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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셀러 Apr 05. 2021

천 번을 넘어져도
나는 워킹맘입니다.

"위험한 것에 과감히 뛰어드는 것만이 용기는 아니다.

  뛰어들고 싶은 용기를 외면하고,

  묵묵히 나의 길을 가는 것도 용기다."


 이 구절은 드라마 <미생>에서 지독한 워커홀릭이자 회사생활의 바닥까지 떨지며 힘든 모습을 보여준 오상식 과장의 명대사다. 드라마가 방연 된 7년 전 첫째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둘째는 유치원에 입학하며 그야말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던 시절이었다. 매일 일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없이 고민할 때 봤던 <미생>이라는 드라마는 나를 지금까지 버티게 해 준 인생 드라마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 당시 나는 작은 유아동 전집 서점에서 상담과 영업을 담당했다. 오전 9시에 아이들을 부랴부랴 등원시키고 오후 5시까지 육아와 병행하며 일하기에 보수는 적지만 근무시간은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두 아이들이 동시에 초등학교, 유치원을 입학하며 적응하는 기간이 문제였다.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시키는 엄마는 유치원 다닐 때와는 달리 아이만큼 엄마도 긴장을 한다. 엄마가 보기에 아이는 아직 어린 아기 같은데 학교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다는 사실에 걱정이 많아진다. 학교에 챙겨가야 하는 준비물부터 학습 습관, 생활 규칙 등에 적응하며 학교 생활의 첫 단추를 끼우는 시기가 초등학교 입학 시기인 것이다. 워킹맘이 아이가 어릴 때에는 회사를 잘 다니다가 오히려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며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다행히 일하는 서점이 멀지는 않았다. 다만 첫째 아이가 낯을 많이 가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성향이라 3월에 입학한 후 10번도 넘게 담임 선생님께 호출이 왔다. 아이가 배가 많이 아프다고 하고 심지어 구토를 하며 힘들어한다고 하셔서 일하다 말고 달려간 적도 많았다. 병원에 가보니 아이가 '새 학기 증후군'이라는 질병이라고 하며 가급적 엄마가 등하교할 때 함께 해주고 아이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처방(?)이 있었다.

 첫째뿐 아니라 둘째도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큰 규모의 유치원으로 옮기며 2~3개월 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린이집 다닐 때에는 바지에 실수한 적이 없던 아이가 입학 후 한 달 동안 수시로 대소변을 바지에 실수하며 불안한 증상을 보였다. 게다가 둘째는 손가락을 빨던 습관이 있었는데 힘들게 고쳤던 습관이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두 아이 모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든 시기였고, 엄마인 나는 매일 일을 계속해야 할까 말까에 대한 고민을 수없이 반복하며 일했던 시기이다.

 

 나는 서점에서 상담을 하기도 했지만 출장 상담도 함께 했다. 소나기가 퍼붓던 어느 날 고객이 아이 책을 상담하고 싶다며 전화가 와서 바로 알려준 주소로 상담을 갔다. 고객의 집은 1시간 정도 가야 하는 먼 거리였다.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까지 돌아오기 빠듯할 것 같아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함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돕고 싶은 마음에 내 아이가 걱정되었지만 다양한 상담 자료를 챙겨 부지런히 고객의 집으로 출발했다. 

 고객의 집 앞에 도착해 벨을 눌렀지만 응답이 없었다. 전화를 여러 번 했지만 받지 않았다. 사전에 약속 변경에 대한 연락도 없었다. 이상해서 문자를 보내니 그제야 답장이 왔다. 

"영사님(영업사원을 줄여서 엄마들이 부르는 말이다) 오기 전에 옆집 언니와 통화했는데 아는 분이 책을 저렴하게 해 준다고 해서 상담을 안 해도 될 것 같아요."라는 내용이었다. 문자를 본 후 바로 다시 전화를 했지만 역시 전화는 받지 않았다. 


 비가 억수같이 퍼부어서 신발은 다 젖고, 첫째 아이에게 울며 전화가 왔다. 오늘도 학교에서 배가 많이 아팠지만 꾹 참고 집에 왔는데 엄마가 없으니 슬프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순간 그 고객에게 너무 화가 나서 '고객 집으로 올라가 문 두드리고 나오라며 따질까?'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시간에 빨리 가서 내 아이를 챙겨야겠다는 생각으로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유아동 도서 영업뿐만 아니라 보험 영업을 할 때에는 더 깊은 상처를 감당하며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할 때도 많았다. 고객의 거리가 먼 곳으로 상담 가서 거절받는 것은 기본이다. 고객을 위해 많은 시간을 쏟고 정성을 담아 여러 차례 상담을 진행한 후 계약까지 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계약을 취소하는 경우도 자주 일어난다. '내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지만 정작 아이들도 돌보지 못하며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할까?'라고 생각하며 멘탈이 바닥까지 떨어질 때가 많았다.

 영업이라는 직업 특성상 수많은 거절과 따가운 시선을 극복하며 일해야 할 때가 다른 일보다 자주 일어난다. 영업이라는 일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기도 하지만 고객이 상담을 원하는 시간에 맞추려면 밤늦은 시간이나 주말에도 일해야 할 때도 많다. 고객이 멀리서 상담을 요청해도 상담을 가야 한다. 모든 고객이 계약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많은 고객을 상담해야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늘 상담 기회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드라마 <미생>을 보면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상사맨들의 영업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영업에 대한 스토리도 무척이나 공감이 되지만 극 중에서 보여준 워킹맘인 선차장의 역할도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업무 역량이 뛰어나지만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은 대한민국 워킹맘의 고충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했다. 

 드라마 장면 중 매일 아침 바쁘게 아이를 등원시키며 아이와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자신을 발견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릴 때에는 대한민국 워킹맘들도 함께 울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워킹맘들은 항상 죄인처럼 회사와 아이에게 미안해하며 지내야 할 때가 많다. 나 역시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수없이 눈물을 흘리고 후회할 때도 많았다. 앞으로도 위기는 또 찾아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국하고 워킹맘을 살아가는 이유가 내 마음속에는 명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영업을 하며 상처를 받고 수많은 거절을 당하면서도 항상 생각한 것이 있다. '만약 내가 일을 하지 않았다면 과연 행복할까?'라는 생각이다. 물론 육아에 전념하며 아이를 잘 키우고 살림을 잘 해내는 일 또한 엄마로서 훌륭한 역할을 해 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일을 하는 동안 분명히 성장하고 있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와 가족을 위해 헛되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일에 더 집중했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며 이제는 엄마의 손길보다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기를 원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에는 '언제쯤 자유로운 시간이 올까?' 하고 먼 일처럼 느껴졌지만 요즘은 '만약 내가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허무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워킹맘의 일상이 고되고 멘탈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도 많지만 그런 시간들이 쌓여 내가 더 성장하며 단단해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일하고 있는 워킹맘을 뜨겁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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