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주 Jul 11. 2021

함께 걷는 길

[글모사 9기] 주제 5: 함께 하기

똑똑

"아빠, 일어나셨어요?"

"응, 그래. 들어오렴."

"아, 바지 입고 계셨구나.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래 주겠니? 고맙구나."


남식이 옷 입는 것을 도와준 진성은 오른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빠, 이제 제가 손 잡아 드릴게요. 같이 가보실까요?"

"하하하. 이 녀석 다 컸구나. 아빠 흉내를 내고."

"맞아요. 어릴 때 아빠가 이렇게 손 내밀어 주시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 가자."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던 혜정이 운동 나가는 부자를 배웅하러 나온다.


"정말 오늘부터 운동하러 가게요?"

"우리 아빠가 또 한다고 하시면 꼭 하시잖아요!"

"잠깐만! 나도 갈래, 나도! 같이 가요."


방에서 옷 고르느라 늑장 부리던 효성도 후다다닥 뛰어나온다.


"하하하. 우리 효성이 같이 가는 거였어?"

"그러게 말이에요. 아빠. 하하하"

"아씨, 왜 그래. 나도 간다고!"

"와, 우리 최 씨 집안 삼부자가 모두 운동을 간다고 나서다니! 엄마는 너무 기쁘네요!"

"그동안 수고 많았어, 여보. 우리 그럼 다녀올게."

"엄마, 혼자 식사 준비 다 하지 말고 쉬면서 기다리고 계세요. 다녀와서 저희들이랑 같이 해요."

"그래, 알겠어. 아빠랑 진성이, 효성이 모두 잘 다녀와."


얼마 만의 휴식인가. 절대 낫지 않을 것 같고, 방에서 나올 것 같지 않던 남식이 자신의 발로 스스로 걸어 나와 세상으로 나가겠다고 하더니, 며칠 안 되어 운동과 재활 치료를 함께 받겠다 했다. 그리고 진성이의 다단계 사업을 해결할 방안이 있다면서 조금만 참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혜정은 정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님, 잘 지내시지요? 여정 누님께 자형이 일어나셨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많이 좋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응, 나도 너무 감사하고 또 놀라워하고 있어. 근데 식구들 같이 있어서 전화를 못했네. 옥장판 3장이나 들고 갔다면서?"

"네, 진성이 녀석 아주 신이 나서 들고 왔더라고요. 깜짝 놀라게 해드리려고 일부러 말을 안 했다면서 얼마나 좋은 사업인지 구구절절이 소개를 하는데... 모르고 들었으면 저도 깜빡 넘어갈 뻔했어요."

"하이고... 미안해, 동생. 많이 놀랐지?"

"아니에요, 효성이 덕분에 미리 다 알고 있어서 별로 놀라지 않았어요.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하면 잘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네요."

"자형이 그때 내가 여정 언니랑 통화하는 소리를 잠결에 듣고 깼다가 전체적인 이야기를 다 알게 되어서 정신이 들었나 봐. 자기한테 맡겨 두라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네."

"아, 그랬어요? 그럼 좀 기다려 보지요, 뭐. 자형이 한다고 하면 확실히 할 사람이니까요."

"그러게. 네가 걱정할까 싶어서 전화했어."

"그러셨군요. 감사합니다, 누님."


근처의 한 공원, 남식이 진성과 효성과 함께 벤치에 않아 쉬고 있다.


"이게 얼마 만에 하는 운동인가, 몸이 많이 힘드네."

"아빠, 예전에는 진짜 오래 걸어도 끄떡없었는데..."

"그러게, 체력이 많이 약해지셨네요."

"하하하. 그러네. 이제부터 열심히 해서 또 그렇게 돼야지. 자, 그럼 또 걸어볼까?"


그때, 효성의 전화벨이 울린다. 효성이 화면을 보더니 씩 웃으며 말한다.


"잠시만요, 전화 좀 받고 올게요."

