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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라현 Aug 31. 2024

굿바이 식후 땡~

아이엠 낫 독종 1

 스무 살 여름 어느 날, 점심식사를 마치고 회사 동기에게 담배 한 개비와 라이터를 빌렸다. 동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게 담배 한 개비와 라이터를 건네주었다. 나는 담배와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고 숙소로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숙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실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라이터를 켜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희뿌연 담배 연기가 코앞에서 피어올랐다.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그리고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알 수 없는 몽롱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참을 수 없는 매운 기침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기침을 쏟아 내며 '이런 독하고 맛도 없는 것이 뭐가 그리 맛있다고 펴대는 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도 잠시 담배를 입에 다시 물었을 때 알았다. 나는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사실과 쉽게 시작한 것은 쉽게 멈출 수가 없다는 사실을.

그날 이후 회사동기와 선배들은 식후 땡 동지가 된 나를 반겨주었다.

지금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당시 무슨 이유로 담배를 피우게 되었는지 당최 떠오르지 않는다.




 서른 살 여름 어느 날, 나는 친구와 저녁에서 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시고 더 마실수 있다는 친구를 어렵사리 달래 택시에 태워 보내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늦은 잠을 청했다. 오전에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해빛 때문에 잠에서 깨는 바람에 뒤척이기만 하다가 그만 눈을 뜨고 말았다. 숙취에 머리는 깨질듯 아팠고 뱃속은 그리 편치 않았다. 목이 타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들이키고서 입안을 헹구었다. 평소와 같이 주전자에 물을 부어 가스불에 올려놓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잠시 후 가스불을 끄고 끓인물을 컵에 따르고 믹스커피를 두개를 털어 넣고 휘저었다. 의자에 앉아 담배 한모금 태우고 커피도 한 모금을 들이켰다. 순간 속에서 지진이 난 듯 구역질이 올라왔다. 급히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를 붙잡았지만 헛구역질만 하고서 힘겨운 눈물만 빼고 말았다. 잠시 속을 진정시킨 후 불이 꺼질랑 말랑하는 담배 불씨를 살리려 힘껏 빨았다. 그리고 연기를 내뿜자 또 다시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고 화장실로 달려가 다시한번 변기를 붙잡고 힘겨운 눈물만 쥐어짜고 말았다. 두번의 곤욕을 치르고 나와서 식어버린 커피를 싱크대에 쏟아붓고 태우다 만 장초를 재떨이에 비볐다.

그냥 문득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위에 담배각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렇게 별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그만 금연을 결심했다.




 내게 커피는 담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바늘과 실과 같은 관계였다. 담배를 피우면 커피가 따라오는 게 당연했고, 커피를 마시면 담배가 따라오는 게 당연했다. 담배가 먼저인지 커피가 먼저인지 그 선후 관계가 확실치 않지만 둘은 그런 관계였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규칙이었다. 금연을 위해 그 규칙을 그대로 적용했다. 담배와 커피를 동시에 끊어야만 했다. 커피를 평생 끊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단지 커피를 마셔도 담배가 당기지 않을 때까지는 커피를 마시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렇게 금연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마음 놓고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만약에 커피를 마셨더라도 아마 금연에 성공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여하튼 커피는 나의 금연조력자였던 것은 분명하다.




 참 오랜만에 다시 담배를 피웠다. 담배의 맛은 15년 전 담배 그 맛 그대로 맛이 있었다. 한참 담배맛을 만끽하고 있을 때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15년 간 끊었던 담배를 내가 아무렇지 않게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순간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지금 내가 뭐 하는 짓이지?' 한순간에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허무함과 자괴감이 몰려왔다. 뒤이어 억울한 심정에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 빰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눈을 떴다. 천장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꿈이었구나'

막 잠에서 깨었을 때 입안에서 꿈속에서 맛보았던 담배의 쓴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매우 지독한 꿈은 이후 짧은 간격을 두고 두 세 차례 이어졌다. 오랫동안 참아왔던 욕망이 꿈세계에서 발현되어 완전히 해소가 된 것인지 그 이후로 그런 꿈은 꾸지 않았다.

지독하리 만치 현실적이었던 그 꿈은 내 금단증상의 최종보스가 아니었나 싶다.




 별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그만 금연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끈기 있게 이어오고 있다.

당시 담배를 피울 때면 가끔 헛구역질이 나오곤 했다. 으레 누구나 담배를 피우면 나타나는 현상이겠지 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독해서가 아니라 담배가 내 체질에 잘 맞지 않아 별 저항 없이 금연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란 생각이 들곤 한다.


담배 끊은 놈이랑 상종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독종은 아니다.


단지 그냥 시작했고 그것을 끈기 있게 현상유지하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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