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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솔 Jun 05. 2024

사무실

일기

나는 겁이 많다. 만약에 이런 일이 생기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대해서 웬만하면 위험 감수를 피하는 편이다. 한번은 서귀포에서 휴가를 보내는데 산책을 하다가 어떤 산책로의 입구가 보였다. 녹음이 우거져 보여서 걸으면 좋은 길이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저 길을 혼자 걷다가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어쩌지? 결국 나는 그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할 수 있지만.. 그러게.. 그냥 내가 겁이 많으니 누릴 수 있는 것도 줄어드는 것이지 생각할 뿐이다.


그런 날이 있다. 이유 없이 쓸쓸한 날이.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들이 가족과 연인과 함께 있었다. 그냥 어떤 날은 그런가 보다 하는데 어제는 그게 문득 내가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서 통화도 하고 쉬기도 하고 일도 하다가 이 쓸쓸함을 어찌할까 하다가 같이 일도 하고 즐거운 대화도 나누는 분에게 연락했다. 조금 멀리 있다길래 드라이브하며 대화나 할까 하고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저녁은 먹었겠지? 나는 늦은 저녁을 먹어야지. 출발하려고 나서는데 시간은 밤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지금 쓰고 있는 사무실은 2층에 있다. 처음 사무실은 지하였는데, 2층에 사무실을 구해서 옮기면서 지상으로 올라왔다며 기뻐했다. 사무실 사용에 불편함도 있다. 우리 사무실 문은 번호키자물쇠를 사용해서 편하지만, 1층 입구에는 셔터 문이 있다. 늦게 퇴근할 때면 셔터 문을 잠가두는 때가 있는데 그 이유는 지하에 단란주점에 있어서 술취한 사람이 건물 안으로 올라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셔터문이 잠겨 있으면 안에서 셔터 사이로 손을 비집어 내밀어서 열쇠로 바깥에서 잠군 자물쇠를 풀어야 한다. 이 사무실에 대한 최대의 불편함은 나 개인적으로는 이 지점이었다. 물론 늦게 퇴근하지 않으면 그럴 일은 없지만.


2층 한 층에 네 개의 사무실이 있고, 사무실 별로 문이 있고, 2층 전체의 현관문이 있다. 어제는 사무실 문을 나서서 2층 전체의 현관문을 여는데 밖에 어떤 할아버지가 서계셨다. 뭔가를 중얼거리면서 문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순간 겁이 났다. 빨리 계단을 내려가야지 생각하는데 할아버지가 뭐라고 중얼거리며 말을 했다. 나는 순간 다리가 겁이 나서 계단을 두 계단씩 성큼 뛰었다. 뛰는데 다리가 후덜 거렸다. 할아버지가 쫓아오면 어쩌지? 제대로 자세를 못잡고 뛰어내려가서인지, 발을 딛는데 ‘빠직’ 하는 느낌이 들었다. 종아리가 쥐가 난 느낌의 다섯배 정도 되는 통증이 밀려오며 발을 디디지 못할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쫓아오면 어쩌지? 두려움과 함께 걷지를 못하겠으니 도망갈 수도 없겠다 생각했다. 어찌어찌 1층으로 내려왔는데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도저히 걸어갈 수 없을 것 같아서 1층에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앉아서 종아리를 살펴봤다. 한편으로는 너무 아프고 한편으로는 할아버지가 쫓아오나 겁이 났다. 편의점 주인분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조금 있다 가겠다고 했다. 주인분은 그 할아버지가 3층에 산다고 했다. 조금 있다가 건물주 분도 왔다. 편의점 주인분이 불렀다. 건물주 분은 그 3층에 사는 할아버지에게 셔터문 닫는 것을 하게 한다며, 셔터 문을 내리러 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행동이 느리고 사람을 쳐다보는 것이 좀 이상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종아리가 너무 아팠다. 운전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택시를 타고 제대병원 응급실에 갔다. 접수하고 환자 분류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하는데 파업 때문에 진료까지 한시간 이상 걸릴 거라고 했다. 나는 통증도 통증이지만, 뭔가 빨리 대처해야 하는 것이 있는지 여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니까 기다리겠다고 했다. 응급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기다리는데 한 의사가 왔다. 뼈가 다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파업때문에 지금 할 수 있는게 뼈 부러졌는지를 보는 엑스레이 찍는 것만 가능하다고 했다. 내일 정형외과에 가보는 편이 낫겠다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다음날이 되어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초음파를 했더니 근육이 많이 찢어졌다고 했다. 초반 일주일이 중요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근육이 붙는 데는 삼개월 정도가 걸리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근육이 붙고 나면 원래처럼 걸을 수 있으려나? 달리기를 할 수 있으려나..?


어제 그 순간을 떠올렸다. 그 할아버지를 보고 놀랐을 때, 계단을 두 계단이 아니라 한 계단씩만 내려가면 됐었는데. 그 할아버지가 쫓아온다 한들 나에게 어찌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겁을 내가지고..


뭐가 문제일까? 늦게 사무실은 나선 것? 건물에 누가 사는지 미리 알고 있지 못했던 것? 내가 겁이 많은 것? 겁을 낸 것? 겁이 났을 때 당황한 것? 두 계단씩 내려간 것? 늦게 일해도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사무실을 구하지 않은 것?


창업한 지 2년 8개월째를 지나고 있다. 요즘 어때요? 라는 질문에, 살아는 있습니다. 살아만 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한다. 나까지 직원 네명. 어찌어찌 월급 주며 버티고 있는 것이 나도 신기하다. 그래도 에어컨을 좀 더 큰 평수 용으로 산다거다 더 안전하게 여겨지는 사무실을 구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아직은 부담스러운 상태이다.


이렇게 다치고 보니, 수습을 해야 하는 일들이 뭐가 있나 생각도 하게 되지만, 문을 열고 밖에 나오면서 당황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직원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아찔한 생각도 든다.


- 2020년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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