"천천히 받고 와. 우리는 여기서 기다릴게."

"다녀오렴."


효성이 신나게 달려가는 것을 보며 웃는 진성에게 남식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진성아, 어제 이야기했던 옥장판 파는 사업 말이다. 그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아빠한테도 이야기해줄래?"

"아, 어제 제가 너무 신이 나서 아빠한테는 자세히 말씀을 못 드렸네요. 그게 제가 독서실이랑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어요. 학원이 많은 형곡 거리 있잖아요. 거기에서요."

"그랬구나. 그 근처에서 친구를 만났다고?"

"네, 현민이라고 있는데요. 걔가 제가 일하고 있는 독서실이랑 아주 가까운 곳에 매장을 오픈했거든요. 그래서 길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었어요."

"아, 현민이라는 친구구나. 그래서 어떻게 되었니?"

"고등학교 동창이긴 한데 친하게 지냈던 친구는 아니어서 첨에는 인사만 했는데, 자주 만나다 보니 머쓱해져서 언제 차라도 한 잔 하자는 말을 꼭 지켜야 될 것 같은 느낌에 둘이 하하하 웃다가 카페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랬구나. 그럴 때 있지. 너무 자주 만나면 어색해서 친하게 지내야 될 것 같은."

"맞아요, 아빠. 그래서 차 마시면서 어떻게 살았는지 듣다가 현민이가 시작한 사업 이야기도 듣고, 사업 소개해주신 분 이야기도 듣고요."


그렇게 남식은 진성이 옥장판 사업에 뛰어들게 된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것처럼 다 들어주었다. 그러자 진성은 아빠가 자신의 일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하며 말했다.


"아빠, 혹시 저랑 같이 사업 설명회 들어보실 생각 있으세요?"

"사업 설명회? 현민이라는 친구가 그런 것도 하고 있니?"
"아까 말씀드린 김 사장님께서 계신 사업장으로 가면 큰 강의실이 몇 개씩 있고 매주 수요일마다 강의가 있어요. 현민이도 거기서 가끔 강사로 뛰고요. 그러고 보니 오늘이 수요일이네요."

"그렇구나. 사업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강의를 다 들어야 하니?"

"시작할 때는 사업에 대해 알아야 하니까 듣지요. 그리고 혹시 사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또 함께 듣기도 하고요. 강의 끝나고 나서는 자기가 관리하는 사람들과 함께 소모임도 하고 그래요."

"그렇구나. 시스템이 잘 되어 있네."

"네, 저는 현민이 그룹에 지금은 속해 있지만 나중에는 제가 운영하는 소모임도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고 그래요."

"아, 그렇구나. 그럼 우리 진성이가 하는 사업, 아빠도 한 번 알아봐도 될까?"

"진짜요? 그거 강의시간이 좀 긴데 아빠 몸으로 괜찮으시겠어요?"

"많이 힘들어 지면 중간중간 쉬면서 듣지 뭐. 그래도 되지?"

"그럼요, 그럼요. 아빠가 제 사업에 관심 가져주실 줄 몰랐어요. 이 사업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은 무조건 피라미드다, 다단계다 싫어한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러냐. 네가 하는 사업이 그런 구조로 되어 있는 거냐?"

"아니에요, 전혀요. 직접 들어보시면 다른 회사들이랑 차원이 다른 거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저희 회사는 정말 좋은 제품만 팔거든요."

"그렇구나. 어떤 제품들을 팔고 있니? 아빠는 옥장판 밖에 못 들어서 궁금하구나."


진성의 사업 이야기를 열심히 듣다 보니 미소를 띤 효성이 벤치로 달려왔다.


"아빠, 형. 이제 가요. 흐흐"

"우리 효성이,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보네. 여자 친구라도 생긴 거냐?"

"아니에요, 여자 친구는 무슨.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면, 뭐야? 형 너무 궁금한데?"

"지금 말해야 하나? 이따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좋은 일인 거야? 그것만 알자."

