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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ul 14. 2021

으악새의 추억

[글모사 9기] 주제 7: 추억

빵빵

자동차 경적소리에 정신을 차린 혜정이 고개를 들어보니 정호의 차가 보인다. 보조석 차창이 내려오더니 효성의 얼굴이 튀어나온다.


“엄마, 우리 왔어요. 얼른 타세요.”

“어.. 응..”

“누님, 많이 기다리셨죠?”

“아니야, 나온 지 얼마 안 됐어. 효성이랑 만나서 왔구나. 고마워, 동생.”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효성아, 진성이는 그쪽으로 바로 온다고?”

“네, 외삼촌. 직장에서 바로 오기로 했어요.”


얼마 간 차 안에 정적이 흐른다.


“누님, 벌써 자형 그렇게 된 지 1년이 지났네요.”

“응, 그러네.”


혜정의 얼굴에 여전히 생기가 없다. 정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더없이 밝고 맑던 혜정은 1년 전 그날, 사라져 버렸다. 언젠가 꼭 하겠다 노래 부르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도 시작하고, 봉사활동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혜정은 별로 기뻐 보이지 않았다.


남식의 사고가 있던 밤. 가족들이 모두 호출되어 병원으로 달려왔다. 가장 먼저 도착한 혜정은 정신없이 남식을 찾았다. 이전 교통사고를 떠올리게 할 만큼 피투성이였다. 경찰에 따르면 남식은 인적이 드문 도로 가에 많이 맞고 쓰러져 있었으며 사고가 아닌 구타로 인한 중태로 보인다고 했다.


급하게 수술에 들어갔으나 이전 사고로 인해 체력이 약한 상태라 회복하는데 오래 걸렸다. 중환자실에 입원을 해야 할 정도였다. 며칠 후,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남식이 깨어났다는.


“아빠, 아빠! 저 알아보시겠어요?”

“여보! 정신이 들어요?”

“아빠, 괜찮아? 아빠, 나 누군지 알겠어요?”


세 식구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눈을 겨우 뜬 남식은 끔벅이며 그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리고 매우 느릿한 속도로 왼손을 들어 올리고자 했다. 혜정이 남식의 손을 붙잡고 자기 볼에 비볐다. 남식이 입을 열었다.


“진... 진.. 성이...”

“아빠, 저 여기 있어요. 말씀하세요.”

“진성이, 사... 업... 안... 돼...”

“아빠, 사업이요? 그게 왜요?”

“안 돼... 안.... 안.. 돼...”

“아빠, 무슨 말씀이세요. 아빠!!”

“여보, 무슨 말씀이세요! 여보!”


그 말을 남기고 남식은 눈을 부르르 떨었다. 이어 혜정이 잡고 있던 남식의 왼손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깜짝 놀란 가족들이 남식을 애타게 부르며 울부짖었으나 그의 고개가 툭하고 떨어질 뿐이었다. 그렇게 남식이 그들의 곁을 떠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말하지도 못한 채.


차가 멈추는 느낌이 들더니, 시동이 꺼진다.


“누님, 다 왔습니다.”

“어, 응. 그래.”

“엄마, 괜찮아요?”


효성이 다정스럽게 다가와서 자연스럽게 혜정의 팔을 끼고 부축한다. 남식의 유골을 안치한 납골당에 도착한 것이다. 미리 와 있던 진성이 다가온다.


“엄마, 오셨어요.”

“응. 왔니.”

“외삼촌, 오랜만에 봬요.”

“그래, 진성아, 잘 지냈니?”



몇 개월 전.

남식의 친구 명훈이 그간 수사한 내용을 알려주러 혜정에게 만나자고 했다. 혜정은 몇 개월 전부터 집 앞 대형 마트에서 캐셔를 시작했다. 퇴근 시간이 몇 시간 남지 않아, 그 후에 만나기로 했다. 혜정은 진성과 효성에게도 함께 나가자고 했다. 약속 장소인 카페에 도착하여 명훈을 만났다. 간단한 인사 후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명훈이 삼촌, 뭐든 말씀해 주세요. 괜찮아요.”

“응, 그래. 진성이 너 혹시 아직도 옥장판 사업하고 있니?”

“네,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고요, 다른 제품 쪽으로도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삼촌, 우리 형이 생각보다 사업을 잘해요.”

“흠.. 그렇구나... 그럼 제가 수사한 내용 전체를 말씀드릴 텐데 일단 끝까지 다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명훈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진성이 하고 있는 옥장판 다단계는 김 사장이 원래 속해있던 연주 시의 폭력 조직이 운영하던 것을 이들이 살고 있는 정우 시까지 세력을 확장한 것이라고 했다. 남식은 처음부터 진성의 옥장판 사업을 정리할 돈을 가지고 있었으나, 진성에게 스스로 돌이킬 기회를 주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진성은 그럴 때마다 현민에게 빠져들어 옥장판 사업에 더욱 깊이 관여하게 될 뿐이었다. 남식이 다급함을 느끼고 명훈을 찾았을 때는 이미 김 사장이 여러 피해자들로부터 고소를 당하여 소송 중이었고, 폭력 조직과 관련해서도 수사가 이미 진행된 상태였다.


“그래서 너희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고 김 사장을 찾아갔어.”

“김 사장님을요?”

