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주 Sep 09. 2021

빵심재 구운몽

[신나는 글쓰기 6기] 11일 차: 이야기 만들기

<본 소설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배경, 사건 등은 모두 사실이 아님을 밝힙니다. >


그러니까 말이다, 옛날 옛적까지는 아니고 약 20년 정도 전에 빵심재라는 마을이 있었단다. 그런데 그 마을은 어디에도 있지만 또 어느 곳에도 없는 신기한 마을이었지. 마을이 아닌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암튼 그 마을에 빵심이라는 젊은 사서가 하나 살았어. 얼굴은 허여멀겋고 키는 장대 같이 컸지. 그리고 그 예전에 유행했던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저승사자 이동욱 비슷하게 생겼지. 그는 서재 마을 도서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어느 날 관장이 빵심을 불렀어. 그러더니 이웃마을 심재 도서관에 다녀오라고 하는 거야. 그러면서 신신당부했어. 절대 심재 도서관에 20분 이상 머무르지 말고 바로 돌아오라고 말이야. 그래서 빵심은 단팥빵을 몇 개 챙겨 길을 떠났지. 빵을 씹으며 하루를 꼬박 걸어 심재 도서관에 도착했어.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 도서관은 특이하게도 여자 사서들 밖에 보이질 않았다는구나.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그래그래, 좋은 질문이야. 빵심은 심재 도서관에 있던 8명의 여자 사서들과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빠지고 말았어. 관장님께서 지시한 내용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이야.. 20분이 뭐냐, 한나절이나 지나버렸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그렇지. 이제 말해주려고 했단다. 8명의 여자 사서들은 빵심의 해박한 문학에 대한 지식에 푹 빠져드는 듯했어. 빵심이 무슨 이야기를 하던 너무나 재미있게 들어주는 거야. 여행했던 이야기, 역사 스토리, 문학적인 관심, 인생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을 말이야. 그런데 이상한 건 8 사서가 재미있어할수록 빵심은 마음속에 허무함이 느껴지더라는 거야. 평소에 탐구심이 강한 사람이었으니, 무조건 흥미로워하는 사서들의 반응이 첨에는 좋았는데 나중에는 허무해지고 만 거지.


그러다 동이 트는 것을 깨달은 빵심은 소스라치게 놀라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서재 마을로 돌아왔어. 그 후, 빵심은 껍데기만 남은 사람처럼 멍하니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어. 청소를 하다가도, 반납된 책을 다시 꽂아두다가도, 심지어 밥을 먹다가도 멍해지는 빵심을 관장님이 발견하고 말았지.


관장님이 물었어. 대체 무슨 일이냐고. 그랬더니 빵심이 말했어. 책만 보고 글만 이야기하는 삶을 떠나 세상을 직접 탐험해보고 싶다고.




잠자리에서 일어난 빵심은 깜짝 놀랐단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도서관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서 본 것 같은 아름다운 여인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 거야. 게다가 <섀도우 헌터>에 나오는 제이스처럼 가죽으로 된 바지를 입고 검은 티 바깥에도 가죽조끼를 걸치고 있는데 심지어 근육질로 변해 버린 자기 팔을 보면서 깜짝 놀란 거지.


어떻게  거냐고? 무슨 일인지 궁금하구나. 재촉하지 말고 계속 들어보렴. 근육질 빵심이 정신을 차리고 자기 앞에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어. <승리호> 등장하는 김태리처럼 생긴  여인은 멍해진 빵심에게 물었대. 빵심이 가본 곳들, 그러니까 여행했던 곳을 빨리 대라는 거야. 빵심은 너무 황당해서 그걸  묻는지 물었지. 그랬더니  여인은 이렇게 말하는 거야. 자기는 불방울이라는 사람인데 심이 여행했던 곳에 대해 질문을  거니까 빨리 장소 하나를 내놓으라는 거야. 황당한 질문이었지만 빵심은 자기가 여행했던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떠올렸지. 그러자 불방울이 말했어. 그곳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것을 2 자로  보라는 거야. 그런데 이게 웬일!! 몸만 근육질이  것이 아니라 머리까지 근육이 되어버린 건지 평소에는 그렇게 쉽게 써지던 글이 하나도 써지질 않는 거야! 2 자는 무슨 200자도 쓰지 못한 빵심에게 불방울은 레이저 같은 불이 나오는  총을 꺼내더니 스페인의 열기를 선물했어. 빵심은 피부가 벌겋게 되어 불방울의 동굴에서 도망쳐 나왔지.


