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네 이발소

3. 남자 요양보호사

by 김대일

(모든 것이 허구임을 못박는다)


오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매달 첫째 주 토요일 개시 손님으로 통한다. 그날이면 오후 7시 <김 씨네 이발소> 가 열리기만을 기다리며 가게 앞을 서성이기 때문이다. 이발의자에 앉히고 커트보를 두른 후 김 씨는 으레 구 밀리미터짜리 덧날을 들어 바리캉에 꽂고는 그 남자의 머리에 댄다. 그 남자는 눈을 감은 채 잠자코 있다. 그 장면은 마치 둘만이 치르는 무언의 의식같다. 그런데, 오늘은 어째 심상찮다. 바리캉을 드는 김 씨를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주문을 하면서.

- 밀지 말고 골라만 주세요. 더이상 머리를 밀 필요가 없어요.

그 남자가 <김 씨네 이발소>를 처음 찾았던 날도 일 년 전 어떤 달의 첫째 주 토요일 오후 7시였다. 김 씨가 그날을 똑똑히 기억하는 건 그 남자의 행색이, 아니 그 남자의 머리가 참으로 기이해서였다. 급격한 탈모로 고민 많은 이들이 즐겨 쓰는 가발은 두상과 잘 어울려야 쓰는 목적에 부합한다. 길을 걷다가 머리 스타일이 왠지 어색해 보이는 사람은 십중팔구 가발을 덮어쓴 사람이다. 그렇게 티가 많이 나는 사람은 그저 '탈모가 창피해 이렇게 쓰고 다닙니다'를 홍보하려고 두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발을 머리 위에 얹고 다니는 꼴밖에 안 된다. 그러니 제대로 된 가발을 구입하자면 가발 전문업체를 신중하게 골라 머리 상태 및 형태를 감안해 당사자한테 제격인 가발을 '맞추는' 다리품을 팔아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김 씨가 그 남자를 보자마자 머리가 가발임을 금세 알아챘다. 꼭 노련한 이발사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보면 딱 알고도 남았다. 가발 쓴 머리가 그렇게 안 어울리기도 쉽지 않았으니까. 원래 머리숱이 풍성한데 그 위에다 웨이브까지 진 가체를 또 얹은 꼴이 가관이 아니고 뭐란담? '이 사람 정체가 도대체 뭐야?' 아연해하는 김 씨 앞에서 그 남자 가발을 벗더니,

- 가발에 어울리게 깎아주세요.

우울하게 말했다. 구 밀리미터 덧날을 꽂아 밀면 가발을 쓰더라도 못 봐 줄 정도는 아닐 것 같다고 했더니 그리 해달랬다.
기구한 사연이라도 있나 싶어 김 씨가,

- 기술자 소리 듣는 이발사로서 선생님 가발은 어째 영 그래요. 굳이 써야 하는 이유가 있으신지…

조심스레 물었다. 거울에 비친 그 남자가 한숨을 푹 쉬더니,

- 나는 요양보호삽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집을 방문해 수발 들고 가사 활동 도와주는 사람 말입니다.
- 남자도 합니까?
- 여자 어르신을 남자 요양보호사가 맡을 순 없지만 남자 어르신은 됩니다. 남자 요양보호사만 요구하는 분들도 계시구요.
- 선생님도 남자 어르신을 돌보는 중이시군요?
- 예. 나는 치매간병인 자격까지 있어서 주로 치매노인을 돌봅니다. 이리 말하면 장사치 같지만, 같은 요양보호사라도 치매간병인 자격을 갖춘 사람 임금을 더 높게 쳐줘요.
- 고생하는 만큼 응당한 대우를 받는 건 당연하죠. 일 마치고 귀가하시던 중?
- 오늘부터 내일까지 휴가라서요.
- 휴가요?
- 난 전일제 재택 요양보호사예요. 어르신 집에서 기거하면서 돌봅니다. 한 달에 두 번, 첫째와 셋째 주 토요일에 휴가를 받아요.
- 아, 휴가 받은 김에 이발하러 오셨구나.
- 그렇긴 한데…

