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동포, 인류와 세계는 당신의 용기있는 사상에 인도되기를 원한다!
지금 한국인들은 마비되어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졸음운전 사고나기 직전이다. 정신차려야 한다.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COVID-19와 AI의 광풍, 세계의 완전자동화나 일반인공지능이 생각보다 빠르게 와서 아무튼 다 해결해줄 거라는 낙관론, 인플레이션과 그보다 뜨거운 주식시장 때문에 지금 이 순간 다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우리는 지금 다 잠들기 직전이다.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도대체 왜 잠이라고 하는 것인가? 무슨 근거로 점점 우리는 마비되어가고 있다는 것인가? 왜 그렇게 말하는가? 나는 답한다. 지금 우리는 이념에 대해 너무 적게 말하고 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철학인지, 무엇이 올바른 삶인지, 무엇이 똑바로 된 인생인지!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을 상대주의와 '구매 가능한 취향, 그러므로, 지불했으므로 정당화되는 취향'으로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그 대가로 옳은 것을 잃어버렸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을 삶의 신조와 가치관으로 섬겨야 할지 거의 다 잊어버려가고 있다.
지난 수천 년간, 인류의 스승들이 그렇게 한 번 말 할 때 똑바로 알아듣고 까먹지 말라고 했던, 부처님과 예수님이 당부했던 수많은 계율들과 가르침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누가 하루에 SNS를 보는 것의 절반만큼이라도 "무엇이 좋은 삶인가?", "나는 오늘도 허물을 고치고 중용을 실천했는가?" 라고 이념의 추구를 결행한 자가 있는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SNS에 하트찍고 따봉누르느라 다 쳐 까먹고, 도파민에 중독되어서 웃기고 귀여운 것들을 보느라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우리가 개인적인 알사탕 같은 즐길거리에 인생을 낭비하는 동안, 사회적인 것, 공동의 것, 공동체, 상호작용, 공동 번영은 시들어 죽고 있다 이 순간! 다시 이념이다. 다시 우리는 이념을 생각해야 한다.
인신매매범 앤드류 테이트, 여자 휘어잡는 남자가 되라고 가르치는 조던 피터슨 류의 인간들, 아침에 찬물로 샤워해서 상위1% 남자가 되라고 윽박지르는 성공 유튜브들이 그 어이없는 논리적 · 실증적 허점에도 불구하고 왜 승승장구했는가? 그들은 아주 쓰레기 같은 소리라도 자기 용기를 가지고 하나의 이념이 되는 말을 하긴 했기 때문이다. 이념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옳게 깊이있든 그르게 깊이있든, 이념에는 삶에 그래도 단 1cm라도 아래로 파고내려가는 고뇌가 있고 그 고뇌에서 나오는 나름의 통찰이 있고 메시지가 있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해서 취업까진 했는데, 이제 뭐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고, 공짜로 자기 손에 쥐어진 선조들의 영육을 갈아넣은 유산(=인류 문명)이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진 줄 모르고, 민주주의와 아이패드라는 각 존재들의 잠재력을 공기처럼 낭비하는 인간들이 우리 대부분이다. 모든 이념은, 자신이 연결된 민주주의가 고작 북한 따위에게 자부심과 국뽕을 느끼게 해 주는 유산이 아니며, 자기가 쥔 아이패드가 고작 헤드폰 연결해서 연예인 직캠 보고 도파민 유튜브 보게 해 주는 유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정신의 증강현실 렌즈'이다. 지금 네게 연결된 민주주의는 자부심이 아닌 책임감이요 민중을 구원할 횃불이고, 지금 네 손에 들린 아이패드는 오락기계가 아닌 기회와 주도성을 창출할 로켓과도 같다는 숨겨진 진리의 QR코드를 읽어주는 선조로부터의 계시이자 당부인 것이다.
