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닥에서.
내일 저녁 몇 시 몇 분에 애랑 사돈어른 데리고 어느 식당으로 오라는 시어머니의 일방적인 통보 문자에, 일정이 있어 안 되겠다고 하자 그 일정보다 시어머니가 오는 게 중요하니 일정을 미루란다. 어머니 다음에 뵐게요, 거듭 말해 보았지만 화나게 하지 말고 그런 줄 알고 나오란다. 또 한 번 정중히 거절 문자를 보내자마자 친정엄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시어머니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엄마 대신 전화를 받았다.
"왜 네가 받냐?"
"왜 전화하셨는데요?"
"나는 내일 가서 애 볼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라!"
"내일 안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무슨 그리 중요한 일정이라고 시어미보다 중요하냐? 그 일을 미뤄야지! 내가 일 있어서 가는 김에 민이도 보려는 거니까 그리 알아."
"안 돼요. 어머니. 이렇게 갑자기 하루 전날에 통보하고는 억지 부리시는 게 어디 있어요?"
"애 한번 보겠다는데 뭐가 그리 복잡하냐? 저번에 두 달 전에 미리 약속 잡았을 때도 잠깐밖에 못 보지 않았냐?"
"저한테는 충분한 시간이었어요. 어머니가 매사 이런 식이니 더 같이 있기가 불편해요."
"너 원래 그렇게 이기적인 애였냐?"
"네! 저 원래 이랬어요!"
"사부인이 널 그렇게 가르쳤냐?!"
드라마에 나올 법한 상투적인 말에 말문이 막히고 헛웃음이 났다. 내가 무슨 대답을 했던가. 차라리 입을 닫았던가.
"대체 무슨 일정이길래 그러냐?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중요하고 말고는 제가 결정할 일이에요. 저한테 일정이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건 절 무시하시는 거죠!"
"네가 죽은 남편 덕에 먹고살면서 나한테 이럴 수 있냐?"
남편의 사고로 보상금이 나왔다. 홀로 아이를 양육하는 것에 분명 보탬이 되긴 했지만 그 덕에 먹고 살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홀로 감당해야 하는 생계를 위해 착실히 직장에 다니고 있으며, 돈으로는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남편의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 삶의 어딘가에서 쩡 하고 깨지는 소리가 났다. 설사 내가 그 돈으로 그 사람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을 건사하고 생활을 유지한다고 한들, 비난받을 일이란 말인가?
나는 당신의 어머니에게서 또 한참을 멀어진다.
"제가 무슨 그 사람 덕에 먹고살아요? 어머니 이러실 때마다 너무 힘들어요!"
"내가 뭘 그렇게 힘들게 했다고 그러냐?"
"그걸 모르시는 게 문제인 거예요!"
"같이 살면서 괴롭히는 것도 아닌데 대체 뭐가 힘드냐?!"
"그건 어머니 생각이시고요! 저도 그 사람 생각해서 어머니한테 할 만큼 했어요."
"네가 언제 나한테 할 만큼 했어? 뭐를 해줬는데?"
"....."
"그 돈, 그거 얼마 줬다고 그러는 거냐? 다른 집들은 매주 손주를 만나는데 나는 왜 못 그런단 말이냐?"
아비 없는 갓난아이를 키워야 할 내게 그 돈은 억만금 같은 돈이었다. 그럼에도 그 돈을 드렸던 건 죽은 남편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함이었고, 자식 잃은 어머니를 향한 측은지심을 가진 탓이었다. 처음 몇 년간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아이 영상도 꼬박꼬박 보냈다. 그러다가, 나부터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그만두었다.
"내가 너한테 뭘 그리 잘못했는지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일일이 말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와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너 같은 며느리 처음 본다!"
"저도 어머니 같은 시어머니 처음 봐요!"
어머니와 나의 주고받음은 우리의 밑바닥을 드러냈다. 그 바닥은 박박 가물어 손톱자국이 날 것으로 드러났다.
나는 그동안 쌓아놓은 울분을 터뜨리며 사납게 맞섰다.
그러나, 내일 당장 애를 못 보면 밤새 기다리겠다며 떼를 쓰는 그 혈기왕성한 노인의 고집에 결국 한풀 꺾이고 말았다.
"식사는 안 하고 잠깐 얼굴만 보는 거예요."
"... 알았다. 장소 알려주면 병원 갔다가 가마. 내가 다음엔 한 달 전에 미리 말하면 되는 거냐?"
"다음부터는 일주일 전엔 연락 주시고요. 일정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물어봐주세요."
그리고. 한치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던 그 끝에 나는 맥없이. 맹추같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근데.... 병원엔 어디가 안 좋아서 오세요."
"그냥 매년 하는 검진이야."
".... 네."
전화를 끊자 불현듯 한기가 밀려왔다. 옷을 찾아 껴입고 따뜻한 음식을 먹으니 손의 떨림은 차츰 잦아들었다. 두서없고 유치했지만 몇 년 치 속에만 묵혀놓은 말들을 쏟아부었더니 오히려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도 들었다. 그 와중에 제대로 받아치지 못한 말들이 뒤늦게 생각났다. 내가 그 사람 덕분으로 먹고산다고요? 내가 먹고사는 건 그 지옥 속에서도 죽지 않고 견뎌낸 내 덕이며, 그 덕에 아이는 밝게 잘 자라고 있다고, 좀 더 당당하게 말해볼걸...
남편이 살아있을 땐 어머니가 그러신대도 참았다. 남편이 중재해야 하는 일이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나뿐이다.
다음날, 결국 시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전화로 할 말 못 할 말 다 한 사람답지 않게 눈치를 보셨다. 불쌍하고 미운 내 시어머니. 당신 어머니.
나는 애에게 할머니 옆에 가서 앉으라 했고, 애는 수줍어하면서도 귀염성 있게 친근감을 내보였다. 친정아빠가 장난으로 날 때리는 시늉만 해도 온몸으로 내 앞을 막아서는 아이가, 엄마랑 사이 안 좋은 저 할머니한텐 관대하다. 그 할머니가 애절하게 저를 좋아하는 것을, 그 안에 똬리를 튼 무거운 그리움을, 어린것이 다 아는 모양이다. 부끄럽다며 몸을 꼬다가 이내 할머니 손을 잡고 카페 루프탑을 구경한다고 가버렸다.
제 어미를 홀로 두고선, 두려움 없이.
네가 아는 세상은 내가 아는 세상보다 더 아름다운 것 같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