밖은 매우 어두컴컴했어. 어둠에 눈이 적응되려던 찰나 어디선가 큰 날개가 퍼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어. 휙 하는 소리가 나더니 빵심의 어깨가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어. 뭔가 뾰족한 것들이 빵심의 어깨와 목을 파고들어 피가 나는 것 같았대. 펄럭 펄럭하는 소리와 빵심이 고통에 내지르는 소리만이 밤을 채웠대. 결국 빵심은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해가 뜨고 있었지. 창 밖으로 멀리 바닷가와 산이 보이는 걸로 봐서 아주 높은 곳에 와 있는 것 것 같았어.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금발의 곱실거리는 머리를 한 여인이 보이더래. <콘스탄틴>에 나오는 가브리엘 천사처럼 날개를 가지고 있었고, 손과 발끝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자라 있었는데 마치 독수리 같은 느낌이었대. 빵심이 대체 누군데 나를 이렇게 대하느냐고 역정을 냈어. 그러자 여인은 자신의 이름은 차풍으로 역사학자라고 했어. 그러면서 빵심에게 역사적 사건들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고증하고 풀어갈 건지에 대해 논하라고 하는 거야! 평소 히스토리에 관심이 많던 빵심은 뭐든 이야기할 수 있다며 자신 있어했어. 그런데 웬걸! 빵심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거야! 아까 불방울 앞에서는 자기가 갑자기 다른 세계로 와서 그런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아무래도 뇌가 근육이 된 것 같았어! 금발의 근육질, 가죽 바지를 입은 빵심은 입을 벌린 채 멈춰버렸지! 어떻게 되었냐고? 어떻게 되었을 것 같니? 허허 차풍이 화를 내더니 빵심은 아직 멀었다며 날개 공격을 시작했어. 날개가 하나씩 날아와 빵심의 가죽 바지를 뚫고 팔, 목, 몸통 할 것 없이 빼곡히 박혀버렸지. 빵심은 또 한 번 까무룩 기절하고 말았대.


빵심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맛난 토마토 수프 향이 진동하고 있었어. 그런데 누워있는 곳을 천천히 느껴보니 침대처럼 높은 곳인데 바닥이 너무 차가운 거야. 눈을 크게 뜨고 손으로 더듬으면서 보니 시체 해부용 테이블 위에 누워 있었다지, 뭐니! 깜짝 놀란 빵심이 움직이다가 바닥으로 뚝 떨어지고 말았지. 무릎과 팔꿈치, 엉덩이에 타박상이 느껴졌어. 아흐 하면서 아파하고 있는데 누군가 뚜벅뚜벅 걸어오는 거야! 그 여인은 김향기라는 여배우를 닮았는데 둥근 은테 안경을 쓰고 의사 가운 같은 것을 입고 있었대. 자세히 보니 오른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데 마치 무기를 다루듯 하는 느낌이 들었단다. 빵심이 당신은 또 누구냐고 물었지. 그러자 그 여인이 말했어. 자신은 향숙이라고 하고 빵심의 문학적 지식을 테스트하기 위해 여기 있는 거래. 그러면서 빵심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지. 근육질 빵심은 아무것도 생각해내지 못하고 쥐, 쥐 하면서 쥐 이야기만 했어. 향숙은 쥐가 뭔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냐며 오른손으로 안경을 올리며 빵심을 노려보았어. 그러나 '쥐'라는 단어 외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빵심은 어버버 하다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지. 그러자 향숙은 무기처럼 들고 있던 스마트폰에서 이모티콘을 소환하기 시작했어. 나애미 이모티콘이 좌르르 소환되어 빵심을 괴롭히는 거야! 같이 김장을 하자고 하지를 않나, 빨리 이불 빨래 돌리라고 잡아당기지를 않나, 맛난 음식을 잔뜩 차려와서 같이 먹자고 하지를 않나.. 빵심은 몸이 열 개여도 다 소화할 수 없는 나애미 이모티콘들에게 사로 잡혀 토마토 수프를 억지로 먹으며 한참을 괴롭힘을 당했어.