우리가 삶을 단순한 경제동물이 아니라 어떤 멋진 신화의 참여자이자 기여자로 살아가게 한다는 측면에서, 모든 이념은 월급통장의 숫자보다 명백히 한 차원 위에 존재한다. 모든 이념에는 그래도 이념으로서의 자격이 있다. 나치즘도 '이념'의 일종이냐고 묻는다면 사전적으로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듯, "니가 찬물샤워와 아침 이불개기로 상남자가 되어서 오픈스토어 창업해서 돈 많이 벌고 여자를 지배해라 그게 너의 남성성을 증명하는 길이다" 라는 인생관도, 쓰레기지만 분명 이념이기는 이념이라는 것이다. 삶에 대해서 무슨 말이라도 하기는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저 흉측한 것들이 이념이라고 해서, 이렇게까지 성공한 이념일 필요는 없었다. 왜 수많은 남자들이 앤드류 테이트, 조던 피터슨류의 인간들에게 그들의 정상적이었던 영혼을 지배당했는가? 또한 왜 수많은 소시민들이 국뽕 컨텐츠와 연예인의 처우에 대한 싸움에 환장을 하는가? 그들이 섬기는 이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봉사하는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사람들은 이념이 부족하다. 이념이 없어지면 그 자리에는 덧없고 덧없어서 더 집착하고 발광하며 별 것 아닌 존재에 증오하고 발광하게 되는 '지리멸렬한 이기적 소시민'이 자리잡는다. 그 지리멸렬하고 이기적인 소시민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내 거 내놔." "내 거 내놔 무임승차자 놈들아!" 라고 말한다.
얼마 되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은, 한 줌 밖에 없는, 내가 번 것도 아닌 물려받은 과거의 권력을 쥐고, 다 같이 몰락해가는 경제적 공동체에서 조금이나마 위로 올라가서 살아남으려 하는 '경제 동물'이 되는 것이다. 경제 동물은 마치 양과 같아서, 목자의 소몰이 지팡이 딸랑이 소리에도 금방 반응한다. 목자를 잡아죽이고 스스로 '자유-사유 동물'이 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이념의 없음은 다시 손쉬운, 달콤하고 멍청한 이념에 종속되는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삼일절에는 태극기를 달고, 국군의날에는 태극기를 달고, 북한의 김씨 삼부자를 저주한다. 군인 여러분 감사하다고 댓글 단다. 유승준과 MC몽을 저주한다. 먹고사는게 힘들긴 하지만 우리가 자본주의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어휴 북한에서 태어나면 어쩔 뻔했냐며, 내가 지금은 월급이 200밖에 안되지만 나중에 어떻게든 소자본 창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부자가 되고 FIRE족이 될 수 있겠지? 제발 테슬라 올라라. 제발 삼전 올라라. 종교행사에 참여한다. 하나님 은혜든 부처님 가피든 잘 되게 해 달라고 빌기 위해. MBTI검사를 하고 그걸 농담거리로 삼는다. 운세를 보고, 사주팔자를 본다. 미래를 점쳐서 삼재를 피하고 대운이 들어올 때 돈 많이 벌기를 기대하며. 그게 다다. 그게 생각의 끝이다. 더 나은 나라, 더 나은 시스템과 더 나은 삶, 더 나은 스스로 구축하는 이념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 그냥, 먹고 싸는 양떼와 한국인들이 무엇이 다른가? 이념이 없다는 점에서 완전히 같은데?
지금 사람들은 자신의 이념-깃발을 스스로 세우고 펄럭일 용기가 없기 때문에, 쓰레기 같은 남의 이념에 휘둘리고, 쓰레기 같은 남의 선동에 세뇌당하고,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닐 쓰레기 같은 질문에 집착하고 있다.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이러는가? 그렇지 않다. 한국인들은 개개인이 매우 우수한 존재들이다. 몇 년을 공부에 쓴다. 배운 게 어디가지 않아서 똑똑하다. 9급·7급·5급에 합격하고, 전문자격시험에 합격하며, 기사와 기술사를 따고, PSAT을 푼다. 흔히 말하는 'IQ' 를 재는 것으로 유명한 WAIS 지능검사가 수십 년 단위로 목표 평균점수를 대략 10점 정도 하향 보정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사람들이 더 많이 배우고 익히면서 점점 더 똑똑해지기 때문에, 과거 사람들 기준(규준)으로 재면 평균 IQ가 너무 높게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의 평균IQ역시 세계평균(100)보다 높을 것으로 짐작된다. 106이라는 말도 있고 111이라는 말도 있는데, 분명 세계평균보다 높을 것이다. 이렇게 많이 배우고 오래 훈련받는데 낮게 나올 수가 없다.
