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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Kim Oct 22. 2019

(잡설) 해외 주재원으로 일한다는 것

외노자의 근로일지

말도 안돼.


벌써 2년 반의 시간이 흘렀는데, 중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가 오히려 아득할 만큼 시간이 훌쩍 건너 뛴 것만 같다. 


해외 주재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수험생이 독서실을 예약하고 공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가족이 있는 경우 가족을 동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 보다 훨씬 더 일에 집중하게 된다. 이건 어쩌면 내가 하는 사업 특성 때문 일 수도 있겠다. 외국에서도 충분히 한국 본사의 입지만큼 사업이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주재원으로 파견을 가능 경우라면, 어쩌면 조금 더 나을 수 있겠다. 하지만 대체로 한국에 터를 둔 기업이 외국으로 주재원을 내보낸다는 것은 신규 사업을 위한 경우가 많을 거고, 그 경우엔 여지 없이 '일에 올 인'할 수 밖에 없다. 또 한가지 더 큰 이유는, 한국에서 만큼 노는 방법을 많이 익혀 두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다. 친구도 별로 없고, 놀 데도 많이 모르다보니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게 일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쨌든 주재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일에 몰빵한 인생의 시간을 한번 쯤 가져볼 수 있다는 장점아닌 장점이 있다.


 자, 시작부터 천천히 한번 다시 짚어보자. 우선, 


주재원은 어떻게 될 수 있는가?


 주재원이란 모기업을 모국에 둔 채, 해외로 파견받아 근무를 하는 형태의 직장인들을 말한다. 가장 큰 메리트는, 돌아갈 데가 있다는 점이다. 기업에 따라 다르지만, 주재원은 주재기간을 대략적으로 정해두는 경우가 많고 이 기간이 종료되면 대체로 한국의 해당 회사로 돌아갈 수 있다. 이와 구분해, 해외지사나 법인 현지에서 채용되어 해당회사의 직원이 된 한국인은 현채인(현지채용인) 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해외법인의 자체 채용 직원으로 입사와 퇴사를 해당 해외 법인에서 모두 책임지게 된다. 무슨 진골, 성골 신분의 구분 같이 보여 언짢게 보일 수도 있는데, 그런류의 구분은 아니다. 세상 모든게 평등할 수 없는 이상, 직업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은 당연한 부분도 있다. 다만,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부분은 같은 업무를 하고, 같은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대우가 다른경우엔 이 불평등이 부당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단지 채용신분이 다른 불평등이 있다고 해서 '부당'으로 추정하지는 말자. 우리는 불평등을 전제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주재원의 의미가 이러니, 결국 주재원이 되려면 일단 한국에서 입사를 해야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외에 주재원으로 파견 나갈 직원을 바로 한국에서 채용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대게의 경우에는 해당 회사에 일정기간 이상 근무를 한 경우를 주재원 선발 대상으로 둔다. 주재원을 내보낸다는 것이 해당 회사의 비즈니스 노하우들, 회사 문화나 업무 규정, 기술 등을 해외에 적용해서 다른 시장에서의 성공을 노려 보려는 의도인 것이 대부분이므로 그렇다. 또한 해외 사업에 대한 리스크가 만만치 않으므로, 해당 회사에서 아무래도 수준급 인재들을 내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으면 해외에 그냥 돈만 내다 버리는 꼴이 되니, 당연한 이야기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회사마다 주재원 인력 풀 이라는게 운영되고 있을 수 있다. 해외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기업의 경우, 미리 언어나 문화에 대한 부분을 학습시켜 두기 위해 주재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직급 대상자들을 선발해 교육을 진행한다. 전문적인 수준은 아니더라도 일상회화 수준의 해당 언어 구사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현지에서의 소통 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 나의 경우엔 이런 정식 코스를 밟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 한국 본사에서 마케팅업무를 진행했고, 나름 한번의 누락도 없이 승진을 거듭하는 운을 누려 과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해보고 싶은 일도 많았고, 나름 큰 건이라 할 만한 프로젝트들도 진행 중에 있었는데, 마음속에 이는 방랑벽을 이길 방법이 없었다. 안정적인 구조를 벗어나 조금더 역동적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기회가 있었을때, 사내에서 해외 주재원 파견에 대한 내부 잡 포스팅이 있었을 때, 강력하게 지원을 어필했고 결과적으로 아무런 사전 준비가 없었음에도 파견을 받을 수 있었다. 여러가지로 운이 좋았다 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단, 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정도는 갖추고 있었다. 해외에서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만큼 현지어가 아니라도 영어는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항목이었는데, 다행히도 주재원 파견을 위한 최소조건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재원을 나오게 되는 경위는 참으로 다양할 수 있지만, 어쨌든 보통의 경우에는 해당 풀 안에 들어가 사전 준비를 마친 상태여야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주재원이 누리는 혜택


