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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l 17. 2024

아내는 안해다

   마침 다음날이 쉬는 날이고 해서,

   마침 큰딸은 계절 학기 들으러 학교 갔다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늦게 들어온다 해서, 

   마침 막내딸도 야자하고 헬스장 운동까지 하고 오면 한두 시간 인기척 걱정은 안 해도 될 성싶어서,

   마침 신랑 도시락 싸주겠답시고 그 잠보가 일요일 아침잠까지 반납하고 김밥을 싼 기특한 짓이 기억에 생생해서,

   마침 평소에는 목석같더니만 샤워하는 뒤태가 그날따라 어찌나 곱고 요염한지,

   마침 춘정이 동하기도 해서 마누라 가슴을 슬쩍 건드렸더니, 



아내는 안해다 

               오탁번


​토박이말사전에서 어원을 찾아보면

'아내'는 집안에 있는 해라서

'안해' 란다

과연 그럴까?

화장실에서 큰거하고 나서

화장지 다 떨어졌을 때

화장지 달라면서

소리쳐 부를 수 있는 사람,

틀니 빼놓은 물컵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생일 선물 사줘도

눈꼽만큼도 좋아하지 않는

그냥 그런 사람.

있어도 되고

없으면 더 좋을 그런 사람인데

집안에 있는 해라고?

천만의 말씀!

어쩌다 젊은 시절 떠올라

이불 속에서 슬쩍 건드리면

─ 안 해!

하품 섞어 내뱉는 내 아내!



   시인 말이 맞다. 아내는 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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