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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대처럼

늘 휘어진다. 부러지지는 않지만.

by 나리다

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을 짓고 나물 서너 가지를 준비한다. 이틀 뒤 밸런타인데이에는 아이와 함께 마트에 가서 초콜릿을 사 와 녹인 뒤 틀에 부어 모양 만들기를 다.

오월엔 어린이날 선물, 여름엔 아이의 생일파티와 기념사진, 겨울엔 크리스마스트리.


내가 그런 것들을 챙긴다고 하자 누군가, 젊어 좋아 그런 것을 챙길 정신이 있구나 하였다.

나는 "그런 거라도 해야 사는 게 재미있어서요"하고 대답하며 웃었으나 한편으론 처연한 마음이 기도 한다.

남편을 잃자, 사람들은 나를 위로하며 아이 키우는 재미로 살면 된다 했다.


운 좋게, 사랑스러운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상상했던 것보다 행복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어웠다. 때때로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 분노가 치민다. 이 아이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대도 자식 키우는 일이 으레 그렇다는 것을 머리로는 안다. 래도 이따금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이는 이제 절대적인 돌봄이 필요한 시기를 지나가고 있다. 내 세세한 보살핌은 그의 성장에 방해가 된다. 그 작은 날개에 깃을 세우고 있는 힘을 다해 파득이면 조금쯤 몸이 떠오르는 것이 보인다.

나는 이제 이 아이가 없으면 못살겠는데, 양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아이를 자기만의 둥지로 떠나보내는 일이며, 아이는 벌써부터 슬금슬금 내 품을 벗어날 준비 해 나가고 있다.


그렇게 시시각각 다가오는 아이의 독립은 곧 나의 독립을 뜻하기도 한다. 부모님 아래 형제들과 삼십 년을 같이 살다가, 곧바로 결혼해서는 남편과 함께했고, 이제는 내 어린아이와 부대끼며 살고 있는 나는 따로 자취 한번 안 해보아서 그런지 유독 혼자를 못 견딘다. 이따금 삶이 대차게 나를 흔들 때면 무섬증이 돋는다. 이러다 훗날 어느 때에 이 아이에게 집착할까 봐 이 나는 것이다. 아이에게 정성을 쏟되 집착하면 안 되고, 온 힘을 다 해 사랑하되 내 모든 것을 줘선 안된다. 늘 중간이 어렵다. 아이를 키우는 일을 사는 즐거움으로 삼는 것은 여러모로 조심스럽다.


며칠 전엔 아이가 버릇없게 구는 것을 방에 들어가서 호되게 혼내고 타이른 뒤에 화해의 의미로, 이제 엄마 한번 안아주고 나가서 밥 먹자 하였다. 그랬더니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아" 란다.

강아지처럼 애교가 많아 끄덕만 하면 내 품에 안기고 돌아서면 엄마 사랑해, 하고 고백하던 아이가 잔뜩 불만스러운 얼굴로 엄마를 안아주고 싶지 않다고 하다니. 몇 번이고 왜냐고 물어보았지만 아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내가 싫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그 혼난 순간이 그런 기분이었으리란 것을, 나도 겪어봐서 안다.


"민아, 우리가 나중에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까?"

"그건 몰라. 나중 일은 아무도 모르자나."


너와 내가 한 몸이던 때를 떠나보내고 있다. 아이는 야금야금 탯줄을 끊어낸다. 나는 세차게 불어오는 외로움에 갈대처럼 흔들리고, 간신히 부러지진 않는다. 부러지지 않는 갈대로 조금쯤 더 단단한 삶을 엮어나간다. 너는 나를 떠나 혼자 살 수 있는 어른이 될 테고, 나는 그 뒷모습을 견디는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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