 주재원으로 근무한다는 것은, 업무적인 면을 떠나 누릴 수 있는 혜택이 한국 본사에서 받을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 부분은 회사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대략적으로 해당국가의 거주를 위한 주택지원, 자녀의 학자금 지원, 주재국가에서의 생활을 위한 생활비 등이 별도의 항목으로 책정되어 추가로 지원된다. 결국 한국에서 받는 돈의 절반에서 100% 수준에 이르는 추가적인 경제적 혜택이 따라온다. 실질적인 연봉 인상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셈이다. 해외의 낯선 환경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면, 휴일마다 해외여행 같은 느낌으로 나들이를 다녀올 수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급여 인상의 기회까지 더하면 주재원 만큼 좋은 기회란 회사생활에서 다시 찾기 힘들 정도다. 또 대체로 모국에서 보다 높은 지위의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된다. 이 부분이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사실상 승진과 같은 개념이라 생각하면 회사원으로서는 딱히 싫을 이유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실천해 볼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하는 셈이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변화들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것 만큼 회사생활에서 가치있는 일은 또 없을 것이다. 이런 부분들은 부인할 수 없는 장점이고,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면에서 너무 훌륭한 조건이 된다.


단점.


 우선, 건강에 대해 굉.장.히 신경을 써야 한다. 개발도상국으로의 파견인 경우 의료시설의 수준이나, 보험의 문제로 인해 제한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한국처럼 아무 걱정없이 살다가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병원을 찾아 싸고 쉽게 고급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대를 버려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작은 질병도 꽤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감기에 걸려 병원에만 가도 거의 10만원 가까운 돈을 지급해야 할 수 있고, 한국에서 해외체류 보험으로 처리가 되는 경우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대체로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만 최소한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를 포함해서 지급되는게 바로 앞에서 언급한 생활비 개념이긴 하다. 여튼 상황이 이러니, 본인 스스로 건강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지만 앞서 본 것 처럼 일에 몰빵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보니,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건강을 더 못챙기는 경우가 많고 제때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해 몸이 상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도 미리 주재원으로 나온 주재원들 중에 심각한 질병으로 복귀를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고, 대체로 크고작은 질병으로 고생하는 케이스가 상당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건강에 대해서는 의무적으로라도 신경써서 챙겨야만 한다.


 스트레스 관리에 취약하다. 한국의 음주문화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직장인들의 음주가 스트레스 해소에 꽤나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의료업계 종사자들이 보면 혀를 찰 발언이겠다만, 일 끝나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한잔하며 풀어내는 술자리가 스트레스를 계속 마음에 남아두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면이 분명 있다. 또 술자리가 아니라 하더라도, 운동을 위한 환경이 워낙 잘 갖추어진게 한국이다 보니 이런 취미활동을 통해서도 적당히 스트레스 관리를 해 나갈 수 있다. 말하다 보니, 참 웃긴일이다. 내가 사는 곳에는 왠만한 아파트 단지마다 수영장도 있고, 헬스클럽도 있는데 시설 탓을 하다니 말이다. 시설 탓이라기 보다는 업무 환경의 문제인 듯 하다. 권한이 높은 만큼 책임도 높고, 고민해야할 깊이와 넓이가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직원과의 소통 문제, 보이지 않는 법적 문화적 장애와 갈등들, 사업성과에 대한 책임의식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퇴근 후에도 내 사업처럼 생각을 놓치 못하고 운동보다는 지쳐 쓰러져 소파에서 잠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잠시 언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모국어의 사용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이라는게 분명히 있는 듯 하다. 내 경우엔 가족들이 주재기간 2년이 지나서야 함께 생활하게 되었는데, 그 전까지는 생활의 모든 것이 영어로 진행되었다. 네이티브가 아닌 이상에야, 당연히 모든 표현을 영어로 해야 한다는 점이 불편할 수 밖에 없었고, 아무리 의사소통이 잘 된다 한 들,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한 내 마음을 달래 줄 길이 없어 답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부분은 바뀌긴 한다. 한국식 표현에서 영어식 표현으로 생각이 점점 변하고, 그렇게 되면서 자연스레 머리와 가슴의 거리가 좁혀지긴 하다만, 코리안 네이티브가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느끼는 불편함에 이 언어적인 문제로 인한 정서적 괴리가 발생한다는 점은 분명한 듯 하다.


