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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Mar 25. 2022

인생 최고의 여행

내 인생 최고의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신혼여행 스토리다!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여행을 다녀보았지만 그중에서 신혼여행을 최고 꼽는 이유는 첫째, 남편과의 '첫' 번째 여행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외삼촌의 소개로 만났고, 열렬한 사랑에 빠져 만난 지 106일 만에 결혼했다. 아무리 좋아해도 서로를 모르기 마련인데, 만난 지 3개월 된 사람과 여행을 떠난 것이니 얼마나 설레면서도 두렵던지.


여행이란! 자고로 사람의 내면을 드러낸다고 하지 않았던가! 일주일 정도 되는 해외여행이니 충분히 남편이나 내 안의 것이 드러날 만한 기간이라 생각도 했다. 하지만 여행지를 고르고, 여행 상품을 선택하는 모든 과정 중에 이런 걱정은 기우임을 알게 되었다. 실은 첫 번째로 선택했던 여행상품에 추가 비용이 많이 발생했기에 아예 새로운 곳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었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원한다면 어느 나라든 어떤 호텔이든 괜찮다고 해 주었다.


여행은 떠나기로 마음먹는 순간 시작되는 것! 계획에 차질이 생기거나 변경 사항이 발생해도 늘 웃으며 배려하는 남편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우리 둘만의 여행'이라는 만족감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평소 안전과 편안함을 추구하기에 주로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므로 신혼여행도 여행사를 통해 준비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를 다녀본 경험으로 패키지는 대부분 단체 관광이 많았기에 당연히 이번 여행도 그렇겠지 생각했다.


한국에서부터 섬까지 함께 이동한 커플들이 꽤 있었기에 당연히 그렇겠지 했는데! 비행기에서 내려 도착했다 알렸더니 가이드가 SUV 한 대만 끌고 나타났다!

헐... 신혼부부 1 커플에 1 가이드라니!


여행 내내 딱 한 사람의 가이드만 상대하니 굉장히 편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막 떠드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돌아오는 비행기를 탈쯤에야 팀과 조금 친해지는 편이다. 그렇기에 부부에게 집중해주는 서비스 덕분에 맘껏 누리고 쉴 수 있었다. 잔뜩 대접받는 기분!


가이드가 재미난 관광상품을 많이 추천했으나 우리가 고른 추가 서비스는 마사지와 랍스터 식당뿐이었다. 패키지 안에 마사지가 3번이나 포함되어 있다는 건 안 비밀 ㅋㅋ.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호텔을 만끽했다.

우거진 숲 속에 둥둥 떠있는 풀이 탁 트인 창문으로 들어오는 곳. 안전하게 설계된 정글로 여행 온 느낌! 너무 좋았다. 룸 서비스로 배달된 식사를 하고 또 쉬고 자고 그러다 가이드가 연락하면 깨서 준비하고 저녁 먹으러 나가고 뭐 이런 식으로 일주일 보낸 것 같다.


그렇지만! 사실 마냥 잠만 자고 뒹굴거린 건 아니다! ㅎㅎ 어린 시절 가난해서 해보지 못했던 것들, 나이 들어서는 유치 해 보여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해보기로 했다. 이런 선택을 애교로 봐주는 남편 덕분에 나는 큰맘 먹고 거대한 튜브를 2개나 구입했다. 호텔 로비에 요청해 빵빵하게 공기를 채운 유니콘과 선인장 튜브를 물 위에 띄우고 우리 부부는 신나게 놀았다.

물총도 샀다. 아주 심심할 때 둘이 물을 쏘며 놀았는데, 남편이 너무 잘 쏘아서 내 물총에 물이 떨어지면 엄청나게 물폭탄을 맞았다. 시야가 가리니 물을 채우는 게 더 어려워 남편 물총의 물이 떨어질 때까지 잔뜩 맞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나는 건 딱 하나 고르라면... 두 사람 다 '도마뱀!'이라고 할 것 같다! 하루는 바닷가에 놀러를 갔는데 내 눈에 이상한 생명체가 포착되었다. 저 멀리 5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어기적어기적 걸어가고 있는 길~~~ 다란 도마뱀이었다! 남편에게 보라고 했더니 갑자기 남편이 영상을 찍으면서 그쪽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안 된다고 말렸더니 더 즐거워하면서 다가갔다. 도마뱀은 우리가 다가가자 아주 조금 속도를 내서 시원한 바위 위로 올라서고 이내 사라졌다. 혀를 내민 길이까지 합하면 족히 2~3m는 될 것 같은 녀석이라 너무 징그럽고 겁이 났는데 남편은 너무 좋아했다. 동물 다큐를 좋아하는 남편은 정말 그 도마뱀을 데려오고 싶었단다.


다음 날 밤, 저녁 식사 후 숙소로 돌아왔다. 열대 기후 태국의 숲 속 독채 빌라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자주 나타났는데 그날 밤 보인 것은 바로 눈이 왕방울 만한 녀석이었다! 카멜레온처럼 큰 눈으로 숙소 입구 현관문에 떡 하니 붙어있는 도마뱀을 보고 나는 얼음이 되었다. 덜덜덜 떨고 있는 나를 본 후에야 도마뱀을 발견한 남편은 휘 휘 하며 녀석을 쫓아냈다. 깜짝 놀라 얼른 숙소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숙소 안에도 들어올까 봐 걱정스러웠다. 휴... 남편은 나를 달래주면서 꼼짝도 못 하고 멈춰버린 나를 놀렸다. 그러면서 말했다.

"아, 아쉽네. 쫓아버리기 전에 한 장 찍어놓을 걸."

아마 내가 싫어하지 않았으면 남편은 도마뱀과 한참을 놀았을지도 모르겠다.




결혼 생활이라는 현실에 돌입하기 직전, 서로를 더 잘 알아갈 수 있는 좋은 도구이자 연애라는 판타지의 끝을 장식하는 것이 바로 신혼여행이 아닌가 싶다. 결혼 전까지 남편을 느낄 때엔 점잖고 매너 있으며 잘 웃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여행을 함께 하면서 처음 본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에 조금 놀랐고 더 많이 매력을 느끼게 된 것 같다.


마음껏 배려하고 넘치도록 챙김 받았던 여행을 통해 앞으로도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이 있어도 알콩달콩 편안하게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안심할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씩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둘이 방끗방끗 웃게 되는 걸 보면 신혼여행이 참 즐거웠다는 걸 느낀다. 그런 여행이 되기 위해 부단히 애써 준 남편이 있었음에 너무나 감사하다.


첫째, 남편과의 첫 여행

둘째, 남편과 나만의 시간

셋째, 남편과 도마뱀


요약해보니 결국 내게 있어 최고의 여행은 '누구와 가느냐'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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