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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Mar 15. 2021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사람에 대한

<퀸즈 갬빗>의 베스 하먼처럼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게다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을 보면 더욱 부럽다. 현재 자기 일에 만족감 없는 사람들이 특히 그렇다. 입에 풀칠하려면 뭐라도 해야 하는데 재미가 없다. 그래서 SNS 속에 사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따라 해 본다. 맛집에도, 여행지도 따라 가본다. 그렇지만 그곳에 당신의 행복은 없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퀸즈 갬빗>의 마지막 장면. 주인공은 어느 공원에 들러 설레는 발걸음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를 따라가면 할아버지들만 잔뜩 나온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취미로 체스를 두다 베스를 알아보고 인사를 청해 온다. 즐거운 인사가 끝나고 할아버지 한 분이 체스 한 게임을 권한다. 그렇게 다시 베스의 체스가 시작된다.


동생은 글씨를 예쁘게 잘 쓴다. 또박또박의 수준을 넘어 폰트를 프린트한 것 같은 글씨체로 여학생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 같은 반 애들 중 몇은 따라 쓰고 있다며 어떻냐고 대놓고 물어오기도 하고, 몰래 따라 쓰다 걸린 아이도 있었다고 한다. 그림도 무척 잘   그리던 동생은 블로거가 되어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포스팅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팬들도 늘었다. 구경꾼들도 생겼다. 작품 사진에서 사인을 지우고 맘대로 쓰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동생의 아이디어와 그림을 도용하여 2차 저작물을 만든 후 저작자인 동생의 허락 없이 원작자 인양 포스팅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창의력, 상상력,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진 동생은 늘 주변의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고, 사람들은 동생을 따라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하나 그들은 행복해지지 않았다. 나 역시 어릴 적부터 동생을 질투했다. 예체능적 재능을 동생에게 몰빵해 놓은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달리기도 1등, 그림도 잘 그려, 심지어 피아노도 나보다 잘 쳤다. 성적은 내가 더 좋았지만, IQ나 EQ는 동생이 더 높았다. 동생이 내가 공부했던 만큼의 시간을 학업에 투자했다면 전국에서도 날렸을 거다. 그러나 근원을 따져보면 동생의 천부적 능력을 질투한 것보다는 즐겁게 사는 동생의 모습을 더 부러워했던 것 같다.


그러나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우울증이 오기 전까지는. 인생이 진정 불행해지자 그림 그리면서 행복해하는 동생을 보며 나도 그림을 그려볼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 지인이신 만화가분께 그림을 배우게 되었다. 2개월이면 뭐든 질리는 내가 울면서 7개월을 버텼지만 오히려 극한 우울에 빠졌다. 대체 왜 그림을 그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림 그리기는 즐거움은커녕 재미도 전혀 없었다. 단지 보살펴주시는 선생님이 고마워서 계속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림그리면서 즐거워하는 동생은 이해할 수 없었다.




<퀸즈 갬빗>을 보다 보면 체스를 배우고 싶어진다. 재미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체스를 배우면 그들처럼 즐거워질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퀸즈 갬빗>을 보며 한 번쯤  해볼 것 같은 생각, '체스 선수들은 체스를 좋아하는데 직업으로 하니까 더 좋겠다!'는 잘못된 생각이다.


베스 하먼이 체스를 두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해서, 체스를 배울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하먼의 삶을 통해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하지? 나는 어떨 때 즐겁지?'를 생각해야 한다. '베스가 체스할 때 즐거워 보이니 나도 체스를 배울래!'가 아니다. '베스는 체스에서 행복감을 느끼는구나! 나도 행복감을 느끼는 것을 찾아서 즐거울래!'가 정답이다.


그럼 나는 언제 즐거운가?

2번째 퇴직을 고민하고 있을 때, 가장 친한 친구가 조언했다.

"너는 하루에 해야 할 말의 분량이 있는 것 같아. 교사를 하면서 그런 면에서 좋았던 것 같은데, 어때? 퇴직해도 괜찮겠어?"

동의한다. 나는 말을 할 때 즐겁다. 하나 안타깝게도 내 말을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 어리기도 하고 가끔 내가 그들과 상관없는 생각을 많이 하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답답했다.


브런치에는 내 글을 읽고 끄덕여주는 사람들,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은 내가 다른 작가분들께 '아자아자' 힘내라고 격려도 한다. 그게 내 삶에 너무 큰 만족감과 행복감을 주고 있다. 단순히 혼자 글을 쓰면서 얻게 되는 것과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 있다.




<퀸즈 갬빗>이 할아버지들이 모여 체스를 하고 있는 공원을 마지막 배경으로 한 것은 정말로 베스가 그것을 즐기고 좋아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도구다. 베스는 기량을 뽐내고 유명해지기 위해 체스를 해온 것이 아니라 체스 자체가 즐거워서 하다 보니 체스 강대국인 러시아까지 가게 된 것이다.


돌아보니 내게 만족감을 주는 것은 첫째, 표현 욕구의 표출, 둘째, 소통인 것 같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는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것이 참 감사하다. 글을 쓸 때 행복하고, 브런치 작가분들과 소통할 때 즐겁다. 동생이 더 이상 부럽지 않다.


당신은 언제 행복한가?

당신은 무엇을 하면서 웃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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