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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May 21. 2018

나의 식탁과 남편의 식탁, 그리고 우리의 식탁

결혼 생활 중 나를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가 밥 먹는 시간에 관한 거였다. 아침을 챙겨 먹지 않고 살아온 나는 아침을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아 아침을 먹은 날이면 점심을 건너뛰어야 한다. 시댁은 아침 식사 시간이 따로 있었다. 강의 일정 때문에 서울 시댁에서 하룻밤 잔 다음 날 아침엔, 어김없이 밥상이 차려져 나왔다. 입맛이 없어도, 배가 고프지 않아도, 자리에 앉아 밥숟갈을 떴다. 밥이 들어올 시간이 아닌데 음식물이 들어오니 내 위장은 당황했을 것이다. 푹 늘어져 쉬고 있는데 외근 가신 팀장님이 갑자기 들어온 느낌이랄까? 급하게 위장 운동을 해대니 소화될 리 만무하다.


친정은 굳이 삼시세끼 챙겨 먹지 않는다. 특히 친정엄마는 ‘1일 1식’과 ‘소식’을 하신다. 어쩌다 삼시 세 끼를 먹은 날이면, 다음 날까지 속이 더부룩하다. 양껏 먹어도 시댁 어른은 “그렇게 조금만 먹어서 어떻게 하니”라는 걱정을 하셨다. 이렇다 보니 36년 내내 삼시세끼 어머니 밥상을 받은 남편과, 나의 식사 스타일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맞고 틀리고가 아닌, 그냥 다른 식탁 문화였다.    


오랜만에 늘어지게 누워있고 싶은 주말 아침, 남편은 눈 뜨자마자 내게 말한다. “오늘 아침 뭐 먹지?” 익숙해질 법도 한데 주말 아침이 꼬박꼬박 돌아오는 게 내겐 고역이었다. 간단하게 빵과 시리얼에 우유만 먹어도 괜찮으련만 이 식탁은 남편에게 ‘식사’가 아닌 대충 때우는 ‘무관심’이었다.


물론 아침식사를 나 혼자 차리는 일은 없었다. 남편은 굉장히 부엌 친화적인 남자로, 나보다 칼 같은 주방도구에 관심이 훨씬 많다. 아직도 미역국을 끓이지 못하는 나와 달리 남편의 미역국은 일품이며, 북엇국은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맛있다. 남편이 국에 있어서 강자라면, 나는 메인 요리에 관해서 강자다. 함께 뚝딱뚝딱 만들면 딱 좋은 콤비다.


하지만 내가 먹고 싶을 때 음식을 하는 것과, 시간이 되었으니 만드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어쩌다 아이가 늦잠을 자서 어린이집 지각을 할 것 같을 때 고민한다.

‘그냥 오늘 집에 있을까?’

그러다가 곧 생각한다.

‘아니, 안 돼. 밥 먹여야지.’

그러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준비를 한다. 그렇다. 밥 먹이기 위해 어린이집에 보내는 거다. 하원 후 저녁만 차리면 되니 압박감이 훨씬 덜하다. 정말 고맙다. 체육, 미술, 음악, 요리활동, 견학보다 하루 두 끼 아이 밥 챙겨 주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성은이 망극하다. 이렇다 보니 아이 어린이집 방학이 내겐 곤욕이다. 또 밥이 문제다. 2주일 동안이나 삼시 세끼를 차려야 하다니!


아이 덕분에 2년 전, 병원 생활을 잠깐 한 적이 있다. 어린이집에 유행하는 전염병에 단 한 번도 걸린 적 없는 아이가 폐렴에 걸렸다. 돌치레였나 보다. 첫날은 병원이 그렇게 갑갑하고 심심하더니, 이틀, 사흘이 지나자 서서히 적응이 됐다. 곧, 시간 땡, 하면 나오는 병원 밥을 즐기기 시작했다. 4박 5일을 병원에서 지내고 퇴원해도 좋다는 의사 소견을 들었을 땐 섭섭할 지경이었다. 사람들이 여행을 왜 좋아할까. 그중에 밥이 있지 않을까. 내가 차리지도, 치우지도 않아도 되는 유일한 허용.    


