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피종결자 Aug 24. 2021

Can I have 1:1 with you?

서로를 알아가는 것의 중요성

나는 워낙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데 겁이 없고, 그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인데 이상하게 직장에서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가끔은 내가 내성적인지 외향적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을 정도로 누군가를 막 만나고 싶다가도 막상 액션을 취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쫄보처럼 숨어버리고 말곤 했다. 그래서 직장에선 언제나 친한 몇 명과 어울려 다닐 뿐 네트워크가 그리 많지 않고, 직장 내 정치에는 잼병인 그런 직원으로 오랜 세월을 보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회사 내에서는 참 모두가 항상 미친 듯 바빠 보였고, 사람들 간 경쟁은 치열해 보였으며 그 와중에 같은 업무를 하지도 않는 누군가가 미팅을 신청하거나 밥을 같이 먹자고 하는 것이 큰 실례가 될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더없이 소중한 30분을 '나'를 위해 내어 달라고 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 사람에게 대단한 무언가- 그것이 정보가 되었든,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었든 아니면 내가 나중에 당신에게 아주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되었든- 그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한단 일종의 강박관념도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은 매우 피곤했다.  

 

이런 성향은 독일에서 사는 동안 조금 더 강화되었던 것 같다. 친해지기 어렵기로 유명한 독일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말을 걸면 모두가 친절하지만 그뿐,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어떻게든 일을 빨리 마치고 일찍 퇴근하려는 효율성 빼면 시체인 독일 직장인들에게 당신을 알아가고 싶으니 시간 좀 내주세요 라고 말을 하는 데까지 어찌나 많은 장애물이 있던지. 결국 독일을 떠날 때쯤 내가 조금 더 적극적이었다면 이토록 사랑스럽고 멋있는 독일 동료들로부터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에 ‘어이구 못난 나란 놈' 이란 한탄이 절로 나왔다. 


이곳에서 나는 다행히 조금 발전(?)했다. 나와 업무적으로 관련이 없는 누군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적극적으로 1:1 미팅을 장려하는 회사의 문화 덕분이었다. 팀장은 물론, 온보딩(Onboarding)을 도와준 동료들이 하나같이 회사에 빠르게 그리고 잘 적응하는 비법으로 1:1 활용하기를 들었다. 특히, 엔지니어링 지식이 1도 없는 내가 나 빼고 모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팀으로 오는 바람에 도대체 어떻게 이 팀에서 적응해야 할지 멘붕을 겪고 있을 때 받았던 조언도 적극적으로 1:1을 잡고, 한 명 한 명이 하는 업무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그들이 어떤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선호하는지 파악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팀원들과 1:1을 잡아 놓고선 매번 그 미팅이 너무 어색할 것 같아 부담스러워 몸서리를 쳐댔다. 실제로 어색한 미팅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 


한국인들이 습관처럼 말하는 ‘저희 언제 점심 한 번 같이 먹어요'를 이곳의 직원들은 진짜로 실천한다. 오피스나 복도에서 오다가다 마주치면 ‘저희 나중에 커피 한 잔 같이 해요! 제가 초대장 보낼게요'라는 인사를 듣는데, 실제로 서로의 캘린더를 확인하고 비어 있는 시간에 1:1 초대장을 보내 카페나 라운지 공간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입사 전에 외부 강연을 통해 알게 된 직원들을 인트라넷에서 검색하여 먼저 나에 대한 소개 이메일을 보내고 1:1 미팅을 요청하여 소셜 챗을 하기도 하고 ERG(Employee Relations Group)나 사내 동호회, TGIF와 같은 이벤트 참여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 업무로 알게 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데도 스스럼이 없다.  


여기선 자신의 팀이나 매니저가 같은 오피스에 있지 않고 다른 나라에 있는 이른바 싱글 플레이어들도 많다. 특히 이런 사람들에게는 같은 오피스에 있는 다른 동료들을 알아가는 것이 직장 내 소속감도 높이고 회사 생활을 즐겁게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다만 팀원이 없으면 아무래도 다른 팀에 누가 있는지 파악하고 누구와 1:1을 잡을지 판단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점심을 누구와 먹을지 정하는 것조차 큰 과제다. (나처럼 혼밥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특히나.) 이런 어려움을 이미 오래전 예상했다는 듯, 직원 중 누군가가 이른바 ‘런치 번개(가명)’라는 사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에 가입자들이 세팅한 설정, 예컨대 어떤 시간을 선호한다거나, 어떤 카페를 선호한다는 등에 따라 같은 오피스에 있는 직원 두 명을 랜덤 하게 선택하여 점심 식사를 자동으로 스케쥴링해준다. 직급이나 성별, 직무와 관계없이 다양한 직원들을 만날 수 있다 보니 때로는 런치 번개 통해 한국 오피스 총괄과 1-1로 점심 식사를 하며 그분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찰떡같이 마음이 잘 맞는 타 부서 직원을 만나 회사 단짝을 만드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티키타카가 잘 되지 않는 동료일지라도, 그 기회가 아니었다면 아마 계속 알지 못했을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본인이 예상치 못하는 순간에 무척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이는 같은 오피스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입사 후 내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기 전에, 나와 같은 업무를 다른 오피스에서 진행하고 있는 해외 직원들이 먼저 1:1 미팅 초대장을 보내 화상 미팅으로 서로 인사하고 무척 캐주얼한 대화를 나누거나 내게 도움이 되는 본인의 팁을 공유해주었다. 그 전의 직장에서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진심으로 고마웠고 큰 감동을 받았다. 나아가 다른 오피스로 출장을 갔을 때는 그 오피스에 있는 직원들을 찾아보고, 미팅을 신청하여 서로 얼굴을 보고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다. 매번 화상 미팅이나 이메일로 업무를 같이 하던 직원들을 실제로 만날 수도 있고, 때로는 본인이 흠모하거나 관심 있는 업무를 하는 직원을 찾아 조언을 듣는다. 전에 같으면 출장 가서 일을 마치고 혼자 카페에서 점심을 먹거나 호텔 근처에 저녁을 먹었을 나도 어느덧 한 명 한 명의 직원들이 가진 다양한 이야기와 경험들에 반해 다음엔 누구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기대하게 된다. 


1:1 문화는 COVID-19로 인해 세계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가 시행되었을 때에도 멈추지 않았다. 직원들은 이럴 때일수록 타인과 교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했다. 혼자 일하는 것이 처음 며칠은 좋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며칠이 지나면 동기가 저하되고, 사람들과 섞이는 것을 그리워한다. 게다가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컴퓨터로 업무만 하다 보면 입안에 가시가 돋고 지루함에 몸서리가 쳐지기도 한다. 재택근무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나 역시 2주 만에 K.O 되어 지금은 가상으로 진행하는 모든 행사와 미팅에 웬만하면 다 참여하고 있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누군가와 상황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로가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또 다른 재빠른 직원은 이런 상황에 발맞추어 기존에 사용하던 런치 번개와 비슷한 ‘화상 커피 번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공유했다. 설정에 본인의 관심사 키워드를 해시태그를 붙여 넣고, 원하는 시간대와 간격을 지정하면 그에 일치하는 다른 직원들을 역시 무작위로 선택하여 30분 미팅을 잡아 주는 것이다. 이런 거 다 핵인싸나 외향적인 사람들만 하는 거 아니야?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곳에도 내성적인 사람들 무척 많다. 단지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이런 문화에 익숙해지면 조금의 용기와 실행력이 더 생기는 것일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금요일이 특별한 이유가 전사회의때문이라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