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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라현 Sep 07. 2024

솔잎을 먹어야 해

생계는 중요해

잘하는 일을 해야 할까?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할까?


한때 본업을 등한시하고 내 팽개친 적이 있었다.


20대 초반까지 책과 담을 쌓고 살았었다. 사실 책이라고 펼쳐 본 것은 학교 교과서가 전부였다. 내가 책이란 것을 읽어본 때는 군복무 상병시절이었다. 군대에서 책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휴식시간에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잡아 든 것이 소설책이었다. 그 소설은 인터넷 소설로도 유명했던 이우혁의 소설 '퇴마록'이었다. 읽어본 동기가 재미있다며 추천해서 잡아든 것이었다. 그렇게 국내편, 세계편, 혼세편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제대 전에 읽은 책은 그것뿐이었다. 군 제대를 하고서 읽은 책은 이우혁의 왜란종결자 전 4편, 최현규 작가의 모스(MOSS),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개미 1,2,3편 등 모두 소설작품이었고 그래봐야 고작 10권이 채 안 되는 독서량이었다. 그 이후 30대 초반까지 책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30대 초반, 우연히 부천에 사는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책상에 있던 맥스웰 몰츠의 '성공의 법칙'이란 책을 읽고서 본격적으로 책이란 걸 다시 읽기 시작했다. 친구의 추천으로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7가지 습관',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를 차례로 읽으면서 차츰 책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당시 성공학과 자기 계발서가 유행하는 시기였었는데 그 정점에 섰던 론다 번의 '시크릿'이란 책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자기 계발서 열풍이 불었다. 나도 그런 시류에 편승해 성공학을 다룬 책과 여러 권의 자기 계발서들을 읽었다. 그런 위주의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꿈을 이루어보자는 욕망이 생겼다.




30대 중반, 느닺없이 나는 작가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작가가 되기 위한 첫 단계로 책을 많이 읽어보자는 계획을 세우고 멀쩡하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백수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 중일 때도 늘 책을 들고 다녔다. 어딜 가나 내 손에는 늘 책이 들려 있을 정도로 손에 책을 놓지 않았다.

책을 빌려보는 것보다 소장해 보자는 생각에 광화문 교보문고를 자주 드나들었다. 나에게 책은 많은 생각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교보문고의 슬로건이 나에겐 너무나 마음에 와닿는 글귀였다.

점차 구매 이력이 쌓이면서 교보문고 프라임 회원을 오래도록 유지했다. 그렇게 2년 동안 사다 모은 책은 약 300여 권이나 되었다. 분야별로 따지자면 대략 소설 7 : 자기 계발서 2 : 에세이 1 비율이었다. 괜한 책부심 덕분에 안 그래도 수입이 없었던 시기에 책값으로 돈이 서서히 빠져나갔다.

그때 사들였던 그 많았던 책들은 현재 아내의 손에 의해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입고된 지 오래다. 어렵사리 유명 작가의 친필사인을 받아둔 책들도 아내의 손에 무사하지 못했다. 책을 두고두고 다시 펼쳐 볼 심산으로 산 것이었지만 한번 읽고 다시 펼쳐본 책은 사실 몇 권 되지 않았다. 다시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책을 책장에 쌓아두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의미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아내의 옳은 선택으로 그 많은 책들은 누군가에 의미 있는 책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 작가 지망생으로서 정유정, 박범신, 은희경, 공지영, 신경숙, 김연수 등 베스트셀러 작가의 기운을 얻어보고자 북콘서트에 따라다녀보기도 했다. 몇몇 작가님에게는 작가가 꿈이라며 응원의 글과 싸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기운과 응원을 받아 글을 잘 써보겠다는 열정은 그때뿐이었다. 내가 작가의 북콘서트를 다니고 사인을 받는다고 해서 안 써지던 글이 잘 써질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작가의 기운은 그 사람의 것이지 그 기운이 결코 나에게 전해지는 않는다. 그런 것이 가능한 곳은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 속 주인공이나 되어야 가능한 얘기였다. 당장 무라카미하루키의 증고조할아버지가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한들 안 쓰는 놈은 끝까지 쓰지 못한다. 그게 세상이치다.