그러다 갑자기 향숙이 이모티콘들을 다시 스마트폰으로 불러들이더니,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해부실을 나갔어. 혼자 남은 빵심은 탈출하기 위해 사방을 뒤졌어. 그런데 이상한 건 모든 창문이 까맣게 선팅 처리가 되어 있었고, 창문들이 모두 꽁꽁 잠겨 있어서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는 거야. 아무래도 출입문으로 나가야 되겠다고 생각한 찰나! 해바라기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게 아니겠어! 빵심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어. 걸어 다니는 해바라기라니! 아무래도 자신이 꿈을 꾸는 거 같다고 생각한 빵심은 자기 얼굴을 꼬집었어. 아악! 근데 너무 아픈 거지. 해바라기는 빵심의 얼굴 가까이까지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오더니 계속 쳐다봤어. 빵심이 물었지. 당신은 또 누구냐고. 해바라기는 말했어. 자신은 '선라'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아이들의 마음속에 사는 이야기 요정이라고 말이야. 그러더니 빵심에게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그림책을 하나 말해보라고 했어. 빵심의 머리에는 '어린 왕자'라는 단어가 딱 떠올랐어. 빵심은 자신 있게 '어린 왕자!'라고 말했지. 그러자 선라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거야. 왜 그러냐고 했더니 선라가 그러는 거야. 어린 왕자라는 그림책은 이 세상에 없다고! 빵심이 혹시 동화책으로는 있는 거 아니냐고 주장하니까 선라가 아주 빵심을 이상하게 쳐다보더래. 동화책이 뭐냐고 말이야! 빵심은 겨우 생각해낸 책을 '여기 세계'에서 인정해주지 않는 것도 황당했고, 동화책도 없는 곳에 와서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말았어! 생각해보렴, 빵심은 근육질에 금발 머리, 가죽바지를 입고 있는데 계속해서 나오는 여인들은 이상한 이야기만 하고 있잖니. 혼자 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빵심에게 선라가 공격을 시작했어. 해바라기 얼굴에서 씨앗을 하나 빼더니 샬라 샬라 주문을 외우는 거야. 그러자 그 씨앗은 그림책으로 변했어! 선라가 그림책을 펼치자 책 속 그림들이 살아나 빵심을 공격하기 시작했어. 어디서 본 것 같은 돼지 3마리와 또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에 밥이 붙어 있는 아저씨가 달려 나와 빵심에게 구해달라고 떼를 쓰는 게 아니겠니! 빵심은 도와주는 척하면서 출입문 쪽으로 도망을 갔어. 그러자 돼지들과 아저씨가 계속 따라오는 거야. 붙잡힐 것만 같은 추격 속에 빵심이 드디어 건물 밖으로 나가는 현관을 발견했어.


이 문만 통과하면 따라오던 것이 멈출 것 같다는 직감에 빵심은 있는 힘껏 달렸어. 현관문 근처에 다가가자 자동문처럼 문이 열렸어. 이제 탈출이구나! 하며 즐거워하는 빵심은 마지막 힘을 다해 발을 내디뎠어! 그 순간 빵심은 뭔가 쾅하고 부딪쳤어. 빵심이 일어나면서 쳐다보니 <사임당, 빛의 일기>에 등장한 배우 이영애처럼 차려입은 고운 여인이 자기 앞에서 서 있는 거야. 빵심과 부딪친 일이 없는 것처럼 고아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인에게 홀려 빵심은 자신을 좀 구해달라고 했어. 그러자 그 여인은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지. 빵심은 드디어 살아났구나 생각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여인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더래. 그렇지만 돼지들이랑 아저씨가 여인을 보고 바로 도망가기에 빵심은 따라가 보기로 했어. 여인은 2층으로 올라가더니 고풍스러운 무늬로 장식된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했어. 여인이 데려간 장소에는 멋진 그림과 글씨들이 걸려있었대. 빵심은 황홀한 상태로 여인의 이름을 물었지. 여인은 자신의 이름이 화신이라고 했어. 화신윽 빵심에게 따뜻하고 향긋한 차를 내주었지. 여인의 작품들 속에서 기분이 좋아진 빵심은 차를 마시다 스르륵 잠이 들었어. 그런데 자다 보니 몸을 계속해서 조여 오는 느낌이 들더래! 그래서 눈을 떠보니 아까 벽에 예쁘게 걸려 있던 글씨들이 빵심의 몸을 탱탱 감고 있는 거야. 마치 큰 구렁이가 된 것처럼 커다랗게 변한 글씨들이 빵심의 몸을 돌돌 감고서 계속 조여 오고 있었던 거지. 빵심은 너무 놀라 화신을 불렀어. 화신은 안쪽에서 발을 걷고 도도하게 걸어 나왔어. 그러면서 말했지. 빵심이 이곳에 눌러앉아 글씨와 그림을 배우지 않으면 절대 보내주지 않겠다고 말이야. 근육질 빵심은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며 자신을 놔달라고 했더니 왜 괴롭히느냐고 반발했어. 그러자 화신이 자신이 있던 공간으로 돌아가버리는 거야. 그렇게 반항하던 시기를 3일 거치면서 쫄쫄 굶은 빵심은 결국 굴복하고 말았지. 그러자 글씨들이 빵심을 놓아주었어. 모든 힘이 빠진 빵심은 화신 곁에서 글과 그림을 배우며 2년이란 세월을 보내게 되었어.


