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업무(현상)를 나만의 성장 서사(본질)로 바꾸는 일의 감각
1950년대 어느 추운 겨울, 정주영 회장의 사무실로 급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UN군사령부입니다. 이번에 각국 대표들이 부산의 UN묘지를 방문하는데요, 묘지가 완전히 황폐한 상태입니다. 혹시 묘지에 잔디를 깔아주실 수 있습니까?"
한겨울이었습니다. 잔디는커녕 풀 한 포기도 구하기 힘든 시기였죠. 황폐화된 묘지를 각국에서 온 주요 인사들에게 그대로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잔디는 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정주영 회장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잠깐, 꼭 잔디여야 하나? 푸르기만 하면 괜찮지 않을까?'
그는 즉시 트럭을 몰고 낙동강변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겨울에도 푸르게 자라난 보리새싹을 몽땅 사들였죠. UN묘지는 하룻밤 만에 푸른 보리밭으로 뒤덮였고, 각국 인사들은 푸른 묘지 위에서 호국영령을 무사히 추모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한겨울에 잔디를 구해오라'는 똑같은 문제에 부딪혔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 대부분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잔디가 없으면... 인조잔디라도 깔면 되지 않을까?'
세계적인 전략 컨설턴트 히라이 다카시는 이런 사고방식이 통찰력을 방해하는 주된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뇌는 어떤 현상을 반대로 생각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믿는 습관이 있다는 거죠.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달랐습니다. 그는 현상의 반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현상 뒤에 숨은 본질을 꿰뚫어 봤습니다.
현상 : 잔디가 없다.
본질 : 묘지가 푸르게 보여야 한다.
진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결책을 찾기 전에 진짜 이유, 즉 본질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이 놀라운 통찰은 비단 거창한 문제 해결에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놀랍게도 일 잘하는 사람들의 커리어에서도 똑같이 발견됩니다.
우리의 커리어에서 현상은 무엇일까요? 바로 지금 내 앞에 놓인 주어진 일, 그 자체입니다. 보고서 작성, 디자인 시안 수정, 고객사 미팅 같은 것들이죠.
그렇다면 우리 커리어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그 일을 통해 내가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성장과 의미입니다. 저는 이것을 자기 맥락이라고 부릅니다.
현상에 집중하는 사람 : 주어진 일을 완수하는 데 집중합니다. 일은 그저 처리해야 할 대상입니다. 경험은 흩어진 구슬처럼 존재하고, 커리어는 그저 해치운 일들의 나열이 됩니다.
본질에 집중하는 사람 : 자기 맥락을 만듭니다. "이 보고서가 우리 팀의 어떤 목표에 기여할까?", "이 디자인 수정 작업을 통해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뛰어난 사람들은 주어진 일을 잘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맥락을 만들어갑니다.
그들은 모든 경험의 구슬을 나의 성장이라는 본질의 실로 꿰어냅니다. 그렇게 흩어진 경험(현상)은 하나의 의미 있는 서사(본질), 즉 커리어가 됩니다.
정주영 회장이 잔디라는 현상에 갇히지 않고 푸름이라는 본질을 봤듯이, 우리도 주어진 업무라는 현상에 갇히지 않고 나의 성장이라는 본질을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본질 혹은 자기 맥락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제가 '커리어의 서사화를 통한 자기이해'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스토리를 만든다는 것은 흩어져 있는 경험(현상)들을 연결해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과거의 실패가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지금 하는 이 업무가 나의 어떤 목표와 연결되는지?
이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흩어져 있던 점들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며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단단한 자기 맥락(본질)이 만들어집니다.
UN묘지에 필요했던 것은 잔디라는 현상이 아니라 푸르름이라는 본질이었습니다.
우리 커리어에 필요한 것은 스펙의 나열이라는 현상이 아니라 나만의 성장 서사라는 본질입니다.
잊지 마세요.
현상에만 집중한다면 세상은 해결 못 할 문제로 넘쳐나겠지만,
당신이 본질을 바라볼 때
그 문제는 당신을 성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현상에 집중하고 있나요,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