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깊은 곳에서 이어지는 나비의 겨울
눈바람이 산등성을 긁고 지나가는 날이 있죠. 바람 끝이 뼈처럼 날카로워서, 닿는 것마다 조금씩 벗겨내고 들춰놓는 날. 그 한가운데서 작은 나비 한 마리가 겨울을 붙들고 있더군요. 눈발이 날개에 박히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어요. 얼음 알갱이가 부서지며 붙었다 떨어지는 게 반복되고요. 나비는 몸을 거의 납작하게 접더니, 바람이 못 들어오는 아주 얇은 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더라고요.
낙엽이 여러 해 쌓여 눌린 자리, 바위 아래 조금 무너져 생긴 공간, 축축한 풀잎이 드리운 좁은 그늘. 밖은 얼어붙었는데 그 안쪽 공기는 묘하게 온도가 뒤섞여 있어요. 약간 미지근하고, 약간 눅눅하고, 오래된 냄새가 심지어 따뜻하게 느껴지더군요. 흙에서 올라오는 축축한 냄새, 삭아가는 낙엽의 단내, 오래 묵은 먼지가 눌린 채 섞여 있는 그런 향. 나비는 그 속에서 자기 겨울을 버티고 있어요.
네발나비는 여섯 다리를 갖고 있어도 하나가 거의 붙어 있어요. 겉으론 네 다리처럼 보여서 이름도 그렇게 불리고요. 가까이서 보면 그 접힌 다리 하나가 생존의 비밀 같더군요. 작고 조용한데, 몸을 받치는 마지막 걸쇠처럼 붙어 있어요. 겉에서는 전혀 티가 안 나죠.
겨울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 때마다 나비의 몸도 같이 떨려요. 얼음 조각이 날개에 스치다가 떨어지면서 아주 작은 금속성 소리 같은 게 나고요. 살아남는다는 게 결국 화려한 겉면이 아니라, 몸과 세상 사이의 틈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라는 생각이 스치더군요. 색이나 무늬는 이런 계절 앞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어요.
사람들은 나비라고 하면 꽃에 앉아 햇살 받고, 고운 색의 꽃송이에서 꿀을 빠는 장면을 떠올리죠. 그런데 그건 진짜 반만 맞아요. 네발나비는 꽃보다 썩어가는 과일즙, 들짐승의 배설물, 나무껍질 틈에서 스며 나오는 진액에 더 오래 머물러요.
발효된 과일 냄새는 단데 씁쓸하고, 나무진은 끈적한 수액 냄새가 기척처럼 흐르고, 배설물에서는 따뜻하게 익은 흙냄새가 올라와요. 인간 기준으로는 가까이하기 어려운 냄새들이죠. 하지만 나비에게는 그게 길이고, 먹이고, 시간의 흐름이에요. 우아함 같은 건 멀리서만 먹히는 개념이고, 가까이 가면 그건 냄새와 습기와 온도의 문제더라고요.
가축의 배설물엔 거의 앉지 않아요. 사료 냄새가 먼저 올라오거든요. 자연의 흐름이 아니라, 사람 냄새가 묻어 있어요. 들짐승의 흔적 위에서만 더듬이를 아주 천천히 움직여요. 작은 흔적 속에 계절과 먹이의 방향, 누가 지나갔는지가 눅진하게 남아 있거든요. 사람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나비는 온도와 질감의 차이를 미세하게 읽어요. 세계는 꼭 크게 보여야 넓은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존재죠. 냄새와 습도만으로도 충분히 넓어져요.
겨울 숲은 모든 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아요. 바람이 가지를 흔들 때 나는 둔탁한 떨림, 발아래서 깨지는 얼어붙은 낙엽 소리, 눈이 쌓일 때만 나는 아주 조용한 눌림. 얼음은 바위틈마다 깊게 끼어 있고, 나비는 그 아래 어딘가에서 숨을 거의 끊듯이 줄이고 있어요. 날개를 접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을 기다리는 거죠.
낙엽 사이로 햇살이 아주 얇게 들어오는 순간이 있는데, 그 빛이 날개를 스치면 미세하게 온기가 올라가요. 극히 작은 변화인데, 그게 생존에는 충분하더군요.
네발나비는 꽃보다 땅에 더 많이 내려앉아요. 썩은 과일, 들짐승의 흔적, 오래된 흙냄새 위에서 시간을 보내요. 배설물은 더럽다는 말보다 훨씬 많은 걸 품고 있어요. 냄새에는 계절이 눌려 있고, 질감에는 먹이의 흔적이 남아 있고, 온도의 작은 차이에는 생존의 전략이 숨어 있어요. 나비의 다리가 그 위를 딛는 순간, 세계는 아주 미세한 언어로 흔들려요.
겉으론 멈춘 것 같아도 겨울 숲은 내부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어요. 나비는 그 느림을 견디면서 겨울을 건너는 거죠.
이건 우아함의 미학이 아니에요. 버티는 생의 미학이죠. 썩어가는 과일과 낙엽, 들짐승의 흔적 사이에서 나비는 세상의 결을 읽어요. 차갑고 눅눅하고 약간 지저분한 그 틈에서 자기 온도를 찾아내요. 인간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나비의 세계는 그 안에서 이어지고 있더군요.
눈보라가 휘돌고, 가지가 부러지고, 얼음이 땅을 덮어도 나비는 숨이 빠져나갈 틈을 찾으면서 조용히 버텨요. 잠깐 스치는 햇살의 약한 온기, 바람이 멈출 때 찾아오는 얇은 고요, 발효된 과일 냄새가 스칠 때 나비 몸에서 피어오르는 아주 작은 떨림. 그게 ‘살아 있으라’는 신호 같더라고요. 꽃 위의 우아함보다 훨씬 진하고 솔직한 세계예요.
모든 소리가 눌린 숲에서, 작은 나비가 다리를 접고 썩은 과일과 낙엽과 들짐승의 흔적 사이에 파묻혀 겨울을 견디는 장면은 생의 경이와 잔인함을 동시에 보여줘요. 우아함은 잠깐의 착각이고, 살아남음만이 끝까지 남는 진실이더군요. 나비가 내려앉는 순간, 세계는 냄새와 온기의 기록으로 가득 차요. 그 안에서 나비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고요.
단단하게요. 은밀하게요. 오래 버틴 생명처럼요.
겨울을 한 번 치러본 존재답더군요.
그냥... 그렇다고..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