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쿠, 덜렁아! 어딜 또 부딪혔냐?”
집 안에서 돌아다닐 때도 여기저기 모서리에 툭툭 받혀 멍장구가 떠날 일이 없으니, 어릴 때부터 엄마며 아빠며 온 가족이 절 ‘덜렁이’라고 부르셨어요.
“여자애가 이리 조심성이 없어서 어쩌누……. 천하의 털팔이 같으니!”
그렇습니다. 저는 덜렁이에 털팔입니다. 나이가 든 요즘도 혼자 툭툭 어딜 잘 부딪히니 여기저기 작은 멍자국들이 떠날 일이 없습니다.
이런 저에게 가끔 이탈리아 친구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한국인들은 다 너처럼 그래?”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혹시나 물이 새는 헐렁이 기질 제 성질 바가지가 밖에서도 새는 게 들켰나 싶어 묻습니다. 그런데 정말 의외의 대답이 돌아옵니다.
“한국인들은 너처럼 다 꼼꼼하냐구”
“뭐? 내가 꼼꼼해?”
도대체 뭐라는 건지……. 한국 친구들이 들으면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을 일입니다.
“넌 너무 정확해서 같이 일하기 힘들어. 완벽주의자!”
얼씨구, 이 친구들이 한 술을 더 뜹니다. 어서 이 오해를 풀어 줘야지요.
“한국인들이 다 나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난 전형적인 한국인이 아니야. 한국인들은 훨씬 더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정말 정확하다구!”
“뭐라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너보다 더 정확하다고?”
이탈리아 친구들은 깜짝 놀랍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릅니다. ‘뭐라고? 내가 정확해? 뭐 완벽주의자?’ 한국에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말이지요. ‘너희가 진짜 한국인들이랑 일을 안 해 봤구나!’
어릴 때부터 엄마가 검증을 해 주셨듯이, 저는 한국인 치고 너무 헐렁합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인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놀랍게도 몇몇 이탈리아 동료들에게 제가 일로 스트레스를 주나 봅니다. 가끔 그네들이 투덜대는 걸 보면요.
아! 문득 탁 하고 머리를 치는 하나의 생각이 있습니다.
‘아! 전 한국인이군요.’
제가 아무리 한국인 치고는 얼렁뚱땅에 털팔이 칠팔이 9단이라고 해도, 저는 한국인입니다.
그 많은 난리와 환란을 겪고도 각자의 자리에서 피땀 흘리며 무엇이든 정확하고 성실하게 노력한 한국인의 DNA가 이 헐렁이인 제 안에도 흐르고 있는 겁니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그리고 일어나고 있는 가슴 아프고 어지러운 일들이 2025년 새해에는 한국인의 곧은 기질과 지혜로 치유되고 정리되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사진: 대한민국 부산, 이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