 또 한가지는 외로움이다. 세상 어딜가나, 사람은 역시 혼자사는 거다. 그러나 또 같이 사는 존재기도 하다. 아무리 외로워도, 우리는 알게모르게 주변과 소통을 하며 산다. 소통이라는게 꼭 상대와 대화를 해야만 얻어지는게 아니다. 시장에 갔는데 주변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를 듣는것도, 개그콘서트를 보며 한바탕 신나게 웃어제끼는 것도, 지하철을 타고 같은 행동패턴으로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것도 일종의 사회적 소통이라고 볼 수 있다. 외국에 홀로 동떨어져 산다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소통의 상당 부분을 잃는 것이다. 이게 외로움으로 다가온다. 연인이 없는 외로움이나 가족을 그리워하는 그리움 같은 거랑은 또 다른 얘기다. 일종의 사회적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내가 이런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일은, 여기 사람들의 사회적 맥락을 따라가기 위한 노력들이었다. 식습관을 완전히 바꾸는 노력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많은 음식들을 도전하며 그 맛의 포인트를 알아가려고 했다. 또 오토바이를 사서 도로의 흐름을 따라 함께 유유히 도심을 휘젓고 다녔으며, 길이 막혀도 화내지 않는 법,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추고 기다리거나 직진하는 상대방 차량들 사이로 과감히 좌회전 하는 법 등을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맥락속에 발 맞춰 가려는 노력들을 했다. 문화적인 동질감을 위해 인기 차트를 함께 듣고, 마음에 드는 노래는 뜻도 모르지만 가사를 외워 불러보기도 하고, 유명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한 개그맨의 영상을 보며 함께 웃기도 했다. 결국 이겨낼 수 있는 부분이지만, 상당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한국에서는 숨쉬듯 진행되던 생활이던 것들이, 해외에 나오는 순간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하는 부담있는 하나의 태스크가 될 수 있다.


 업무적으로 어려운 점들은 말도 할 것 없이 많다. 법과 규제에 대한 공감대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것 부터, 한국 본사의 기준에 맞춘 관리 노하우를 전파하고 정착시키는 일, 또 한국에서 수없이 요구하는 리포트들에 대응해야 하는 일과 동시에 현장에서 발생하는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일 등등 말이다. 대부분의 주재원들의 업무적인 제 1 불만사항이 바로 '한국 본사에서의 자료 요청' 이다. 그만 좀 요청해라,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와서 보든지. 라고 하고 싶다만, 만리타향 한국에서 여길 관리해야 하는 그들의 입장도 이해가 안되는 바는 아니니 이쯤 하자. 아무튼 업무와 관련된 애로상항들은 아마도 따로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지인들의 특성이나 주재원으로서 일하는 직무적인 특성에 대한 이야기들은 나중에 다시 정리해 보겠다. 오늘은 주재원으로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는게 좋겠다.


 정리해 보자면,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경제적 혜택이 증가하는 만큼, 본인이 감수해야할 일들이 상당히 많아진다. 업무강도와 스트레스도 그렇고, 생활에 있어서도 그렇다. 그럼에도 염두에 두어 볼 만한 객관적인 사실들이 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주재원으로 파견 나온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현지에 머물기 위해 다른 사업체로 이직을 하거나 자기 사업을 시작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한창 불고 있는 해외 이민 열풍(까지는 아니지.. 그냥 관심 이라고 해 두자)과 크게 맥락이 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해외 어디가나, 한국식 생활을 하기에 엄청나게 불편하거나 하지는 않을 수 있다. 글로벌 물류가 워낙 잘 되어 있어 한국 상품들을 구하기 크게 어렵지 않은 경우도 많고, 한인 사회가 또 어딜가나 어느정도는 자리가 잡혀 있다. 완전히 새로운 개척지로 가는 경우는 제외해야겠다. 여튼 그런 이유와 함께 해외 생활을 통해 가질 수 있는 한국식 강박관념들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몇살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느정도 집에 살아야 하고, 어떤 차를 몰아야 하는 등의 이상한 사고방식에서는 아무래도 훨씬 자유로울 수 있다. (현지 한인사회에 너무 깊이 발 담그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까딱하다가는 좁은 한인사회에서 더 큰 속박을 받을 수도 있으니, 이건 알아서 조심하자)


그래서, 주재원 할 수 있으면 한 번 더 나갈래?


 내 경우엔, 와이낫!


 새로운 도전을 즐기고,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는걸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회사생활에 이처럼 좋은 기회는 다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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