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해지는 문장

욕조, 비누 표면에서 발견되는 언어의 건조 과정

by 적적

https://www.youtube.com/watch?v=eVjK9pDHR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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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장은 물속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물이 빠진 뒤의 욕조 같은 곳에서 생긴다. 방금 전까지 몸이 잠겨 있었던 자리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고, 타일 사이에는 작은 물방울이 붙어 있지만, 공기는 이미 건조해지기 시작한다. 환풍기가 천천히 돌아가면서 수증기를 밀어낸다. 그 움직임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다만 거울의 김이 서서히 옅어지는 속도에서만 확인된다. 이런 순간에는 감정이 아니라 표면이 먼저 보인다.



몸의 표면, 타일의 표면, 비누의 표면. 문장은 대개 이런 표면을 오래 바라보다가 생긴다. 무언가를 설명하려는 충동보다 먼저, 이미 지나가버린 사건의 얇은 껍질 같은 것을 만지작거리면서.



욕실이라는 공간에는 묘한 시간의 층이 있다. 방금 전의 물소리가 아직 벽에 붙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 소리도 없다. 샤워기의 금속은 여전히 따뜻하고, 바닥의 타일은 조금 전보다 차갑다. 온도의 차이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느껴진다. 이런 작은 불균형 속에서 사물의 윤곽이 조금씩 또렷해진다. 사용된 비누는 비누 접시 위에 놓여 있다. 물기가 거의 없는 표면 위에 얇은 선들이 겹쳐 있다. 그 선들은 특별한 방향을 갖지 않는다.



손에 들면 미묘하게 부서질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비누는 아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미 여러 조각으로 나뉘기 시작한 상태이기도 하다. 문장 역시 비슷한 지점에서 머문다. 하나로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이미 서로 다른 방향으로 미세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태.



비누의 균열은 늘 조용하다. 눈에 보이는 순간에도 사실은 오래전에 시작된 변화의 마지막 단계에 가깝다. 손가락으로 표면을 문지르면 아주 작은 가루가 떨어진다. 그것이 비누인지, 단지 마른 흔적인지 잠깐 헷갈린다. 비누는 물과 함께 만들어진 물건인데도 시간이 지나면 물과 가장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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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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