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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Oct 10. 2024

시식회(詩食會)에 초대합니다.

없는 문장이 어루만지는 곳.. 이제니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이제니     



노인의 마음을 생각한다. 아침이 되면 머리에 흰 가루가 내려앉아 있습니다. 노인의 마음으로 노인의 길을 걸으면 겨울바람이 불어오고 손과 발이 얼어붙고. 걷고 걷다 보면 어느 결에 허리가 굽어 있다. 이 고독이 감옥 같습니다. 말을 나눌 곳이 없어서 종이를 낭비하고 있다.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아직 쓰이지 않은 종이는 흐릿한 혼란과 완전한 고독과 반복되는 무질서를 받아들인다. 손가락은 망설인다. 손가락은 서성인다. 노인의 마음으로 말한다는 것. 노인의 마음으로 적어 내려간다는 것. 휘파람을 불 때도 노인의 마음으로. 노인은 어쩐지 외롭고. 노인은 언제나 다리가 아프고. 노인은 짐짓 모르는 척 고요히 물러나고. 노인은 노인의 마음으로 가만히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나는 조금씩 조금씩 죽어가고 있습니다. 노인의 마음은 망설임을 갖고 있고. 노인의 마음은 말하지 않는 잎사귀를 갖고 있고. 노인의 마음은 말하지 않는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노인의 마음으로 거리를 걸으면 있지도 않은 문장은 더욱더 아름다워지고. 있지도 않은 문장은 있지도 않은 문장으로 다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나는 점점 더 붙박인 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람은 차고. 구름은 자고. 나무는 잎을 만나지 못하고. 비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고. 흰 가루는 점점 더 수북이 쌓입니다.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거리로 나서면 다시 돋는 잎사귀 곁으로 노인의 마음이 스쳐 지나간다.     


출처> 현대문학 2019.3.25.     


시식평(詩食評)     

그 초라한 집에 들어서는 이삿짐은 초라한 것이 제격이었다. 커다란 케리어 하나가 전부였거든. 너무 빨리 짐정리를 하고 바닥에 깔 것도 덮을 것도 없는 곳에 무릎을 손으로 감싸 쥐고 잠이 들었던 것 같아. 중화요리집은 아직도 30분쯤 기다려야 했거든. 다 먹을 자신은 없었지만 짜장하나와 탕수육 소자를 시켜 기다리다 시를 읽었던 거야.     

면발은 불어있었어 양파의 식감은 너무 물렀고 튀김옷은 너무 두꺼웠고 소스는 너무 달게 느껴졌어 춘장에 찍은 영파는 너무 매웠던 것 같아. 제법 아름답다고 생각한 건 그 순간이었다.

눈물이 핑돌고 한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이  혀를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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