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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상징이 아닐 때

아름다운 더러움에 대하여

by 적적


불이 꺼지지 않은 방에서, 서로의 그림자는 경계선 없이 엉켜 있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닿지 않았다. 닿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했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이미 감정은 깊숙이 물들어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둘의 숨은 조용히 흔들렸다. 그 떨림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고백이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숨을 듣는 것만으로도 이미 넘치고 있었기에.


거리란 원래 안전을 보장하는 선이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거리는, 안전을 허물기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느리게 남자의 따스한 손바닥이 여자의 등을 쓰다듬었다.


엉덩이를 움켜쥔 거친 손으로 여자는 다리를 남자의 허리에 휘감았다. 남자의 손바닥이 허벅지 안쪽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근육이 도드라지며 남자가 유속이 느린 물속에서 손을 휘젓듯이 허벅지 쪽으로 뱃머리를 몰아갔다. 여자의 가장 깊고 부드러운 속살에 가만히 입술을 댄 남자가 후우- 하고 입김을 불어넣는다. 여자는 잠시 움찔했으며 남자가 입술을 벌려 부드럽게 여자를 머금었다.



이끌림에는 이유가 없었다. 설명하는 순간 순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해하려 할 때 이미 늦었고, 빠져나가려 할 때는 더욱 늦었다. 감정은 언제나 이성보다 빠르게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이미 방 안의 공기 속에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그 순간 둘은 이미 알고 있었다.



돌아갈 길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을.




혹시 음모(陰毛)를 삼켜본 적 있어요?



욕망이 시작될 때, 인간은 유난히 정직해진다. 손이 먼저 말하고, 입술이 길을 터주고, 눈빛이 허락을 건넨다. 그다음은 천천히, 혹은 급하게, 모든 질서가 찢긴다. 바지 단추가 풀릴 때 나는 그 금속의 마찰음조차 부끄럽게 울린다. 허벅지 안쪽으로 밀려드는 체온, 피부가 맞닿을 때 미세하게 들리는 숨의 흐트러짐. 그렇게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스치고 만다.



가늘고 고집스러운 결, 어둡고 솔직한 실선. 누구도 크게 말하지 않지만 모두 알고 있는 그 존재. 체모는 가장 깊숙한 곳의 약속이며 동시에 가장 솔직한 유머다. 그 어색함과 당혹, 그리고 매우 인간적인 웃음이 스치는 순간, 몸은 갑자기 너무나 살아 있는 기관이 된다. 욕망이란 결국 체온과 마찰음과 작은 당황이 만들어내는 현상에 가깝다.



혀끝이 닿는 순간, 그 얇고 거친 섬유 한 가닥이 입 안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입술 사이를 찢으며 빠져나오려는 기묘한 저항감. 물컹한 혀와 직선의 털이 충돌할 때, 감각은 웃음을 먼저 선택한다. 몸이라는 진지한 성전 한복판에서 벌어진 사소한 농담. 그러다 결국 삼킨다.

별 수 없다. 욕망은 우아하게만 끝날 순 없다.



침이 넘어가며 목울대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 순간 아주 짧게, 인간은 자신이 어떤 동물과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털 한 가닥은 윤리보다 빠르고, 이성보다 노골적이며, 사랑이라는 말보다 정확하게 진실을 보여준다. 이것이 함께 숨 쉰 몸의 잔여입니다라고.



깨끗한 사랑을 원하는 사람들은 결국 표면만 닦는다. 방금 뜨거웠던 자리에는 땀이 식고, 종이컵 바닥처럼 얇은 체온이 남는다. 그러다 난처한 잔해 하나 발견하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진짜 가까움은 돌릴 고개가 없는 상태에서만 태어난다. 얼굴을 들 곳도, 체면을 세울 곳도 없는 순간의 육체. 그때 비로소 깨닫는다. 사랑은 결백이 아니라 적절한 더러움의 허용에서 탄생한다.


시트에는 눌린 자국이 남고, 베개 모서리에는 숨결이 눌어붙는다. 허벅지 안쪽의 붉은 발적, 목 아래쪽 얇게 남은 누운 머리카락 한 올. 이 모든 것이 언어보다 오래 남는 진짜 기록이다. 사람들은 감정의 증거를 말에서 찾지만, 몸이 남긴 흔적만큼 정확한 기록은 없다. 사랑은 결국 피부의 역사다.



당신이 삼킨 털은 당신을 비천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그것은 체온과 체취, 민낯과 웃음, 허락과 항복이 섞여 있는 아주 작은 증거다. 누구도 장식하지 못한 순간, 누구도 속이지 못한 사실. 사랑은 언제나 조금은 우스워야 하고, 조금은 더러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매너이지, 관계가 아니다.



창밖의 사람들은 오늘도 단정하게 걸어간다. 넥타이를 조이고, 셔츠를 다리고, 향수를 뿌린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라도, 어젯밤 혹은 오래전 어떤 순간에, 목구멍을 간질이던 한 가닥의 미세한 감촉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서로를 가장 깊게 통과했던 순간이다.



그러니 묻는다. 혹시 음모를 삼켜본 적 있어요.

당황과 웃음, 목울대의 떨림까지 기억할 만큼 진짜 가까웠던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



사랑은 거룩한 기도보다, 때로는 목 안에 남은 아주 작은 이물감이 더 순수하다는 것을.

친밀함은 광택이 아니라 얼룩과 잔해의 허락이라는 것을.

그리고 인간은, 결국 그런 감각들로 서로를 깊이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는 것을.

그 작은 잔해가 말한다.


당신은 누군가의 몸을 지나갔습니다.

그 경험이야말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부끄럽지 않은 흔적이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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