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2/30은 막내딸 고등학교 졸업식이라네. 연말에 졸업식이 별스럽긴 하네만 연말 다음 연초가 바로 이어지다 보니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점으로는 제격이라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싶으이. 이왕 연말연시라는 변곡점에 섰으니 그 핑계 삼아 자네에게 오랜만에 연통이나 넣을까 하네. 꼼수가 제법 늘었지?
하찮긴 하지만 내가 매일 써서 올리는 글을 자네가 꾸준히 봐왔다면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네. 연말연초만 되었다 하면 혼자 읽기가 아쉬워 원문을 그대로 옮긴 글을 말일세. 2018년 이래로 습관이 되어 버렸으니 벌써 8년째 이어지고 있다네. 바로 김영민 교수가 쓴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일세. 혹 금시초문이라면 내가 어제 게시한 글을 보면 된다네. 올해도 어김없이 꺼내 읽은 뒤 혼자 읽기 아쉬워 올렸으니까.
읽은 김에 그가 쓴 책도 내처 꺼내 훑어봤네. 여전히 위력적이었네. 그 교수 글은 사람을 잡아끄는 마력이 있네. 특히 느닷없는 허무감에 빠져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축 처져 있을 때 읽으면 특효약이라네. 말하자면 그 망할 놈의 덧없음을 일거에 잠재우는 비법서라고나 할까.
인터넷을 뒤져 그 양반 면상을 보면 전형적인 교수상으로 평생 학자연하다 죽을 타입이지. 고루하다, 고리타분하다, 진부하다 따위 꼰대스러운 형용사란 형용사를 다 갖다 붙인들 그 양반을 설명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게 솔직한 내 인상평이네.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극적 반전이 대단한 법이라네. 그는 사색이 깊은 사람일세. 웅숭깊은 사색의 결과물로 나온 글은 희한하게도 지극히 일상적이네. 그렇다고 글이 부박하지도 않아. 오히려 익살스러운 일상성에서 빚어내는 고상함이랄지 심오함이 독자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갈겨 버린다네. 그야말로 신공이 아닐 수 없네.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어크로스, 2018)라는 책에서 두 대목을 뽑아 소개할까 하네. 연관이 전혀 없어 보이나 견강부회가 아주 지나치지만은 않게 꿰어 맞춰진다네. 우선 모의국회 공연을 개최한 정치외교학과생들을 위한 격려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네.
많은 것들이 덧없이 사라져가는 이 세상에서, 연애 지속 기간도 해가 다르게 짧아져가는 이 덧없는 세상에서, 어떤 것을 부여잡고 지켜나가서 하나의 전통으로 지속시켰다는 것. 역시 멋지고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82쪽)
느닷없다 배척하지 말고 '전통'이란 단어에 집중하시게. 다음은 2월 졸업생들에게 전하는 축하문 중 한 대목이네.
여러분들에게는 창창한 미래가 있고, 진정한 평가의 시간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찾아옵니다. 그러면 미래에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의 삶을 평가할 때 적용되어야 할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때 평가 기준은,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 얼마나 사회적 명예를 누렸느냐, 누가 오래 살았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보다 근본적인 평가 기준은, 누가 좋은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것이 좋은 이야기일까요? 좋은 이야기의 조건은 너무도 큰 주제라서 오늘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좋은 등장인물이 필요하겠지요. (같은 책, 115쪽)
살다 보니 많은 것들이 사라지는 걸 목도하고 나 역시 그것들처럼 한 줄기 바람 되어 사라질 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에 숙연해지네. memento mori. 인간이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숙명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인생의 맥락을 게걸스럽게 추구하려고 무지 애쓰는 중이긴 하네. 그러자니 교수 말마따나 오래도록 이어져야 할 양식, 즉 전통은 필수적이라고 절감하고.
여기서 중요하게 짚어야 할 점은, 설령 지구를 지키는 슈퍼맨이라고 할지라도 전통을 독자적으로는 결코 창출해내지는 못한다는 것일세. 정해진 때랄 게 없이 어찌어찌 하다 보니 분기에 한 번은 꼭 의기투합하던 그 시절 그들이 있었다네. 그 모임에 대해 개개인이 어떤 소회를 품고 있는지는 직접적으로 물어보지 않아 알 수가 없지만 최소한 나는 사람 사이 관계란 무엇인지 그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켜켜이 쌓아올렸던 찬란했던 시절이었다네. 거창할 것 없는 저녁 식사에 대폿잔이나 홀짝거리다 막차 끊길까 허둥지둥 귀가를 서두르기 일쑤였지만 그런 장면조차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김 교수 표현을 그래도 옮기자면 '어떤 것을 부여잡고 지켜나가서 하나의 전통으로 지속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덕에 인생의 허무 따위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전혀 없었다네. 세월이 흘러 비록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격차가 눈에 띌 정도로 벌어지기는 했지만, 모임의 최종적인 지향점인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구성원 모두의 합심 덕에 그들 모두 '좋은 등장인물'로 진화했음은 주목할 만하다네. 하지만 모임 호스트 격인 그 중 한 녀석이 일찍 세상을 하직해 버리자 그 좋던 모임이 가악중에 퇴락한 과거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통탄스럽기 그지없네.
참으로 속절없는 세월일세.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의 침식은 거침이 없구나. 어느덧 내 주변은 좋은 전통과 좋은 등장인물이 사라진 박토로 변해가는 성싶고 맥락 끊겨 조각조각 단절된 일상을 비집고 들어오는 덧없음은 의외로 체류가 길어질 듯싶으이. 하여 자네에게 모처럼 보내는 연통은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었으니 면구스러울 따름이네. 그럼에도 이 말만은 꼭 전하고 싶네. 혹시 자네와 내가 우리들만의 유구한 전통과 서로에게 좋은 등장인물이 될 수 있도록, 지금까지 잘해왔지만 다가올 새해, 그 다음해, 그 다다음해 ··· 면면히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는 간절한 부탁. 이것을 속되게 표현하자면, 부디 올해는 꼭 서로의 무릎을 맞대고 막걸리 잔을 부딪치며 진하게 회포를 풀어보면 어떻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