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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ul 13. 2021

우연은 충분하지 않았다

[글모사9기] 주제 6: 우연

진동벨이 울린다. 남식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흥분한 진성은 미소 가득한 얼굴로 주문했던 음료를 들고 온다. 


“이야, 카페 정말 오랜만인데 엄청 변했구나.”

“아빠는 정말 오래간만에 오신 거겠군요. 음료 드셔요.”

“고맙구나. 진성이도 얼른 앉으렴. 아, 그런데 진성아, 아까 강의 듣다 보니 핵심 내용이 결국 내가 그룹의 대표가 빨리 되는 것이 중요 내용이더구나. 맞니?”

“맞아요, 아빠. 와, 한 번 듣고 다 이해하셨나 보네요. 아빠, 대단하시다.”

“뭘 그런 걸 가지고. 아빠도 사업하던 사람이잖니. 혹시 필기구 있니?”

“아, 여기요.”


남식은 진성이 꺼내놓은 옥장판 사업에 관한 팸플릿과 각종 안내문을 열심히 읽는 척하며 흰 종이 위에 새롭게 공식을 적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한 번 더 계산식을 써 내려갔다.


“아빠, 그건 팸플릿과 식이 달라요. 다시 봐 보세요.”

“어라, 근데 진성아. 여기 아빠가 쓴 거 볼래? 아빠는 이쪽이 맞는 것 같은데...”

“엥, 정말 그러네요. 강의 때 들은 내용이 틀릴 리가 없는데...”

“그러게. 진성아.. 그런데 이 식이 제일 중요한 거 아니었어?”

“맞아요.... 이 식이 틀린 거면... 소그룹 리더는 이 사업으로 별로 얻는 게 없는 거라서... 틀리면 안 되는데...”


그렇게 황당해진 진성을 보면서 남식이 말했다.


“설마 틀렸겠어. 다시 한번 해보자. 아빠가 중간에 계산을 빼먹었을 수도 있잖니.”


그런 식으로 남식과 진성은 팸플릿과 사업 안내서에 있는 모든 계산식을 증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김 사장과 현민에게서 나온 모든 서류에서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진성은 인지적 부조화로 인해 당황하며 의심을 시작했다. 남식은 그런 진성을 잘 달래서 나중에 다시 물어보자며 음료를 마시게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내내 진성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저녁에 걸려온 현민의 전화를 받고 다시 기운을 차렸다. 진성이 미소를 띠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아빠, 조금 전에 현민이랑 통화했는데요. 그 계산식은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하는 거래요.”

“다른 방식?”


진성의 설명을 들어보니 현민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법한 수준으로 빙빙 돌려가며 진성을 농락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옥장판 사업에 매료되어 버린 진성을 계산식 하나로 제정신이 되게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남식은 다른 방식을 사용하기로 했다.


“아이고, 최 사장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셨습니까?”

“허허, 그동안 소원했네. 어이, 친구. 근데 최 사장이 뭔가. 하하하”

“네가 너무 연락이 없어서 반가워서 그러지. 근데 무슨 일 있어. 나한테 전화를 다 하고.”

“실은 네가 좀 알아봐 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남식은 자신의 고교 동창 중에서 근처 경찰서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 명훈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명훈은 이미 김 사장과 현민이 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 몇몇 피해자가 그 두 사람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저녁 먹기 전, 남식이 진성을 불렀다. 남식이 자신의 폰을 보여주며


“진성아, 너 혹시 이런 기사 본 적 있냐?”

“이게 뭐예요?”

“아까 우연히 기사를 검색하다가 보게 되었는데, 김 사장이랑 현민이가 뉴스에 나오더라고.”

“어머, 여보. 김 사장님이랑 현민이가 나왔으면 사업이 엄청 잘 나간다는 내용인가요?”

“엄마, 그게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아요. 두 사람을 고소한 사람이 있다는 것 같은데요...”

“그렇지, 진성아? 아빠도 너무 놀라서 다시 읽고 또 읽고 하던 중이야.”


진성은 무척 화가 난 표정을 했다. 이번엔 바로 현민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했다. 현민은 또 뱀 같이 진성을 유혹했고, 진성은 또 넘어가고 말았다. 이러한 공방이 계속되었다. 남식은 우연을 가장하여 계속적인 팩트 폭격을 날렸고, 현민과 김 사장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런 공격들을 받아넘겼다. 


며칠 뒤, 남식이 명훈이 일하는 경찰서 마당에 서 있다.


“정말 이거 쉽지 않네.”

“진성이가 아직도 옥장판 팔고 다녀?”

“응, 내가 사업 설명회 다녀와서 계산식도 풀어주고, 명훈이 네가 알려준 기사도 보여줬는데 아직도 고집을 부리네. 이상한 걸 느낄 때마다 친구 현민이라는 녀석이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서 더 깊이 빠져드는 느낌이 들어.”

“거참, 큰 일이구만. 근데 남식이 자네도 너무 깊이 파고드는 건 아닌 가 걱정되네.”

“설마 큰일이야 생기겠어. 진성이가 빨리 돌아와 주면 좋겠는데... 어디까지 해야 하나 싶구먼.”

“아, 그러고 보니 피해자들 측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들 중에...”


명훈은 김 사장이 사실은 이웃한 지역 연주 시의 조폭이었으며, 현민은 얼굴 마담일 뿐 운전기사나 수행 비서는 같은 폭력조직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연주 시에서도 같은 다단계 사업으로 인해 수사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얼마 전에 알게 된 내용을 전달해주었다고 했다. 남식은 이대로 가다간 정말 진성을 잃어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다음 행보를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그날 밤, 안방에서 남식과 혜정이 긴밀히 대화를 나눈다. 사업하러 다닌다고 아직 진성은 들어오지 않았고, 효성은 음악학원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다. 남식은 명훈과 만나 알게 된 사실들을 혜정에게 알려주었고, 혜정은 크게 놀랐다.


“여보, 우리 진성이 어떡해요... 정말 큰일 날까 너무 걱정돼요.”

“그러게... 생각보다 너무 큰 조직이 연관되어 있어 나도 걱정되네.”

“그럼 이번에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우리 진성이가 그 사업에서 손을 떼게 해야지.”

“보험금으로 옥장판 사업 정리하게 하고 강제로 나오게 하면 안 될까요?”

“그렇게 해서는 완전히 진성이가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며칠 후, 집 전화가 울린다. 식탁에서 콩나물을 다듬던 혜정이 손을 헹구고 급히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여기는 연제 대학병원 응급실입니다. 최남식 씨 댁 맞습니까?”

“네, 맞는데요. 병원이라고요?”

“네, 연제대 응급실입니다. 최남식 씨가 방금 응급실로 실려 오셨습니다. 빨리 와주셔야겠습니다. 생명이 위독합니다. 급히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빨리 와주세요.”

“네? 최남식 씨 맞나요?”

“네. 서남 시 송현로 304번지에 사시는 최남식 씨입니다.”

“아...... 네. 바로 가겠습니다.”


혜정은 충격을 받은 상태로 정신없이 진성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버튼이 잘 눌러지지 않아 여러 차례 시도 후 드디어 연결이 되었다. 그러나 진성은 받지 않았다. 다급해진 혜정은 억지로 힘을 내 안방으로 들어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열어 효성에게 전화를 했다. 효성에게 연제 대학병원 응급실로 오라고 하고 지갑과 옷가지를 챙겨 집을 나섰다. 오른발에는 흰 양말을 신고, 왼발은 맨발로 뛰어나간 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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