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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라현 Sep 18. 2024

혀가 꼬여서 그만.

아이엠 낫 독종 2

"맥주 한잔 마실래?"

아내에게 했던 이 한마디가 내 술인생을 쫑나게 했다.


 내가 처음 술에 입을 댄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5월 농번기 때가 되면 막걸리 사 오라는 심부름을 다녀오곤 했었다. 엄마는 막걸리 심부름을 보낼 때는 꼭 남동생과 함께 보냈다. 막걸리를 파는 학고방까지 거리는 왕복으로 약 3킬로 정도 거리였다. 초등학생 걸음으로 약 1시간은 족히 되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주전자에 막걸리를 가득 채우면 무게가 상당했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 힘들면 사이좋게 나누어서 들고 오라는 뜻에서 둘을 보낸 것이었다. 막걸리를 받아 오면서 홀짝홀짝 막걸리를 마셨다. 마셨다라기 보다는 맛보았다는 표현이 맞다. 달짝찌근한 맛에 그만 티가 나지 않을 정도만 홀짝홀짝 대는 정도였다. 그때 맛보았던 막걸리는 내게 술이라기보단 그냥 단물에 불과했지만 더이상 마셨다가는 엄마한테 혼날 것같아 더 마시지 못한 아쉬운 맛이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해 동안 농번기에 엄마의 막걸리 심부름을 하면서 막걸리의 맛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주인이 되었다. 나는 남들에게 술을 많이 마셔도 잘 취하지 않는 사람, 술이 센 사람으로 각인되었다. 술자리를 하고 나면 무슨 의무감에서인지 술에 취한 친구들을 일일이 챙겨서 집을 보내고서야 술에 확 취해버리는 이상한 술버릇이 있었다. 주당들이 그렇듯 나는 아무리 짧은 시간이 주어진다고 할지라도 어떡해서든 주량을 채우고야 말았다. 설사 주량을 채웠다 한들 편의점에서 맥주로 입가심을 하고서야 술자리를 끌낼수 있었다. 하지만 집에 들어가기 전 술이 못내 아쉬워 또 캔맥주 하나 사들도 들어가 마셨다. 마지막으로 허기를 달래기 위라면을 끓여 먹고 잤던 술버릇이 있었다. 그렇게 술은 내게 절제를 모르는 술버릇을 주었다.





"맥주 한잔 마실래?" 

퇴근하고 직원들과 술자리를 갖고 지하철역에 내려서 아내에게 톡을 보냈다. 아내는 평소와 같이 마시고 싶은 맥주를 톡으로 보내왔다. 집 앞 편의점에 들러 안주로 즐겨 먹던 홈런볼 1개와 육포 1개, 캔맥주 4개를 사서 집에 들어갔다. 직원들과 술자리에서 아딸딸 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 온 상태였지만 집에 들어 때까지만 해도 술 취한 티가 거의 나지 않았던 나였다. 아내도 전혀 내가 술이 취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눈치였다. 하지만 맥주가 들어가자 슬슬 취기가 오는걸 알수 있었다. 즐겁게 술을 마시던 아내 표정이 조금씩 변했다. 그리고 캔 하나를 비우고  2개째 마시던 중 그만 혀가 꼬버리고 말았다. 내가 혀가꼬이는 소리를 하자 아내의 표정은 금새 일그러졌도 한마디를 던졌다.

"혀가 꼬일 때까지 그렇게 꼭 술을 마셔야 돼? 적당히가 안돼? 그거 하나 절 못하고 한심해"


즐겁자고 가졌던 술자리는 결국 내 혀가 꼬이는 바람에  아내의 잔소리에 말 그대로 꼬이고 말았고 그대로 대꾸 한마디 못한 채 술상을 조용히 치웠다.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 누워 아내의 말을 곱씹어 보니 그동안 술에 취해 절제 못했던 모습, 술 마신 다음날 아침 숙취로 괴로워했던 수많은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매번 술버릇이 그러했다. 내가 나를 돌이켜봐도 내가 그거하나 절제 못하는 한심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조용히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치고 밖을 나서기 전 아내에게 말했다.

"나 오늘부터 술 안 마셔"

아내는 내 말을 듣고 믿는 둥 마는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퍽이나!"

과음으로 술주정으로 실수해 본 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캔맥주 한 개라도 꼭 마셨던 나였기에 아내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진짜야. 오늘부터 술 끊었어."

더 이상 한심한 놈이 되지 않기 위해 밖을 나서며 다시 한번 내 각오를 전했지만 아내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을수 가 없었을 것이다.

금주선언에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던 아내는 퇴근하고 돌아온 나를 붙잡고 정말 술 안 마셨냐며 캐물기도 했으며 내 입에 코를 갖다 대며 음주 검사를 하기도 했다. 아내는 내가 한 달 가까이 금주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듯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정말 안 마셨네?"

"나 한다면 한다니까 그러네"

"그래 잘 생각했어".

아내는 약 한 달간 나를 지켜보고 나서야 의심을 거두었다.



 

 아내는 나와 만나고부터 주량이 늘었다고 했다. 술은 마실 줄 알았지만 잘 마시지 않았다고 했다. 술을 좋아하는 나를 만나게 되면서 주량이 늘어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저녁 외식을 하면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항상 2차 맥주집까지 가는 게 코스였다. 

술을 끊고 아내와 식당에 가면 음식과 함께 술과 콜라를 주문한다. 그리고 "잔은 하나씩만 주세요" 하면 으레 술잔과 술은 내 앞에 내려놓고 콜라는 아내 앞으로 내려놓는다. 내가 술을 따서 아내에게 술잔을 건네고 내가 사이다를 마시면 서빙하던 사람은 머쓱한 표정을 짓곤 했다. 

아내는 혼자 가끔 샴페인이나 맥주를 마시곤 했지만 나를 따라 2년 전부터 술을 마시지 않고 있다. 일부러 금주를 하고자 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술을 안 마시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과 멀어지게 된것이다.


 술을 끊은 뒤에야 제로 맥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술코너를 가지 않다 보니 무알콜 맥주가 판매되고 있는 줄도 사실 몰랐다. 그리고 금주를 하고 나서야 다른 것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하는 말처럼 피자나 치킨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 거의 입에 대지 않았던 콜라와 사이다를 마시기 시작했다. 사실 탄산음료는 입에 대지 않았던 이유는 건강을 생각해서 안 마신 것보다는 그냥 잘 당기지 않은 음료 중에 하나였다. 평소 음료수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굳이 마신다면 탄산이 없는 음료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금주를 한 후부터 별로 당기지도 않던  콜라, 사이다를 주로 마시고 있다.




아내 덕분에 맨 정신 5년 차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더 이상 한심 사람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고 .


1년 365일 맑은 정신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지난날 숙취로 괴로웠던 수많은 날들이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젠 컨디션도 여명808도 해장국도 꿀물도 해장술도 찾을 필요가 없어서 세상이라서 너무 좋다.


담배에 이어 술까지 끊었다는 소식을 들은 주변의 친구들의 반응은 독한 놈이라고 하면서도 내가 불쌍하기라도 한듯 한 표정과 말투로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제 술까지 끊으면 세상 무슨 재미로 사냐?" 

오랜 술친구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서운함이 뒤섞인 푸념을 할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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