요즘 사람들 얼마나 똑똑한가? 주식도 잘 하고 전세집도 조심히 구하고 영어도 잘한다. R도 하고 Python도 하고 Primire Pro에 Figma까지 찍어먹어 본다. 대기업 인턴십도 척척 한다. 젊고 어린데 교육은 촘촘히 받아서 못 하는 게 없다. 그러나 남들이 지지해주지 않는 의견을 주장할 사상적 용기, 스스로의 경험과 양심에 따라 생각하는 용기, "우리 모든 소수자, 모든 소외된 사람들 다 살려봅시다!" 말하는 기백과 호연지기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용기를 배우지 못했다. 지능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용기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방탄복과 똑같은 구조로 만들어진 고대 시대의 뼈찰갑을 본 적 있는가? 그러나 뼈찰갑을 입은 자들의 민주화 혁명을 보았는가? 지능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용기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민족성은 다수의 경험이 남긴 트라우마로 구성되는 것인데, 우리 민족을 구성한 공통성은 냉전의 학살과 공포, 사상을 이유로 한 학살, 죽기 싫으면 입 닥쳐야 했던 무서운 비밀경찰과 고문의 역사, 강요받은 침묵과 지워진 기억의 역사다. 우리 시대는 기나긴 냉전 시대, 매카시즘 반공주의, 군국주의만도 못한 국수주의, 가부장제와 안티페미니즘의 시기를 보냈다. 그 무서운 시기가 우리의 문화에 침묵을 강요하는 버릇, 의견이 있어도 쉬쉬하는 버릇, 우스개소리로 '너 그러다가 국정원 끌려가서 코렁탕 먹어'라고 하는 자조적인 움츠러듦과 희화화된 국가폭력의 농담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자꾸 패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이념와 사상을 잃어가는 것이다. 그 이념과 사상이 무엇이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각자의 양심 · 신조 · 이상향에 따른 나만의 고유한 이념과 사상을 당당하게 말할 체험과 용기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진짜 문제이다. 그러니까 가장 쓰레기 같은 이념 같잖은 이념에 모든 텅 빈 두뇌들이 구슬처럼 흘러내려와서 고이는 것이다. 우리가 사상 검증을 두려워해왔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페미니즘을 페미니즘이라 부르지 못했기 때문에! 반공주의에 반대한다고 더 크게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의 이념을 조롱하고 진지충 취급하는 복고주의자들을 야 이 생각없는 민주주의 무임승차자 무뇌충아! 라고 비난할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상 검증들에 우리가 끝까지 정면으로 맞서지 못했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역행하는 근왕주의자 놈아! 라고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개저씨를 개저씨라 부르지 못하고, 한남충을 한남충이라 부르지 못하고, 배드파더스를 배드파더스라고 부르지 못하고, 성매수충을 성매수충이라고 부르지 못했기 때문에! 가부장제 방어를 위한 역겨운 양비론의 논리에 끝까지 저항하고, 끝까지 욕설의 충정(忠正)과 곧음을 움켜쥐고, 끝까지 "야 이 성매매 하는 한남충들아"를 외친 자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끝까지 해야 할 욕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상 검증과 '분란 일으키는 사람 되기'의 공포에 많은 사람들이 움츠러들었기 때문에, 남녀갈등의 한복판에 서면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봐 쫄았기 때문에! 우리는 끝까지 모욕하고 망신주고 비난해야 할 역사의 적들을 말과 담론의 망치로 충분히 찍어버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제 옳은 것과 틀린 것들의 싸움은, '쌍방과실 갈등'으로 불리고 있다. 언제부터 페미니즘이 가부장제에 맞서고 경력단절에 맞서는 것이 '남녀갈등'이 되었나? 남과 녀가 갈등을 하는게 아니라 그냥 남자가 개같이 잘못한 거 아닌가? 남녀갈등이 아니라 남자들이 지난 5천년에 걸쳐 자행한 인류학적 규모의 젠더적 침략이 역사의 심판을 개같이 쳐맞고 히틀러 벙커마냥 공세종말점에 도달하고 있는 거 아닌가? 이제 가부장주의가 한 손으로는 자살 직전의 히틀러처럼 아직 정신 못 차린 멍청이들의 대가리에 정상가족의 판타지 버튼과 그 방아쇠가 최종적으로 인질 잡은 친정엄마에 대한 죄책감에 겨누고, 다른 한 손으로는 대로변에서 칼부림을 하면서 자멸해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이건 귀여운 갈등 따위가 아니라 다 끝나가는 구세력의 침략전쟁이 아닌가?
