제 손바닥에 땀이 나도록 쓸었다. 그래서 나는 자아를 넘겨받은 그때부터 그 부위가 접힐세라 계속 서 있는 중이었다. 심지어 자아는 잠이 들었다, 싶어 바닥에 눕힐라치면 여느 때보다 눈을 홉뜨고 울어댔다. 우리는 서로 땀 마를 새 없었다.
웅크린 엄마 품에서 발견된 고자아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반복된 정밀검사에서도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아 의사는 꾸준한 추적 관찰만을 당부했다. 사고 당시 엄마가 몸을 부수며 카시트를 통째로 껴안았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어린 생명 앞에서 밤샘 근무를 자처한 의료진들은 젖은 눈으로 추측할 뿐이었다.
"기적입니다. 지금껏 울다 이제 막 잠들었……"
"주여……"
바로 이 순간이 그때였다. 우리 셋의 첫 만남. 울다 지쳐 잠든 자아를 사수가 무심코 안아 든 그때. 사수의 눈엔 떨어질 듯 말 듯 눈물이 고였고, 아기 역시 그렁해진 눈으로 살아온 세월에 비해 너무도 곡진한 얼굴로 울기 시작했다. 칠십 인생 할머니 주름이나 한 달 인생 신생아 주름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오야오야, 졸리는구나."
"기저귀 좀 보자."
"그래! 밥, 밥 먹자!"
사수의 육아 기술은 하나하나 예리하게 빗나갔다. 사수가 어떤 기술을 쓰든 자아는 사수 품을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듯 몸을 뒤틀며 사수의 혼을 쏙 빼놓았다. 사수의 베일이 틀어졌다. 대롱대롱하던 사수의 눈물방울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우르르 까꿍! 그동안 갈고닦아온 육아 기술을 하나하나 적용해보며 나는 아까부터 이러고 있었다. 이번 문항이야말로 답을 찍을 기회조차 없는 초고난도의 주관식이었다. 다행히 머지않아 내 단추와 단추 사이, 수북한 그곳을 헤치고 그 답을 찾긴 했지만 말이다.
우리 셋은 그렇게 빈소로 향한 참이었다. 오래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