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고민했던 1년간의 자율연수 휴직을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은퇴하기 전 오롯이 1년을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 글쓰기며 자전거 배우기 올레길과 둘레길 걷기에 - 쓰려고 아껴둔 이 귀한 시간!
인생 2막을 시작하기 전에 갖는 준비기를 위해 서재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부터 비우기로 마음먹고 양쪽 벽에 그득한 책을 모두 꺼내 200 여권 가까이 정리했다. 책장 맨 위 칸 먼지가 켜켜이 쌓인 상자를 열어 보니 돌돌 말아진 핑크색 B4 코팅지가 보인다.
4학년 때 여고로 교생 실습 나갔을 때 6주간 담임을 했던 나의 첫아이들이 써 준 롤링 페이퍼에는 언제까지나 교생 샘의 눈과 마음으로 아이들을 봐 달라는 글들이 빼곡하다.
텅 빈 교실(이미지출처-픽사베이)
그 아래에는 스승의 날이나 크리스마스에 받았던 엽서와 카드들, 아이들과 함께 찍은 빛바랜 몇 장의 사진들 그리고 남색 낡은 천으로 된 필통이 한 켠에 들어 있다. 어라, 이건 15년쯤 전에 민주에게 선물로 받은 필통인데.
필통 안에는 내 이름이 붙여진 예닐곱 자루의 색색의 볼펜이 가지런히 누워 있다. 작은 메모지에는 민주의 손글씨로 ‘샘 1년간 개구쟁이 우리들 사랑으로 보살펴주어 감사했어요. 이 볼펜 쓸 때마다 저를 기억해 주세요! 이다음에 샘이 일하는 학교에서 우리 같이 일해요~’
민주는 초등학교 앞에서 문구점을 하는 엄마랑 둘이 살면서 학기 초에는 내향적인 성격 탓에 친구도 많지 않았고 수업 시간에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매일 모둠 일기를 쓰고 매달 하루를 정해 우리 반 학급의 날에는 모둠별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가끔은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기도 하면서 학기 말에는 모두가 민주와 절친이 되었다.
졸업(이미지출처-픽사베이)
아끼다 (*) 된다더니 하마터면 상자 속에 보관한 채 쓰지도 못할뻔했다. 민주야 살짝 번아웃이 와서 쉬는 중인데 네가 준 이 볼펜으로 쌤은 남은 학교생활 잘 마무리할게! 그나저나 네가 만약 교사가 되었다면 나 은퇴하기 전에 우리 함께 일할 수 있는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