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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ul 26. 2021

퇴고의 맛

글모사 9기 퇴고 과정을 거치며

퇴고를 싫어했다. 그래서 글쓰기를 안 했다. 고치는 건 나를 부정하는 느낌이라 거북했다. 그러나 공저 집필을 하며 어쩔 수 없이 퇴고와 마주해야 했다!


 양 줄이기, 친한 친구가 전학 가는 느낌

각자에게 할애된 양은 17쪽. 첫 페이지에 프롤로그, 마지막 페이지에 에필로그가 들어가니, 남은 15쪽 안에 5개의 글을 넣어야 한다. 또한 1,000~1,100자 내외로 각 글을 완성해야 한다. 이제껏 써둔 7편의 글 중 5편을 골라야 해서 글 2개를 버렸다. 그러고 나서 제시된 조판 양식에 5편을 그대로 넣어봤다. 헉.. 73 페이지. 너무 많다.


핵심적인 것만 남기고 대화 부분을 모두 삭제했다. 양적인 부분에서 2/3이 줄었다. 아직도 남은 글자가 많지만, 떠나보낸 친구들이 너무 많아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용 줄이기, 다이어트하는 느낌


분량에 맞추기 위해 무얼 더 줄일까 고민하다 보니 설명이 긴 것들이 보였다. 인물 묘사나 사건 설명이 명료하지 않은 것들도 발견되었다. 5,000자 내외의 글자에서 소화되기엔 등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여 주인공의 가족 외에는 다 정리했다.


각 글들이 1,100자 내외로 다듬어졌다. 1차 퇴고가 끝나 카페에 업로드했다. 뿌듯하면서 뭔가 해낸 느낌도 들었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느낌! 몸이 가벼워지고 즐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 흐름 수정, 뼈를 깎는 고통


스케줄에 따라 조기준 에디터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출판 및 편집 일을 오래 해오신 포스가 남달랐다. 전체적으로 묘사, 표현은 잘 되어 있어서 딱히 편집할 부분이 없어 보인다고 하셨다. 그러나 혹시라도 소설 다운 느낌을 더 살리고자 수정할 마음이 있는지 떠 보셨다. 그렇다고 했더니 3화에서 주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 앞 부분을 수정할 필요가 있음을 말씀하셨다. 충격이었다.


이왕이면 좀 더 좋은 글을 만들고 싶었으므로 에디터님의 조언에 따라 1화와 2화를 새로 쓰기로 했다. 근데 호언장담이 무색할 정도로, 시간이 지날수록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막했다. 그래서 일단 1,2화를 지우고, 3~5화를 다시 읽었다. 중심 사건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1차 퇴고는 퇴고도 아니다 싶었다. 멘붕이 와서 쓰러질 것 같았다. 아예 새로 쓸까 고민이 되기도 했다. 머리를 쥐어짜 마감 시간 직전 겨우 완성했다. 아무리 고쳐도 완성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글모사 공저 출판은 책 만드는 과정을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책' 만들기가 아니라 '글'을 짓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마감 시간에 맞춰 글을 쓰면서 맛본 창작의 고통은 퇴고의 그것에 비할 바 아니었다. 형식을 갖춰 분량과 내용을 줄이고, 아예 2편의 글을 새로 쓰면서 알게 된 '퇴고'의 맛은 보약과 같았다. 처음엔 쓰지만 나중에는 몸에 좋은 것을 알고 더 찾게 되는 그런 느낌.


17페이지에 글을 줄여 넣는 것보다 새롭게 다듬는 일이 훨씬 고된 작업이면서도 중독성 있었다. 2편을 새로 쓰니 나머지 내용에도 변화가 생겨야했다. 아주 짧은 소설인데 뭐 그리 손볼 게 많은 지, 마감 시간 직전 또 한번 고쳤다. 지금도 자꾸만 고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것이 바로 퇴고의 진정한 맛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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