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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ihwa Mar 17. 2023

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를 추억하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언어의 정원 덕분이었다. 짧은 46분짜리 영화인데 그림체의 영상미가 한 컷 한 컷 예술이다. 게다가 겨우 40분이 조금 넘는 그 시간 안에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혹은 짊어져야 하는 인생의 무게가 고스란히 다 들어있다. 구두 디자이너를 꿈꾸는 다카오는 비가 오는 날이면 학교에 가지 않고 신주쿠 공원에 가서 구두 스케치를 하고, 거기에는 맥주 한 캔을 마시는 젊은 여자 유키노가 있다. 그날부터였다. 신주쿠 공원의 저 정자에 앉아서 조용히 멍을 때려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다카오와 유키노가 앉아 있던 신주쿠 공원(이 날은 비가 안옴)

시간이 흘러 미츠하와 타키의 몸이 바뀌는 너의 이름은 이라는 신감독의 새 작품이 나왔다. 운석이 떨어져 마을 사람들이 죽게 될 운명에 처한 미츠하의 이야기에 몰입되어, 다카오와 유키노, 미츠하와 타키의 흔적이 있는 도쿄 곳곳을 다니며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고 음미했다. 타키와 오쿠데라 선배가 데이트했던 국립 신미술관에서는 인생 커피를 만나기도 하고.    


  

인생 커피를 마신 도쿄 국립신미술관

폭우를 배경으로 등장한 날씨의 아이, 히나는 어쩐 일인지 내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고 잠시 신감독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스즈메의 문단속은 2011년의 지진과 쓰나미, 폐허를 뚫고 내게로 왔다. 규슈, 시코쿠, 고베, 도쿄로 이동하며 소타와 함께 재난의 문을 닫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스즈메는 지진을 일으키는 붉은 정령 미미즈를 막으려는 여정 속에서 어린 시절 잃어버린 집과 엄마로 인한 상처와 슬픔을 위로받고 치유한다.     


스즈메의 문단속 포스터
너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두렵지 않아요!


어릴 때 보았던 은하철도 999의 철이와 메텔이 떠오르며 신기하게도 스즈메와 소타랑 겹쳐진다. 장소도 다르고 전하려는 주제나 메시지도 분명히 다른데, 유년기에 겪은 상처받은 기억을 타인과 함께 하며 이겨내고 받아들인다. 3대 재난을 완결시킨 신카이 마코토의 이야기 서사와 영상미는 빼어나게 아름다웠고, 이제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신감독의 새로운 영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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