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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Nov 28. 2024

시식회(詩食會)에 초대합니다.

모국어를 의심하며 박참새

양육          



 박참새          



  돈을 못 벌어서 미안해 미안해서 울었다 울면서 화해하자는 편지를 썼다 쓰고 나서는 엄마에게 주면서 엄마 이거 엄마가 대신 전해 줘 말했고 말 없는 엄마는 오래 잠깐 쳐다보았고  나 그 눈 피하지 않았고 귀여운 엄마 언제 이렇게 늙었지 같이 살 날 남은 인생이 짧겠구나 생각하며 과하게 필요 이상으로 사실은 안 그래도 되는데 알지만서도 하루하루 세게 되는 고양이 강아지 같아 그렇다면 내가 이 고양이 강아지 키워야 하는데 마음만 크고 머리는 무거워서 사람 구실을 못 한다 때때로 창피한 일 속상하는 일 부당한 걸 나만 모르는 일 답답한 일 징그럽고 멍청한 일 옷 벗기고 벗는 일 복수하고 싶은 일 죽어서도 잊기 싫은 일 뭐 그런 것들 네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개 허리 숙이며 그래 이참에 스트레칭이다 생각하며 훌훌 털고 내 새끼들 먹여 살려야지 그 생각만 하며 하루 이틀 견디다 보면 어느새 나도 육십 그러다 나의 고양이 강아지들이 또 저들의 고양이 강아지 업어다 키워 먹여 살리는 것일 텐데 출발부터가 잘못이다 단추부터가 꼬였다 이 가디건은 처음부터 망했어요 그냥 다시 짜죠 내게 코바늘 인내 있게 가르쳐 주던 선생님 인자하게 웃으며 말렸지 또 틀릴 것 같은데 어떡하죠 나는 당장 그만하고 싶은 얼굴로 말했지 괜찮아요 그땐 내가 봉합할게요 인생을 건 대수술을 하는 거예요 다독이는 선생님 아냐 난 그래도 할 수 없어 고개를 휘저으며 묻는다 선생님 완제품은 얼마예요 완제품을 주세요 저는 가격을 믿어요.     

  


기적을 믿냐고요?   


아니요 가격이요.    



가격을 믿냐고     


가능하다면 그래야지 격에 맞춰서 갚아야지 내가 널 키우느라 접힌 뼈대가 몇 갠데 내가 널 만들려고 짜 놓은 계획이 있는데 감히 감히 그럴 수는 없지 망해서는 안 되지 돌아갈 수도 없어 꼬인 채로 나가 나가서 교환을 하든 도둑질을 하든 뭘 해서라도 완성한     


연두색 원피스 분홍색 가디건     


레이스도 꽃도 단추도 있어 정말 진짜 같지 돈 주고 산 것 같지     


우리 엄마는 어릴 때 내가 입을 옷을 전부 다 뜨개질로 만들어 줬어     


나는 사실 그게 창피했어          


출처> 정신머리 민음사 2024     


시식평               


엄마는 목요일쯤 되면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전화를 하곤 하시지. 아마도 말이 없고 살갑지 않은 아들이 섭섭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건 나도 알고 있지. 고작 묻는 말도 뭐 먹고 싶은 것 없니, 아픈 데 없니…. 나는 목소리 톤을 한 톤 더 높여서 밝고 환하게 그런 건 없다고 말씀드리곤 하지. 살아가며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없는 나는 엄마에겐 특별한 무언가를 부탁하지 않아.      

지난번 엄마표 무말랭이를 해달라고 했었는데 엄마는 무를 사다가 작게 토막 내 썰고 햇볕 아래 말려서 꼬들꼬들한 식감을 내기 위해 지나다니며 잠든 아이 뺨 같은 무를 손가락으로 만져보셨을 거야. 꼬여 드는 파리도 가끔 쫓아야 했을 테고 한껏 수분을 날린 무는 청춘도 없이 늙어버렸을 테고 다시 물기 하나 없는 무를 물에 불려 생기를 불어넣고 가는 고춧가루를 넣고 물엿도 적당히 설탕도 조금 그리고 간 마늘과 멸치 액젓 그리고 소금으로 간을 한 뒤 깨소금을 듬뿍 뿌려 반찬통에 가득 담아 양념은 손끝으로 쓰윽 닦아내셨을 거야.     


침대를 내려와 나무계단에 앉아서 읽던 시를 잠시 떠올리며 냉장고 안에서 잠들어있던 무말랭이를 맨입에 한 젓가락을 씹고 있어. 뜨거운 밥이 있다면 좋겠지만….     


 멈출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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