"응, 무지 좋은 일이야. 히히히"

"우리 막내한테 기분 좋은 일이 생겼나 보네. 그럼 일단 그걸로 축하하자. 효성아, 축하한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축하해주고, 우리 아빠! 다 나았네."

"하하하하 그런 거냐? 아빠가 그동안 그렇게 안 웃었어?"

"네... 안방에 들어가면 맨날 누워만 있고. 나랑 이야기도 안 해주고..."

"아이고, 아빠가 잘못했네. 누구네 아빠가 아들을 그렇게 힘들게 했다니."

"그러게요, 누구네 아빠가 그러셨나 몰라요. 하하"

"헤헤. 아빠 뭔지 궁금하죠?"

"그럼 그럼. 얼른 알고 싶구나."

"형도 궁금하지?"

"당연하지."

"그럼 나 잡아봐라~!"


신이 난 효성은 펄쩍펄쩍 뛰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야, 최효성. 아빠 아직 힘드신데 그렇게 빨리 뛰면 어떡해. 같이 가."

"얼른 오세요, 얼른 하하하하"

"아빠, 효성이가 되게 신났네요. 기분 좋아 보여서 저도 기뻐요."

"아빠도 그렇네. 우리 힘을 좀 내볼까."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씻고 식탁에 앉았다. 미리 도착한 효성이 혜정을 도와 식탁을 미리 차려놓은 상태였다. 네 식구는 정말 오랜만에 즐거운 교제를 나누었다. 공원에서 효성이 받은 전화는 M 실용음악 학원이었다. 원래 효성이 다니던 학원으로 효성이 음악 공부를 멈춘 것을 안타까워하시던 원장님이 전화를 하셨다고 했다. 효성이 음악을 그만둘 때쯤 학원 사정도 힘들었기에 어쩔 수 없이 효성을 잡지 못했던 것이 맘에 내내 걸렸다며, 효성이 다시 음악을 시작할 마음이 있다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주 저렴한 비용만 지불하고 계속 음악을 해보면 어떻겠느냐 제안하셨다고 한다.


"아, 그래서 네가 그렇게도 좋아했구나. 형은 여자 친구라도 생긴 줄 알았다. 하하"

"여자 친구보다 내 꿈이 더 소중하지! 너무 잘 됐죠, 엄마?"

"원장님께서 너 학원 그만둔 후로 엄마한테도 가끔 전화 주셨어. 너무 미안하다고 그러시더라고."

"아이고, 아빠가 누워있는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구나. 미안하다, 우리 아들들. 그리고 당신도."

"아니에요, 아빠. 아빠가 그동안 가족들을 위해 애쓰신 거 알아서 고생이라는 생각 별로 안 했어요."

"우리 진성이, 다 커버렸네. 아빠가 놓친 게 많은 가보다. 미안하다."

"아빠, 아니야. 형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아빠가 많이 힘들었다는 거 알아. 괜찮아, 아빠. 아빠, 이거 드셔 보세요. 제가 이거 구웠어요. 얼른요."


식사 후, 안방에 쉬려고 들어온 혜정을 남식이 부른다.


"여보, 잠시만 여기 앉아봐 봐."

"네, 무슨 일 있어요?"

"뭐, 큰 일은 아니고. 오늘 나 진성이랑 그 김 사장이라는 사람 사업장에 가보려고."

"네? 거기는 왜요?"

"아까 운동 나갔다가 물어봤는데 진성이가 현민이라는 친구 만난 것부터 해서 자세히 설명해주더라고. 진성이가 어떻게 사업을 운영하고자 하는지도 궁금하고, 설명회 가서 좀 알아볼 것도 있고."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그런데 당신 계속 누워만 있던 사람이라 걱정돼요."

"응, 진성이가 미리 양해를 구해 놓겠다 하더라고."

"그렇군요. 감사하네요. 그럼 지금부터 좀 쉬어요. 이따 몇 시에 가요?"