남편이 일찍 퇴근하여 함께 저녁상을 차리던 어느 날, 상 위에 수저를 챙겨놓으며 나는 소리쳤다. “아! 왜 이렇게 인간은 비효율적으로 만들어졌을까? 밥을 왜 먹어야 하는 거지?” 남편은 자기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철학자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     


지켜보면 결국 우리 삶은 밥이다. 밥도 못 먹고 일만 죽도록 한 날에는 서럽고, 맛있는 식당에 가기로 한 날이면 설렌다. 엄마는 아이 밥 차려주러 서둘러 돌아오고, 중년 여인은 남편 밥 굶을까 봐 친구들과 여행도 못 간다. 밥에 묶인 삶이라니. 밥 안 먹으면 죽는 건 맞지만, 밥 한 끼 안 먹는다고 안 죽는 것도 맞다. 한 끼 정도는 지나치고 싶은데 끼니 거르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남편 덕에 머릿속 빈약한 레시피를 뒤적인다. 남편이 해외 출장을 갈 때면 나는 범죄를 저지른다. 남편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아이와 뒹굴 거리다가 끼니를 놓쳐 은근슬쩍 지나칠 때도 있고, 빵이나 과일로 대충 때울 때도 있다. 조금의 가책은 느껴지지만 ‘오늘 하루니까!’ 하며 그 게으름을 즐긴다. 조금 자유로운 기분도 든다. 밥에 묶인 영혼이 조금 헐거워진 느낌이랄까. 그러면서도 내가 차린 밥을 안 먹는 아이를 보며 애를 태운다. 결국 문제는 밥이다.     


엉성하게나마 밥에 묶인 삶은 휴혼을 계기로 끝이 났다. ‘시간’에 맞춰 밥을 먹지 않고 ‘배가 고플 때’ 밥을 먹는, 내겐 아주 익숙하고도 당연한 생활로 돌아온 것이다. 아침을 아예 건너뛸 때도 있고, 빵에 우유를 먹기도 한다. 저녁 역시 배가 고프면 차려먹고, 그렇지 않으면 바로 잠자리에 든다. 그런데 결혼 전과 전혀 다른 나의 모습을 최근 자각한 순간이 있다. 싱글일 때는 무조건 시켜먹던지 사 먹었다. 집에 밥솥이 아예 없었고, 이사를 할 때마다 생각했다. ‘저런 쓸데없는 주방이 없더라면 방이 더 클 텐데.’


휴혼 후 친정에 갔을 때 친정엄마가 내게 물었다. “집에 냉장고는 있니?”

그랬던 내가, 지금 꼬박꼬박 쌀을 씻고 취사 버튼을 누른다. ‘해동 밥’은 먹지도 않았는데 혼자 사니 밥이 매번 남아 냉장고에 소분하여 얼려둔다. 휴혼으로 인해 이사 나올 때도 밥솥, 냄비, 각종 취사도구와 그릇, 양념장 하나까지 모조리 쓸어 왔다. 이삿날 저녁, 퇴근한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다 가져갔네?”    


주말 아침마다 쌀을 씻는 나를 보며, 지난 5년 결혼 생활 동안 어설프지만 주부의 면모를 조금은 갖춰가고 있었구나를 느낀다. 이건 전적으로 ‘밥돌이’인 남편 덕분이다. 지방 강의를 갔다가 올라오는 저녁, 밥 생각이 났다. 남편 생각도 덩달아 났다. 시어머님이 차린 밥상을 거하게 먹을 시간이다. 그렇게 밥, 밥거리더니 요즘은 엄마가 차려준 밥 먹고 좋겠네.


저마다 밥에 부여한 의미가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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