경증에서 중증으로 넘어가는 중인 팔십대 치매 할아버지 자택에서 기거하면서 돌보는 중이었다. 할머니는 이태 전에 돌아가셨고 노인의 외동아들 부부는 따로 나가 살지만 한 달의 두 번은 꼭 들러서 자고 갔다. 그날이 그 남자의 휴가일이다. 치매 노인을 돌보고 집안의 궂은 일까지 도맡는 조건으로 보수는 남들 이상이었다. 그럭저럭 지낼 만했지만 할아버지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진다는 게 문제였다. 거동에 불편함이 없고 보통사람 못지않은 정신머리였던 처음과 달리 병세가 점점 악화되었다. 가악중에 먼저 떠난 할머니나 초등학교 다니는 손자로 자기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그보다는 그 남자를 친동생이라면서 대할 때가 제일 황당하면서 난감했다. 몇십 년 전에 헤어져 생사를 알 길 없는 남동생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안방에 놓여진 할아버지 가발을 자꾸 써보라고 하면 당장이라도 그 집을 뛰쳐 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과거와 현실 사이를 오락가락하던 할아버지는 그 남자를 요양보호사가 아닌 친동생으로 오롯이 대했다. 할아버지의 착각이 간병하는 데 차라리 용이하다고 판단한 그 남자는 그러려니 반 포기해 버렸다. 토요일도 아닌 평일 저녁, 할아버지 아들이 할 말이 있다며 찾아왔다.

-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안 듣는 게 좋겠다는 예감이었지만 무시할 수도 없었다.

- 삼촌이 행방불명된 지 삼십 년도 넘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삼촌을 마지막으로 봤으니까요. 아버지와 삼촌은 터울이 제법 많이 나지만 두 사람을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곧이들을 만큼 많이 닮았었지요. 외모나 덩치뿐 아니라 행동거지까지. 우애도 참 깊었더랬죠.

잠시 숨을 고른 후 말을 이어가는 아들.

- 혹시 아버지가 가발을 써보라고 하지 않던가요? 아버지와 삼촌은 타고난 곱슬머립니다. 연세가 들면서 탈모가 심해지자 아버지는 가발을 맞췄습니다. 퍼머 기를 가미한 가발이었지요. 건강이 안 좋은 뒤로 출타할 일이 없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지만 말입니다. 안방 선반 위 두상 모형에 놓인 가발 보셨지요?
아버지께는 쉬쉬했지만 선생님께는 알려 드려야겠습니다. 삼촌은 행방불명된 게 아니고 병사하셨습니다. 사망 소식은 아버지께서 치매 판정을 받은 직후에 알았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전부터 삼촌 가족들과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아버지 사업이 번창할 때 곁에서 돕던 삼촌이 자금을 유용한 뒤 잠적했더랬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던 삼촌이었지만 끝내 아버지께 사죄하지 못한 채 불귀의 객으로 하직하셨지요. 이 사실을 아버지께 차마 말씀드릴 수가 없었어요. 치매인 아버지가 받아들일지 의문이었고 삼촌의 죽음이 행여 아버지 신병에 해롭지나 않을까 두려워서요.
선생님, 저는 얼마 안 남은 아버지 여생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뭐든 마다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발 부탁이니 안방에 있는 가발을 써주십시오. 그래서 제 삼촌이 되어 주십시오. 그토록 우애가 깊었지만 배신감에 증오했던 두 형제가 화해할 수 있도록, 아니 아버지 심중에 찬 울화가 가시고 편안한 영면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발 부탁합니다 선생님.

머리숱이 유별나게 많은 그 남자는 한 달에 한 번 <김 씨네 이발소>엘 꼭 들러 머리를 밀었다. 그래야 가발을 쓸 수 있었으니까. 그런 그 남자가 오늘은 영 엉뚱한 주문을 해 김 씨를 당황하게 만든 것이다.

- 신상에 변화라도…?
- 있었지요. 내가 아니고 할아버지한테.
- 돌아가시기라도 했나요?
- 예, 돌아가셨어요. 엊그제.

뇌졸중을 앓은 적이 있던 할아버지가 하루는 집에서 뒤로 크게 나자빠졌다. 아들 내외가 잠시 한눈을 판 새였다. 병원에서는 척추뼈 골절로 인한 하지 마비 진단을 냈다. 응급 수술을 해야했지만 연로한데다 기저질환으로 인한 수술 후 합병증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혀 거동하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보다 못한 아들은 수술을 결정했다. 열 시간에 걸친 큰 수술을 겨우 끝내고 의식이 깨어나지 않은 할아버지는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절망적이었다. 임종을 앞두고 희미하게 의식이 돌아왔을 무렵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그 남자를 데려 오라고 했다. 가발을 쓴 그 남자가 죽음의 강을 건너려는 할아버지와 대면하자 할아버지는 그 남자에게 유언처럼 말했다.

- 자네가 기중이어서 고마웠네.

기중은 기백인 할아버지의 동생 이름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들르는 그 남자는 <김 씨네 이발소> 단골이다. 올 때가 됐는데 손가락을
꼽던 차에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남자. 김 씨는 이번엔 또 뭡니까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 남자 눈썹이 앵그리버드의 그것과 똑같아서.

- 돌아가신 아버지와 똑 닮았다네요, 장비 같은 눈썹을 하면. 그러니 어쩌겠어요 문신이라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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