"그것도 여러 차례 갔어. 내가 경찰에 맡기라고 했는데도 빨리 해결하고 싶다고 고집을 피우더라고."

“설마 김 사장 배후 조직 때문에...?”

“네, 그 설마가 맞습니다. 혜정 씨. 김 사장을 찾아가서 진성이는 이 사업과 상관없는 사람으로 살도록 하겠다고 엄포를 놓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않으면 언론에 피해사실을 고발하겠다고 말하겠다더니... 그 전화 이후로 연락이 두절되더니 응급실에 실려 온 거죠.”

“서... 설마요... 설마 김 사장님이 조직 폭력배와... 연관 있을 리가 없어요. 설마, 아닐 거예요.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당황하고 놀란 진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카페 안을 쩌렁하고 울렸다. 진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에서 나가버렸다.


“삼촌... 그러니까.. 김 사장님이.. 아니 김 사장이라는 사람이 우리 아빠 그렇게 만든 거예요?”

“응. 그동안 CCTV와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려고 백방으로 애썼는데 그렇게도 없더니 겨우 몇 개 찾았어. 그 조직에서 우리가 확인하기 전에 이미 손을 썼더라고. 남식이가 김 사장네 건물에서 나온 뒤에 길을 걸어가는 도중에 그들에게 끌려간 모습이 찍힌 영상을 찾았어. 그리고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 찍힌 것도 확보했는데 같은 사람들이었지.”

“그렇군요. 그러면 역시 남식 씨 죽음에 김 사장이 관련되어 있었군요....”

“네, 이번에 확실히 할 수 있었죠. 영상 덕분에 김 사장과 그 일당을 살인교사 및 살인죄로 구속하게 될 것 같습니다.”

“명훈 씨, 고마워요. 그동안 정말 애 많이 쓰셨어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애들 아빠 갑자기 그렇게 가고 나서 세상이 너무 허무하기도 하고 무슨 일이었나 많이 궁금했는데... 남식 씨가 우리 진성이를 구하려고 했던 거군요.....”


슬픈 미소로 감사의 말을 전하는 혜정을 보며 명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납골당. 남식의 유골함 앞에 혜정, 진성, 효성이 서 있다.


“여보, 남식 씨. 우리 왔어요. 우리 진성이랑 효성이랑 같이 왔어요.”

“아빠, 저희들 왔어요. 잘 지내시죠?”

“아빠, 잘 있어? 아빠, 보고 싶어!”


갑자기 막내 효성이 울기 시작했다. 모두들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렸다. 마치 장례식장에 온 것처럼 꺼이꺼이 우는 그들의 곡소리가 너무도 처연해 누구도 그만두라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진성이 털썩 무릎을 꿇으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모두 제가 잘못한 건데... 제가 너무 어리석어서 아빠를 돌아가시게 했어요. 아빠, 미안해요. 아빠! 아빠!”


혜정이 진성을 꼭 안아준다. 효성도 같이 울며 형을 껴안았다.


“진성아, 아니야. 네가 아빠를 죽게 한 게 아냐. 아빠가 널 위해 모든 것을 해주고 싶으셨던 거야. 괜찮아, 괜찮아.”


진성과 효성이 엄마의 토닥임에 잠잠해지자 혜정이 입을 열었다.


“여보, 당신 덕분에 우리 진성이 드디어 새 출발하게 되었어요. 김 사장은 당신 살인 교사한 죄로, 그리고 당신 많이 때린 사람들은 살인죄로 구속되어 재판 중이에요. 명훈 씨가 고생해줬어요. 우리 진성이는 이제 다른 일을 찾아서 하고 있어요. 진성이 네가 아빠한테 이야기해줄래?”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살아계실 때.. 끅.... 살아계실 때 끅 알았으면 끅 좋았을 걸... 아빠가 나를 위해서 사업설명회도 와주시고 계산식도 써 주시고, 뉴스도 보여주실 때 알았으면 좋았을 건데.. 아빠... 끄윽끄윽 죄송해요.. 아빠.. 끄윽끄윽 아빠 덕분에 잘 마무리했는데 아빠 사고 났을 때 보상금으로 사업을 정리하려고 하니... 아빠를 2번 죽이는 것 같아서 너무 힘들었어요. 아빠 사고 이후에 제가 어른인 채 하려다가 나쁜 사람들에게 큰 봉변을 당했네요. 아빠, 저를 위해서 해주신 일들 제가 알아채지 못하고 너무 늦게 돌아와서 정말 죄송해요. 아빠.... 끄윽”

“아빠, 있잖아. 형이 그래서 요즘엔 낮으로는 택배 아르바이트하고, 밤으로는 공부하고 있어요. 형도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 무척 힘들어했어요. 저도 그렇고요.”

“여보, 우리 효성이 이제 대학 가요. 당신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죠, 여보... 여보...”


1년이 되기까지, 그들은 참 많이 아팠다. 남식의 유언에도 옥장판 사업에서 돌이키지 않는 진성으로 인해 혜정은 많이 괴로워했다. 자신의 열정을 바치던 옥장판 다단계 사업의 실체를 알고 나서 진성은 한동안 방황하며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혜정과 진성의 관계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혜정은 웃는 일을 멈췄고, 진성은 그런 엄마를 보며 죄책감을 느껴왔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남식의 죽음을 기념하러 모인 곳에서 자신의 마음을 쏟아내며 서로에게 위로와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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