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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라현 Sep 25. 2024

불 보듯 뻔한 결과 싫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봐

고향 친구는 자기 근황을 알리는 전화가 왔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선배가 있는데 같이 가게 하자고 해서 같이 일하기로 했다."

"동업하는 거야?"

"동업은 아니고 직원으로, 집도 마트 근처로 잡아놨고."

"아니 벌써?"

"요 며칠 부동산 드나들면서 목 좋은 곳에 빈 매장 나왔길래. 그리고 그 근처에 월세방도 얻었고"

"야 형동생하다가 같이 일하는 거 쉽지 않아. 경험자로 말하는 거야"

"내가 알아서 잘해야지 뭐."


그리고 이주일 후에 야채청과가게를 오픈한다고 했다.

 

오픈하고 3일째 되는 날 낮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 가게 장사는 좀 어뗘?"

"집이야."

"왜 가게에 안 있고?"

"관뒀어."

"왜?"

"나한테 자꾸 이래라저래라 하잖아. 그래서 성질 나서 두겠다고 말하고 나와버렸어."

"성질 좀 죽이지 그랬어."

"나도 세 번 정도 참았지. 근데 그 이상은 못 참겠더라고."

"말했잖아 같은 직원일 때랑 다르다고."


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줄곧 마트에서 오래 일을 해왔다. 그 형이라는 사람은 한때 마트에서 함께 일을 했던 직장 동료관계였고 10여 년 알고 지낸 사이었다. 그 형이란 사람은 자기 가게를 운영하기로 계획하고 꾸준히 함께 일할 사람을 찾다가 함께 일해봤던 경험이 있는 내 친구를 가게 오픈멤버로 낙점한 것이었고 가게도 함께 알아보고 오픈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의기투합은 결국 그  두 사람 모두 지 성격에 못 이겨 작심삼일로 끝나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 형이라는 사람입장에서는 큰 타격은 입지 않았다. 단지 직원 한 명 채용하면 해결될 일이었다. 그런데 친구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주거지를 떠나 이사 온 마당에 상황이 애매해져 버렸다. 또한 새로운 직장도 알아봐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보통 이러한 일들은 친한 형과 동생사이, 동료사이에서 창업을 하는 경우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나는 어느 정도 이미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었다. 친한 관계였던 두 사람의 상하관계로 정립이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서로 삐질까 봐하고 싶은 말도 못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그게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2년 후, 그 친구가 고민이 있다며 내게 전화가 왔다.

"내가 예전에 말했던 정육 한다는 친구 있잖아."

"응. 근데?"

"나랑 가게 한번 해보고 꼬시는데 해야 하는 게 맞는 건지 너한테 물어보고 싶어서."

"야. 하지 마."

난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친구가 대부분 투자하기로 했고 나는 일부만 하기로 하고, 가게를 하려면 정육과 야채청과가 있어야 시너지가 나기도 해서 같이 하자는데."

"됐고. 지가하고 싶으면 그 친구가 알아서 하라고 해. 남이 하자고 해서 같이 하는 거 아니다."

"그지 아닌 것 같지?"

"니 스스로에게 한테 물어봐. 정말 네가 하고 싶어 하려는 것인지, 누군가에 등 떠밀려하려고 하는 것인지? 그러면 답 나와."

"......"

"너 걱정돼서 하지 말라는 게 아녀. 판단을 신중하게 하라는 거지. 몇년 전에 나 식당동업했다가 접은 알면서 왜 그래? 그때 나도 그랬거든."

"그래 알았어. 잘 생각해 볼게"


그 친구가 나에게 전화한 이유는 내 의견을 물어보고 싶은 게 아니라 가게를 하긴 할 건데 자기의 동조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역시 이번에도 내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 달 후 기어코 내 반대의견에도 친구는 그 동업자와 마포에 야채청과 정육점을 오픈하고 말았다. 그곳은 대로변에다 지하철역에다 술집과 식당이 들어서 있는 상권이었다. 절대 야채청과정육점이 들어설 상권은 아니었다. 결국 가게는 5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그리고 가게를 부동산에 내놨지만 지금도 나가지 않아 셨다를 내린 채 월세만 내고 있다는 소식만 들었다. 결국 친구의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 좋지 않은 결과를 낳고 말았다.


사람들은 꼭 맛을 보고서야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를 구분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듯 하지 말라고 극구 말리는데도 기어코 그 실패를 경험해 보고 나서야 후회하면서 왜 그때 더 강하게 말리지 않았냐며 남 탓으로 돌리지만, 어차피 말려도 결정한 그 생각을 굽히지 않을 거라는 것은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사실이다. 누구나 어디엔가 한번 꽂히면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설득하고 말려도 그 사람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 아무리 뛰어난 달변가가 달라붙어 설득한다 한들 한번 꽂힌 결정은 쉽게 되돌리는지 못한다.


나는 그래서 친구가 내 말을 듣고 그 생각을 바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말린다고 안 할 친구가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남의 얘기에 설득당할 나이도 이미 한참 지나가버렸다.

자전거를 배울 때 넘어지지 않고서는 절대 자전거를 탈 수 없듯이

어떤 무엇을 하던 누구나 넘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넘어질 거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난 그 친구에게 먼저 그 길을 가본 사람으로서 넘어지더라도 코가 깨지지 않았으면 하는 차원에서 주의를 준 것뿐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선택과 결정을 하기 전 자신에게 먼저 물음을 던져봐야 한다.

그때 단 한 가지라도 의문이 생긴다면 그 선택과 결정은 필연적으로 잘못된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과거 대학 선배와 디자인 쇼핑몰을, 대학친구와 음식점을, 두 번의 동업을 해본 경험이 있다.

당시 두 번의 선택에 의문이 있었지만 그 신호를 무시한 채 섣부른 판단과 결정으로 결국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일으켰던 경험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6년 음식점 그만둔 이후로는 선택에 기로에 있을 때 같은 실수를 반하지 않으려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 자신에게 되묻고 또 되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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