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고양이
책 중반에 나오는 릴리퍼트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책이 픽션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책은 진짜 백과사전처럼 하나의 표제어에 대해서 길게든 짧게든 설명을 다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소인들인 ‘릴리퍼트’ 사람들에 관한 설명에는 이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고 그 수는 800명인데 특히 일본에서 이들을 데려가 마을을 조성하고 극단을 만들어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아... 소설이었구나...
이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하 지식의 백과사전)은 저자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세계관을 탐험할 때 필요한 안내서이다. 인터넷에서 책의 설명을 찾아보면 저자의 소설 속 인물이나 사물에 관한 설명도 드물지 않게 있는 듯하다. 저자의 소설을 흥미롭게 읽었던 사람이라면 저자가 이곳저곳에 숨겨둔 보석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겠다. 저자의 소설을 한 권도 읽지 않은 나는 소설 내용을 떠올릴 재간이 없는 대신 읽은 지 한참 지난 책이긴 하지만 이외수 작가의 《감성사전》을 떠올렸다. 《감성사전》 역시 하나의 표제어를 두고 저자 마음대로 정의를 내린다는 점에서 이 책과 닮았다. 차이점이라면 ‘사전’이라는 말에 걸맞게 이쪽의 설명이 더 짧고 간결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쓰레기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가공품들의 말로. 또는 지구가 바라보는 인간.
재미있게 읽었던 이 책을 ‘학급 문고’에 냈다가 잃어버려 속상해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고 말았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이하 ‘고양이 백과사전’)은 ‘지식의 백과사전’의 스핀오프 격인 책이다. 화자로 등장하는 고양이 ‘피타고라스’가 머리말에서 책의 제목을 ‘지식의 백과사전’을 따라 지었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그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나는 ‘고양이 백과사전’을 먼저 읽었으니 스핀오프를 먼저 읽은 셈이다.
이 책은 고양이에 관한 지식이 나열되어 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 내용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책 내용보다도 책에 담긴 고양이 사진을 더 열심히 봤다는 것 정도일까.
‘고양이 백과사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책의 디자인이었다. 우선 책 뒤표지에 ISBN이 엄청 크게 쓰여 있고 바코드도 길게 늘여져 있다. ISBN과 바코드는 물론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보통은 책 뒤편 한쪽 구석에 있는 듯 없는 듯 얌전히 배치된다. 표지를 넘겨보면 이번에는 페이지를 표시하는 글씨 크기가 엄청 크다. 본문 글씨 크기를 압도한다. 본문 정렬도 죄다 한쪽으로 쏠렸다. 그래서 나는 결론을 내렸다. 어쩌면 이 책은 정말 고양이 ‘피타고라스’가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