하루는 잠에서 깨어 보니 자신이 화신의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있더란다. 그런데 자기한테 가방이 하나 생겨있더래. 열어보니 화신의 집에서 보낸 기간 동안 쓰고 그린 것들이 모두 들어있더래. 그러면서 돌아보니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이 사극에 등장하는 한국식 무사의 것으로 바뀌어 있더래. 검객이 입을 것 같은 복장을 하고 가방을 들고 있는 거야. 빵심은 황당했어.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어. 사방은 온통 모래뿐이고 심지어 바람도 불고 있었지. 그런데 어디에선가 인위적인 모래바람이 크게 불면서 무언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어. 그쪽을 바라보니 아주 큰 트럭이 보이는 거야. 모래를 피하기 위해 옆에 있던 큰 바위 옆으로 빵심은 몸을 숨겼어. 그 트럭은 딱 <매드 맥스>에 등장하는 것처럼 생겼는데, 트럭 문이 열리더니 퓨리오사처럼 생긴 여인이 멋지게 내리는 거야. 그러더니 바위 옆에 몸을 숨긴 빵심에게 다가왔어. 빵심이 물었어. 당신은 또 누구냐고. 그 여인은 빵심에게 자신의 이름은 박하라고 했어.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지. 빵심이 이곳을 탈출하려고 한 것을 알고 있다며, 빵심이 가진 글과 그림이 모두 저장되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어. 그러더니 박하는 트럭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다 내리게 하더니 트럭에 싣고 있던 물을 이용해 빵심을 공격하기 시작했어. 빵심은 재빨리 글과 그림이 든 가방을 자기 뒤로 숨겼어. 그렇지만 사방에서 공격해오는 그들의 물살을 이기지 못했어. 결국 2년간 화신 밑에서 배웠던 모든 것들이 박하의 물 공격으로 저장되지 못한 상태가 되고 말았어. 망연자실해진 빵심은 물이 넘치는 사막에 주저앉았어. 빵심이 저장한 모든 것을 빼앗은 박하는 자기 동료들을 다시 트럭에 태우고 길을 떠나버렸어.


빵심은 너무 괴롭고 허무해서 밤새 엉엉 울다 지쳐 잠이 들었어. 으슬으슬하고 축축한 기운에 잠이 깼는데 바닷가에 와 있더래. 파도가 모래 위에 누워있는 자신을 철벅철벅 때리고 있었던 거지! 게다가 한복 차림이었으니 얼마나 겹겹이 축축 했겠어. 빵심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모래사장 뒤쪽에 있는 소나무 숲으로 들어갔어. 물과 바람에서 조금 멀어지니 살 것 같았나봐. 그런데 갑자기 저 멀리에서 밝은 불빛이 나타났어. 빵심은 눈을 조그맣게 뜨고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쳐다보았어. 밝은 불은 그 마을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이었어. 어떤 사람이 바닷가를 지나다가 빵심을 보고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온 거 같더래. 마을 사람들을 대표해서 한 여인이 나섰지. 빵심을 보고서 이제 당신은 곧 죽게 될 것이라고 하는 거야. 이제 빵심이 뭐라고 할지 알겠지? 맞아. 빵심은 당신은 또 누구냐고 했지. 여인은 자신을 열작이라고 소개했어. 그러면서 이 마을은 소멸 에너지가 가득한 곳이어서 생명으로 충만한 사람이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대. 그러니 이런저런 고생을 하다 이곳에 온 빵심에게는 생명 에너지가 적어 곧 죽을 거라고 한 거야. 빵심은 어떻게 하면 생명 에너지를 얻을 수 있냐고 물었어. 그러자 이제까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보라고 했어.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재미난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에게 자연이 자신의 생명 에너지를 부여해준다고 말이야. 빵심은 자신이 이야기를 해줄 테니 따뜻한 차와 빵을 좀 달라고 했어. 소멸 에너지가 가득한 마을 사람들은 오랜만에 듣게 될 이야기가 궁금하여 빵심을 마을 회관으로 데리고 갔지. 통나무 집으로 된 그곳에 따스한 차와 수프, 빵이 제공되었고 옷을 갈아입고 난로 앞에 앉은 채 이불을 뒤집어쓴 빵심은 이야기를 시작했어. 사람들은 빵심이 지금 있는 세상에 오고 난 이후로 겪게 된 일들을 들으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자연이 주는 생명력을 나눠가질 수 있었지.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져 3일 밤낮 동안 빵심은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어. 그러자 소멸 에너지로 가득했던 마을은 생명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점점 젊어지기 시작했대. 빵심도 그들과 함께 건강해지고 젊어지기 시작했어. 심지어 화신에게서 2년 간 글과 그림을 배우느라 빠졌던 근육도 다시 살아나더래.