한국인들이여 우리는 전쟁을 언제부터 갈등이라고 불렀는가! 우리는 단 한 번도 일제강점기를 일본-조선 갈등 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한국인들이여!
언제부터 노동자에게 푼돈을 주고, 노동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플랫폼 일자리를 확장하는 추세가 'MZ 알바와 자영업자의 갈등'이 되었는가? 노동시장양극화와 최저임금의 열화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이 수백만명의 자기고용노동자에 다름없는 자영업자와, 도저히 내부노동시장에 진입할 물려받은 자산이 없어서 무의미한 알바를 전전하는 니트족·프리터족으로 내몰린 것 아닌가?
결국 90%는 시험에서 탈락하기 마련인 전문직이 못 되면, 평생을 월급 200~300으로 가난하게 남들과 비교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한국인들의 현실이… 상위 20%만 진입할 수 있는 인서울 대학, 그것도 1.5%만 진입할 수 있는 SKY학벌이 아니면 평생을 남들과 비교당하면서 열등감 가지고 살아야 하는 한국 80%~98.5% 거의 모든 민중의 박탈감과 그 학벌이 제공하는 혜택에 비례하는 생애총소득의 차이가 무슨 꼴랑 '계급 갈등'이 되었는가? 월급 200가지고 육아는 무슨 결혼도 힘들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 부유하고 발전한 한국사회가 총생산성이 얼마나 후달리기에 1인가구 중위소득이 222만원이 나오는가? 소득분배를 더 하고, 프랑스처럼 대학평준화를 해서라도 이 골품제를 갈아버려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게 인구 5000만명에 대한 정신병 예방 정책이지 왜 이게 '학벌 갈등, 대학 갈등'인가?
언제부터 이념전쟁이 끝났나? 왜 공산주의를 정정당당하게 죽이러 오는 자는 없는가? 소련의 스탈린이 '정치적인 이유로' 공산주의의 이름을 더럽혔고, 북한의 김일성 독재라인이 또한 '정치적인 이유로' 공산주의의 이름을 더럽혔다. 그런데 그 공산주의가 '정치적인 이유로' 더럽혀졌다는 것만을 우리는 알고 있을 뿐, 공산제가 정말로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산업 생산성의 측면에서, 제도적인 측면에서 최종적인 검증에 통과하지 못하여 붕괴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했는가? 확인하지 못했다면 왜 경제정책으로서의 공산제를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욕하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다시 실험해보려하지 않는가?
잘 배운 자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 공산주의의 반대말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입니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독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독재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왜 공산주의가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인가. 왜 어떤 정치의 실패를 어떤 경제정책의 실패라고 말하는가? 우리는 왜 그렇게 말하는 수많은 댓글과 여론에 대해서 아무런 역겨움과 분노를 갖지 않는 것인가? 왜 우리는 끝나지 않은 싸움을 수용하는가? 왜 우리는 환자가 사망판정을 받기도 전에 수상쩍을만큼 서둘러 화장터에 태워버리려 하는가?
마치 기억 조작을 당한 것처럼, 마치 없었던 일처럼, 어젠다는 희석되고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는 분명 어젠다를 외쳤다! 2008년에는 '월가를 점령하라'고, 2014년에는 '진실을 인양하라'고, 2015년에는 '묻지마 살인은 없다'고, 2018년에는 '용균이를 살려내라'고, 2021년에는 변희수 하사의 순직을 인정하라고 외쳤다. 평등을 재건하고, 공유지를 재건하고, 저항하고, 점령하고, 공산주의를 다시 상상하고, 사회주의의 분배 정신을 다시 소환하고, 페미니즘이라는 미완의 기획을 우리는 끝없이 전진시켜야 한다고! 삼풍백화점도, 군대 의문사 사건도, 세월호도, 이태원 참사도 단 한 번도 끝나지 않았다고!
