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일이 있으면 한 번씩 찾아 듣는 노래입니다.
응원가처럼 듣고 있지만 철학적 의미로 분석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 선을 넘지 말라고” — 누가 그은 선인가요?
“그어 놓은 선을 넘어 저마다 삶을 향해 때론 원망도 하겠지 그 선을 먼저 넘지 말라고”
니체는 스스로 가치를 만드는 사람을 ‘위버멘쉬’라고 불렀습니다. 세상이 그어놓은 “여기까지”라는 선. 우리는 그걸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이 정도면 괜찮아, 이 이상은 무리야,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그런데 누군가 그 선을 넘으면 어떻게 될까요? “넌 왜 그래?” “튀지 마.” “원래는 안 그랬잖아.”원망이 들려옵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목소리들이요.
그래도 가사 속 주인공은 넘어갑니다. 자기 삶을 향해, 자기 법칙을 세우며. 그게 니체가 말한 ‘창조’입니다.
“한 발로 뛰어도” — 완전해야만 갈 수 있나요?
“부러진 것처럼 한 발로 뛰어도 난 나의 길을 갈 테니까”
완전한 상태가 되면 시작하겠다는 말, 우리 참 많이 하잖아요. 준비가 되면, 여유가 생기면, 상처가 아물면.
그런데 스토아 철학은 다르게 말합니다. “지금 이 상태로, 이 조건 그대로 가라.”부러진 발도 운명의 일부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그걸 안고 가는 겁니다.
니체는 이를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라고 불렀어요. 운명을 사랑하라. 심지어 고통까지도. 한 발로 뛰는 그 모습 자체가, 이미 용기입니다.
“다시는 나를 잃고 싶지 않아” — 나는 누구였나요?
“다시는 나를 잃고 싶지 않아 내 전부를 걸었으니까”
이 문장이 가장 마음에 남았습니다.
“나를 잃는다”는 건 뭘까요?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직원, 누군가의 기대. 그 역할들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희미해지는 순간입니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인간은 정해진 용도 없이 태어나,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라고요.
“전부를 걸었다”는 건 도박이 아니에요. 내 선택에 책임지겠다는, 나를 내가 정의하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이 가사는 각오처럼 들립니다.
이 노래가 주는 진짜 위로
“괜찮아, 잘 될 거야.”이 노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세상이 너를 부정하고, 네 다리가 부러질지라도, 네가 너로 서 있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끝은 결국 네 것이 된다.”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단단한 의지. 그게 이 노래가 건네는 위로입니다.
* 원고 내용과 이미지는 AI 도움으로 만들었습니다.
* 참고 영상. https://youtu.be/O9aQXFTbCDY?si=ez8SVEoJu3n6TFu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