"오후 3시부터 시작이라더라고. 진성이랑 같이 가기로 했어."

"그럼 2시간 정도 쉴 수 있겠네요."

"그렇지. 당신도 식사 준비하느라 힘들었는데 이리 와서 잠시 쉬어."

"그럼 그래 볼까요?"


버스에서 내린 남식과 진성은 김 사장의 사업장 건물에 들어선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보니 사업장은 건물의 꼭대기층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무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고, 큰 강의실 한쪽으로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마치 노량진의 일타강사 강의실 앞을 방불케 하는 놀라운 모습이었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현민이 진성을 먼저 알아보고 다가왔다.


"오, 진성아. 왔구나. 아버님?"

"응, 우리 아버지셔. 아버지, 이 친구가 제게 사업을 소개해준 현민이에요."

"아버님, 안녕하세요. 강현민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현민 군, 반가워요. 우리 아들에게 사업을 소개해주었다고?"

"네. 오늘 이렇게 아버님도 모실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차 한 잔 먼저 하실까요?"


강의실로부터 나온 꼬리들이 현민과 함께 이동하는 진성과 남식을 보며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대체 누구인데 강현민 강사가 저렇게까지 응대를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것이었다. 그들 안에서 강현민은 그 사업으로 성공한 케이스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김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 근처로 오면서 그들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최 사장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빠, 김 사장님이세요."

"안녕하십니까, 김 사장님. 저희 아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신다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별말씀을요. 이쪽으로 앉으시죠."


김 사장은 상석에 앉은 뒤, 비서에게 차를 준비해달라고 하였다. 사장실은 매우 컸다. 비록 학원가에 있는 상가이긴 했으나 반대편으로는 큰 공원이 펼쳐져 있어 전망도 무척 좋았다. 사장실 문에서 공원 쪽으로 난 창가 방향으로 8인용 검은 가죽 소파가 놓여있고 그 양쪽으로는 각종 상패와 유명인과 찍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창 바로 앞에 아주 크고 멋진 고동색 책상이 놓여 있었다. 투명하게 빛나는 사장 명패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포마드 기름을 발라 넘긴 듯 번쩍이며 2:8 가르마로 빛나고 있는 김 사장의 얼굴엔 개기름이 흘렀다. 말의 내용은 매우 상대방을 존중하는 듯하였으나 몸에서 나오는 느낌은 마치 조폭 같았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손목 근처까지 내려온 문신에서 압박이 느껴졌다. 그러나 크고 강렬한 눈을 부라리며 자신의 사업을 소개하는 그의 모습에서 너무나 따뜻한 미소로 차분하게 듣고 있는 남식을 경계하는 듯한 느낌이 묻어났다. 사업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진성의 앞으로의 길에 대해 기대한다는 내용의 인사치레가 끝난 뒤 김 사장은 현민에게 그들을 강의실 가장 좋은 자리로 안내하라 지시했다.


"아버님,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몸이 불편하시다는 말씀을 들어서 움직이시기 편하신 자리로 마련해 두었습니다."

"현민 군, 고맙구먼. 그럼 김 사장님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네, 최 사장님, 자주 뵈면 좋겠습니다. 그럼 강의 시간에 또 뵙는 걸로 하지요."

"네, 그럼 이만."


다소 상기된 얼굴의 김 사장이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남식, 조마조마한 얼굴로 눈치를 살피는 현민과 달리 진성은 아버지가 자신과 함께 이곳에 온 것 자체로 흥분해 있었다. 이동해보니 강의실은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몇 개의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길게 뻗은 강의실 중간, 바로 옆 휴게실로 바로 연결된 문 옆에 좋은 의자를 배치해 둔 것이었다. 현민이 진성과 남식을 자리로 안내하고 밖으로 나가자 바로 김 사장이 화이트보드가 설치된 앞쪽 문으로 들어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옥장판이 가져다준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