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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셀러 Mar 31. 2021

남편이 퇴사하며 변화하는 것들

 최근 MBTI(일상 생활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지표) 검사를 하는 것이 유행이다. MBTI검사를 하는 이유는 나에 대해 알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직장이나 가족 간의 소통 문제를 보다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는 회사에서 MBTI검사를 한 적이 있다. 결과를 보니 신기하게 잘 맞아서 남편도 바로 검사를 해봤다. 결과를 보니 우리는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ENTJ (대담한 통솔자, 타고난 지도자형)인 반면에 남편은 ISFP(호기심 많은 예술가, 신중하며 거절을 못하는 편)로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정반대의 성향이어서 그런지 때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의견 충돌이 일어날 때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남편의 회사에 대한 생각이었다.     


 남편은 케이블 방송국의 PD였다. 대학 시절 행정학과를 졸업 한 후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겠다며 고시촌에서 2년간 행정고시 준비를 했다고 한다. 본인의 생각보다는 부모님의 의견을 따르며 직업을 선택하려고 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고시준비를 포기하고 본인이 진짜 하고 싶은 PD가 되기로 결심했고, 1년동안 열심히 공부하여 PD가 되었다고 한다. 공중파 방송국은 아니었지만 본인이 간절히 원했던 일이었기에 행복하게 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점점 성장하며 안정적으로 15년간 일해오던 남편이 어느 날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했다. 본인은 원하지 않았지만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는 것이다. 집에서 5시간 넘는 거리에 있는 경상도 포항이라는 낯선 곳으로 남편은 떠나야 했다. 발령이 나고 일주일 뒤 남편은 차에 짐을 가득 싣고 포항으로 떠났다. 주변 사람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주말부부'라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평소 남편과 대화도 많이 하고 서로 의지하며 친구처럼 지냈던 우리 부부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시간이었다. 남편이 떠나기 전날이었던 2017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는 우리 가족 생애 가장 슬픈 날로 기억되었다.   

  

 남편의 MBTI성향(ISFP)이 보여주듯 그는 안정적이고 신중한 사람이다.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내린 결정에 대해 불만이 많았지만 바로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방으로 떠나 힘든 시간이지만 나름 회사에 적응하며 지내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며 나는 늘 안타까웠다. 그는 일단 1년을 버텨보겠다고 말했고, 한 주도 빠짐없이 매주 집을 오가며 KTX열차 안에서 수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유독 아빠와 친하게 지낸 두 딸들은 매주 일요일 아침부터 우울모드로 변했다. 1년동안 이산가족생활을 하며 남편은 결국 아이들을 보며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가족과 매주 생이별을 하며 살아야 하는건지 모르겠어. 더 이상 지방으로 직장을 다닌것은 비젼이 없다고 생각해."라고 그가 말했다.     

딱 1년을 버틴 후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포항으로 발령이 나기 전 2017년부터 나는 보험회사 Sales Manager로 일하기 시작했다. 출산 후 10년정도 파트 타임으로만 일을 하다가 공식적인 회사 프로젝트에 합격한 후 전문직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결혼 전 일했던 교육 분야의 커리어를 쌓으며 일하는 것은 정말 즐거웠다. 하지만 지방으로 남편이 떠난 뒤 누구의 도움 없이 독박육아와 일을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결국 남편이 회사를 그만둔 순간부터 나는 '진짜 가장 워킹맘'이 된 것이다.     


 남편이 15년간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어려운 선택이었고 우리에게는 위기였다. 하지만 위기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15년간 고생해온 남편에게 '안식년'을 선물해주기로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가장으로 일을 해보니 남편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남편에게 그동안 고생했던 시간을 위로받고 여유를 가지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깔끔한 성격 탓에 집안일을 나보다 훨씬 잘했다. 퇴근 후 집에 오면 가사 돌보미가 다녀간 것처럼 항상 집이 깨끗했다. 요리만큼은 힘들어했던 남편이 요리실력까지 나날이 늘어가며 매일 저녁 나의 퇴근길을 설레이게했다. 남편의 살림은 능숙해졌지만 가장 힘들어했던 점은 두 딸의 육아였다. 한창 외모에 민감해지는 사춘기 아이들의 머리를 묶어주고 옷을 챙겨주는 일은 남편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아이들 학원 스케줄부터 학교 상담, 그리고 병원 가는 일까지 3개월정도 모든 것을 도맡아 해보더니 어느날 남편이 고백하듯 말했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제서야 너를 이해 하게 되어 미안해. 아이들이 어렸던 아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정말 고생많았고, 앞으로는 내가 더 잘하고 노력할께."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남편이 워킹맘의 마음을 이해한것처럼 남편 역시 매일 아침 지옥철에 시달리며 출퇴근길이 힘들었을 것이다. 매일 회사 생활 하며 괴롭고 화가 치밀어올라도 꾹 참으며 일했던 그를 생각하니 나 역시 남편에게 미안함과 가장의 책임감을 공감할 수 있었다.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가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지인들에게 말하면 특히 비슷한 또래의 남성들이 가장 부러워했다. 본인도 와이프보다 살림도 잘 할 수 있다며 '안식년'을 가져본다는 것 자체가 꿈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가장 행복한 순간은 '평일 아침, 다른 사람 출근하느라 정신없을 때 여유롭게 운동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지금까지 말한다.    

      

 나는 가능하다면 짧은 기간이라도 남편과 아내가 역할을 바꿔 지내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러한 시간들을 보내고 돌아보니 부부가 서로 깊게 이해하고 단단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도 아빠와 함께 하며 선물같은 추억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언제나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르게 지내보는 것은 더 불안할 수 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이 있듯이 한 가정에 위기가 닥쳐와도 부부가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더 단단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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