우리의 전쟁이, 각자의 자리에서 한 숟가락이긴 하더라도, 투사가 아닌 셔츠를 입은 시민의 모습이긴 하더라도 선명하고 견고하게 정의를 지켜야 하는 우리의 방어전쟁이 지금 ChatGPT와 경제 불황 이야기 앞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 이것에 대한 생각과 고뇌들이 당신의 마음에서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가?
오늘날 한국인의 공론장에서 고작 나오는 말이 무엇인가? 하이브가 잘못했다! (하이브가 잘못했다고 나도 생각한다) 하이브가 사이비다! (하이브가 사이비 종교와 연관되어 있을 개연성이 높다고 나도 생각한다) 민희진이 불쌍하다! (민희진이란 분이 억울하겠다고 나도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공론장이라는 것이, 자본주의와 세계주의를 넘겨다보고 굽어보는 우리의 높은 지성이, 철학자와 사상가와 사회학자와 경제학자로 도배되고 고뇌하고 좌충우돌하는 것이 아니라! 고작 민희진 기자회견으로 도배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이라는 것이! 우리의 지성이라는 것이! 너는 얼마나 잘났냐! 너는 얼마나 잘나서 한국인을 천박하다 하느냐! 너도 개돼지가 아닌 줄 아느냐! 우리는 이제 이따위의 쓰레기 양비론들만 유튜브 따봉 1위 댓글에서 읽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동북공정보다 더 험한 게 아니면 무엇인가? 이것이 독도를 뺏는 것보다 더, 고구려 역사를 뺏는 것보다 더 악랄하게 우리의 정신적 명료함과 내 가슴 속에 빛나는 양심의 별을 뺏어가고 있다. 지금 중국이 밉고 시진핑이 밉고 일본이 미운가? 한국인들이 자기 자신들을 정신적으로 썩어가게 하고 있는데, 지금 고구려 무사들이 당신과 얼마나 관계있는지가 중요한가?
왜 우리는 옳은 게 옳다고 말하는 인간성을 잃어버린 것인가? 왜 우리는 페미니즘이 옳다, 안티페미니스트 이 역겨운 것들은 틀렸다, 사회주의는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하다, 아브라함계 종교 퀴어혐오 너무 하시네요 작작하시죠, 공산주의 실험 한 번 해 보자, 국뽕 그만 빨아라 미친놈들아,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그만해라 미친놈들아, 최저임금 올려라, 이 사회의 우경화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정면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인가? 왜 그렇게 다들 쫄아 있는가? 도대체 무엇이 두렵고 무엇에 쫓기는 것인가! 말도 못하면서 행동은 언제 하겠다는 것인가! 고문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이미 다 당했고, 감옥의 처우는 인권운동가들이 이미 다 개선해놓았고, 수많은 민주주의 투쟁 끝에 더 이상 당신을 감시할 비밀경찰도 삼청교육대도 형제복지원도 존재하지 않는데, 여기서 한 걸음이라도 더 몸사리면 비겁자 아닌가?
우리는 계속 말해야 한다. 심리학에서는, 말도 행동이고 두뇌활동(생각)도 행동이라고 한다. 화염병 던지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못해서 부끄럽다고 숨지 않아야 한다. 하던 말을 계속 해야 한다. 우리보다 더 저열하고 사악한 자들이, 국뽕을 통해 시민을 복종케 하고 싸구려 만족감을 얻으려는 자들이, 청소아줌마들에게 푼돈을 던져주고, 자본을 갖고 있거나 회사를 먼저 차렸다는 이유만으로 경제 파트너들을 짓밟으려는 자들이, 쓰레기 같은 싸구려 도파민 자극물을 팔아먹으면서 민중의 뇌가 녹아내린 상태로 만드는 자들이, 우리보다 더 시끄럽게 지껄여대고 있다.
우리는 이 광경에서 우리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부끄러움은 저 자들의 몫이다. 우리가 저 자들에 의하여 조리돌림 당할 때, 그것은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우리의 승리이고 사회 계몽의 불가피한 단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마을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고 좋은 사람 아니고, 다 싫어한다고 좋은 사람 아니다. 마을의 나쁜 자들이 싫어하고, 마을의 좋은 사람들이 좋아해야 좋은 사람이다."
당신이 양심 그대로 용기 내어 생각한다면, 당신은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들이여, 우리는 원 팀이니, 전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