제대로 된 글 한 줄도 못쓴 채 2년의 시간을 흘려보냈고 그동안 벌어놓은 돈은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 생계를 위해 다시 본업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6년 전, 언제까지 월급쟁이로 살아가야 할까? 노후의 삶이 고민되는 시기였다. 그런 고민 끝에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친구와 함께 족발전문점에 도전했다. 주변에서는 디자인만 하던 사람이 음식점을 한다고 하니 너무 뜬금없다는 반응과 우려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 우려는 기왕 시작하기로 한 거 잘해보라는 격려의 말로 대신해 주었다. 오랫동안 해오던 직업을 버리고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도전한다고 하니 그런 반응은 당연했다. 사실 이 무모한 도전을 하게 된 이유는 함께하는 친구가 요식업에 오랫동안 몸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달음식 전문점을 10여 년 간 운영해오고 있었던 터라 어느 정도 승산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한 달 동안 친구 지인의 족발가게에서 영업준비부터 개시, 마감까지 함께 일하며 족발과 막국수, 밑반찬 레시피를 익혔다. 족발수업을 받는 동안 매장 레이아웃, 디자인, 가스, 전기 등 기초설비공사가 진행되었다. 초기 자금을 아끼기 위해 간판, 실내외 인테리어는 직접 진행했고 주방기구는 황학동에서 중고제품으로 매입했다. 그렇게 2개월간의 공사를 마무리하고서 가게를 오픈했다.




가게를 오픈하고 얼마 있지 않아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먼저 체력적인 한계가 찾아왔다. 평생 책상에서 컴퓨터만 만지작거렸던 내가 하루 종일 육체노농을 하려다 보니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손이 쉬지 않다 보니 손가락 마디마디가 붓고 손목이 아팠다. 직업병이었다. 그리고 5평 조금 안 되는 주방에서 오전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장장 12~14시간 이상을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덕분에 가게 오픈 후 얼굴살과 뱃살까지 살이 쏙 빠지면서 약 5kg 정도가 빠지기도 했다. 이때가 가장 몸무게가 적게 나갔던 것 같다. 혹시 다이어트를 하시려는 분들은 식당 주방에서 한 달만 아르바이트 경험을 해보시길 추천하고 싶다. 분명 돈도 벌고 다이어트에 성공하지 않을까 싶다.


우스갯소리로 셋이 고스톱을 치면 돈을 땄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처럼 첫 한 달 장사를 마치고 정산을 하니 수중에 남는 돈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다. 실제 지출하는 돈이 개시 전 예상했던 것보다 많다 보니 손에 쥐는 것은 별로 없었다. 세 명의 오픈 멤버는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에 위안을 삼고 차츰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고 파이팅을 외치며 다음 달을 맞이했지만 매출의 변화는 크게 없었다. 다다음달도 마찬가지였다. 대기업 사옥들이 대거 들어선 신도시 상권이라 매출기대하고 그곳에 가게를 낸 것이었지만 기대만큼이나 매출은 크게 못 미쳤다. 회전율 낮았고 특히 주말에는 회사원들이 쉬다 보니 평일보다 한산했다. 이대로라면 누구 하나라도 수익을 제대로 가져갈 수 있는 없는 상황이었고 누군가는 빠른 결단이 필요했다. 내가 먼저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개점 4개월 만에 그곳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결국 생계를 위해 다시 본업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고정수입이 필요하다. 그 고정수입은 당연하게도 본업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하고싶은 일을 하겠다고 본업을 헌신짝처럼 등한시하면 안 된다. 그러면 정말 굶어 죽기 딱 좋은 상황이 펼쳐진다. 운이 좋게도 하고싶은 일로 본업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면 겠지만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와서 '잘하는 일을 해야 할까?'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내가 내린 답은 "잘하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하고 싶은 일은 취미로 하라"이다.

물론 취미 꾸준히 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돈을 가져다 줄수도 있다.


나는 두 번이나 본업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다행히 현재에도 그 본업을 잘 유지하고 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속담처럼 아무리 배가 고파도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본분을 잊고 아무거나 먹었다가는 탈이 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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