생명이 솟아나는 기쁨에 취하기도 전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몰려와서 빵심을 어디론가 집어던졌어. 땅에 툭하고 떨어진 빵심이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녘 숲 속이었어. 먼지와 흙을 툭툭 털고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다 빵심은 몸이 굳어버렸어. 이쪽 세계로 와서 만났던 여인들이 모두 함께 오고 있는 거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열기를 뿜던 불방울과 날카로운 발톱과 날개로 공격하던 차풍, 이모티콘 나애미로 공격하던 향숙, 그림책 속 그림들을 날리던 선라, 글과 그림을 배우게 2년이나 붙잡고 있었던 화신, 물 공격으로 저장된 모든 글과 그림을 날려버린 박하, 그리고 좀 전까지 같이 있던 열작까지!!! 7명의 여인이 또 다른 한 사람의 여인과 함께 빵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어. 빵심은 최선을 다해 도망쳤어. 8명의 여인들에게선 더 이상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는데도 빵심은 목숨을 걸고 도망치고 있었지. 그러나 소용없었어. 새롭게 등장한 마지막 여인은 <엑스맨>에 등장하는 진 그레이처럼 텔레파시와 염력을 사용할 수 있었던 거야. 순식간에 그 여인은 빵심의 마음을 장악한 후 빵심이 움직이지 못하게 몸을 제어한 뒤 땅에서 2m나 들어 올렸지! 빵심이 물었어. 당신은 대체 또 누구냐고! 여인은 빨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대답했어. 자신의 이름은 일과살이라고. 이제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면 빵심이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게 해 주겠다고 말이야. 빵심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어. 그러자 일과살이 말했지. 빵심, 자신에 대해 논해보라고 했어. 소멸 에너지가 많은 마을에서 다시 근육질로 살아난 빵심은 다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까 봐 걱정했지만 생명 에너지 덕분인지 이곳 세계에서 겪은 일들과 그 전 세계에서 알던 것들을 모두 기억해낼 수 있었대. 빵심이 서서히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일과살은 빵심을 땅으로 내려주었어. 근처에 있던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빵심과 8명의 무시무시한 여인들은 이야기를 듣고 나누며 즐거운 밤을 보냈지.





누가 툭툭 치는 것 같은 느낌에 눈을 들어 보니 관장님이 빵심의 어깨를 두드리고 계셨어. 허여멀건 이동욱 같이 생긴 빵심은 주변을 둘러보았어. 빵심은 도서관 한 귀퉁이에 주저앉아 잠이 들었던 거야. 관장님은 많이 피곤하면 들어가서 쉬라고 하시면서 자리를 떠나셨어. 빵심은 8명의 여인과 함께 했던 그쪽 세계를 떠올렸어.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도망치고 피 흘리던 것들, 2년이나 글이나 그림을 배워야 했던 일들 등 여러 가지가 떠오르자 몸에 한기가 느껴졌어. 그러면서 서재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도 같이 생각났지. 글과 책 속 상상의 세계에만 빠져있는 자신이 한심해서 멍했던 시간들도 같이 말이야.


그러면서 자신이 허여멀겋고 빼빼 마른, 단팥빵을 좋아하는 빵심이지만 도서관 사서로서 글을 읽고 책을 쓰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지금의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단다.


이야기가 벌써 끝난 거냐고? 그렇지. 빵심재 구운몽은 여기까지란다. 더 해달라고? 그러면 이번에는 우리 이쁜 손자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볼꺼나?




1관문 - 불방울: 여행에 대한 공격

2관문 - 차풍: 한국 근대사 공격

3관문 - 향숙: 이모티콘 공격, 문학 공격

4관문 - 선라: 그림책 공격

5관문 - 화신: 캘리와 그림을 이용한 공격

6관문 - 박하: 저장했던 글을 사라지게 하는 공격

7관문 - 열작: 소멸에너지 공격

8관문 - 일과살: '빵심' 자신에 대한 공격

       

매거진의 이전글 현자의 돌을 찾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