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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안 Nov 22. 2023

프리퀀시가 뭐길래

프리퀀시 교환해요. 빨강1-> 하양3


가만 보자, 뭘 먹지?


평소 같으면 쳐다도 안 볼 토피넛 라떼를 주문했다. 토피넛 라떼를 먹으면 빨강 스티커를 주니까. 샷을 추가해도 너무 달았다. 그럴 땐 발상을 전환해 고급진 달콤함이라고 생각해 보자. 뇌를 설득한다. 맛없으면 안 되는 가격 아니던가. 커피를 향한 내 마음이 이렇게 너그러울 수 있구나. 


취향과 맞바꾼 빨강스티커가 하나 붙여졌다.






스타벅스는 주기적으로 프리퀀시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그중 11월 초부터 시작되는 연말 프로모션은 정해진 기간 동안 미션 음료 세잔을 포함한 열일곱 잔의 스타벅스 음료를 마시고 인증해서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받는 방식이다.


스타벅스를 종종 용했지만 다이어리를 받기 위해 애써 들르지는 않았기에 스타벅스 프리퀀시는 나랑 상관없다고 여겼었다. 지난 몇 년 동안은 그랬다.


하지만 작년 연말은 달랐다. 11월 초, 남편이 동료들에게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샀다고 했다. 일곱 잔. 한 번에 하양스티커 일곱 개가 붙은 프리퀀시 화면을 보자 조금만 더 모으면 된다 도전 정신 같은 게 불현듯 내 마음에 들어왔다.


'이건 모아야 해.'

스티커를 채우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는지 다이어리가 때마침 필요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절실하게 다이어리가 갖고 싶어 진 건 그때부터였다. 스페셜 음료 세 잔과 아메리카노 일곱 잔을 마저 먹고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반드시 '겟' 하겠다는 목표로 프리퀀시를 모으기 시작했다.






굳이 입맛에 맞지도 않는 스페셜한 미션 커피를 사 먹고 필요 이상으로 드나든 결과, 드디어 빨강스티커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이제 고지가 코 앞이다. 프로모션 마지막 날, 스타벅스까지 가서 토피넛 라떼를 한 잔 더 먹기가 싫었던 나는 프리퀀시를 당근마켓에서 구입하기까지 이르렀다. 천 오백 원. 프리퀀시에도 시가가 있다.


드디어 열일곱 개의 스티커를 모았다. 가까운 지점에 다이어리를 예약하고 눈으로 찜해두었던 초록색 다이어리와 교환했다. 탄탄한 겉장이 마음에 쏙 들었다. 드디어 내 손에 들어온 다이어리를 보자 희열이 느껴졌다.


다만 아주 짧은 시간이었던 거 같다.

프리퀀시와 증정품 다이어리에 대한 나의 집착은 이렇게 끝이 났다.






스티커 일곱 개로 시작하니 모아 볼 만하다는 가능성, 새것에 대한 탐심, 한정된 수량이라는 희소성에 사로잡혔었다. 하지만 동시에 프리퀀시 종료 날이 다가올수록 다이어리 재고가 소진될 가능성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결국 그걸 손에 넣음으로써 특별한 커트라인 안에 진입했다는 일종의 성취감을 얻었지만 돌이켜보건대 그 순간은 매우 짧았다. 정말 갖고 싶었던 건지, 갖고 싶도록 종용된 건지.

나는 결국 마케팅의 노예였던 걸까.  아니, 충성도 높은 고객이라고 하자.

브랜드 로열티!!




프리퀀시 교환해요. 빨강1->하양3


오늘도 커피맛, 그 이상을 사랑하는 충성도 높은 고객들은 커뮤니티에서 커피가 아닌 '프리퀀시'를 주고받는다. 타벅스라는 브랜드 가치를 개인소장할 수 있는 매력적인 제안이기에. 그 제안은 수고로움도 기꺼이 감수하는 마음까지 갖게 한다.


올해도 모아볼까 하는 마음이 잠시 스쳤지만 다이어리에 집착한 내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 프리퀀시는 그만 모으려고 한다. 무엇보다 취향에 안 맞는 미션 음료를 먹기가 싫었다.


대신 무심결에 모아진 하양 스티커 몇 개를 일찌감치 필요조건이 맞는 누군가의 무료 쿠폰 두 개와 교환했다. 프리퀀시나 무료 쿠폰을 당연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 스타벅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고객의 매장 방문유도하며 빈도수를 세는 스타벅스의 프리퀀시 마케팅.

빈도, 잦음을 뜻하는 영어단어인 frequency에는 주파수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유연한 프리퀀시 이용으로 나와 스타벅스 사이의 주파수를 맞춰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난 스타벅스에 충성도 높은 고객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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