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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 수첩 May 05. 2020

[황혜인] 기록하고, 기억하며, 공유하고, 까다롭게..

2018, 생생화화

기록하고기억하며공유하고까다롭게 질문하는 

작은 미국의 이야기     


사진은 현장의 기록이라 말하곤 한다. 사진은 사라져가는 것들, 흘러가는 것들을 포착하고 기록한다.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사라지는 것들을 부여잡는다. 그래서 변화의 현장, 역사의 현장에는 늘 사진이, 작가가 있다.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황혜인이 카메라를 들고 나선 곳이다. 여느 지방 도시처럼 평범하고 조용했던 안정리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용산미군기지의 이전으로 2만9천여 명이 살고 있던 마을에 8만여 명이 넘는 인구가 이주해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건물들이 새로 지어지고, 새로운 시설과 비지니스들이 생겨났다. 물리적인 변화 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변화는 일어났다. 누군가가 안정리로 새로운 삶을 일구러 들어올 때, 누군가는 오래된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났다. 지역과 사람에게 닥쳐온 변화, 황혜인의 <리틀 아메리카>는 그 변화의 현장에 대한 기록이자 기억이다. 

생생화화 전시전경

<리틀 아메리카>. 미군부대가 이전하고, 관련된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작은 미국처럼 변한 안정리를 그녀는‘리틀 아메리카’라 불렀다. 전형적인 외곽의 작은 동네에 ‘아메리칸 빌’같은 이름을 가진 주택들이 하나 둘 늘어났고, 거리를 오가는 외국인들이 많아졌고, 이들을 포함한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상권이 생겨났다. 황혜인의 카메라는 이러한 변화를 쫒고 있었다. 그러나 문득 궁금해졌다. 한국도 미국도 아닌 이상하고 어색한 장면들을 사진으로 잡아낸다고 한들, 과연 무엇을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사실 미군부대의 이전은 그리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동북아 작전계획의 변화, 한미관계 등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이 이야기들을 과연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 그저 변화만 담아낸다면, 기록 그 이상의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기록사진이 아닌 현대예술의 지형에서 그녀는 자신의 작업을 어떻게, 어디에 위치시킬 수 있을까?     


마치 이런 질문을 예상이라도 한 듯, 작가는 조근조근 프로젝트의 계획을 설명했다. 황혜인의 작은 미국 이야기 <리틀 아메리카>는 단순히 사진으로 변화를 기록하는 사진 작업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진은 전체 프로젝트에서 중요하면서도 작은 부분이었고, 어쩌면 기록을 위한 매체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사진 자체가 작품이라기보다, 오히려 사진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어색하고 기이한 변화를 공유하고 질문하기에 가장 적절한 도구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생화화 전시전경

안정리에서 비롯되는 그녀의 작은 미국에 대한 이야기는 <기억과 기록>, <이주와 정착>, <팽성읍 a.k.a 아메리칸 빌> 이라는 세 개의 소주제로 조금씩 변주하며 확장해 갔다. 각각의 주제가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서 전개되거나 전후관계 없이, 내부에 몇몇 시리즈의 작품들을 포괄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각각의 시리즈의 작품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주제의 전개나 내러티브 구성 면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상호 보완적으로 의미의 층위를 확장시켜 간다는 점이다.     


프로젝트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억과 기록>은 주민들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지역에 벌어진 변화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곳에 살던 주민의 이야기를 듣는 것, 인터뷰라는 방식이 어쩌면 지나치게 당연하거나 진부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외부의 관점과 시각에서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제멋대로 재단하고, 평가하고, 해석하는 오류를 피하기 위한 가장 솔직하고 기본적인 출발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터뷰는 주민들의 기억을 통해 지역의 과거를 다시 소환하고 이를 현재와 연결하여 다시 미래를 이야기하려고 했던, 객관적일 수 없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나름의 ‘역사지도’를 만들려 했던 작가의 의도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방식이었다.     

생생화화 전시전경

첫 번째 단계가 팽성읍에 살고 있던 주민들에 집중하여 개인이 체감하는 변화의 지점에 방접을 찍었다면 두 번

째 <이주와 정착>에서는 생활해오던 기존의 지역에서 탈각되어 이주해 온 사람들(<Gate Community>), 캠프 험프리의 확장 이전으로 인해 삶의 터전이었던 곳을 팔고 신도시나 타지역으로 이사간 사람들(<생을 기다려온 선>) 이야기이다.  만일 이들의 이야기가 더해지지 않았더라면 없었다면, <리틀 아메리카> 프로젝트는 미군기지의 이전이라는 정책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변화를 맞아야 했던 사람들이 피해자로 드러나고, 변화에 대한 부정적이고 편향된 입장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주자들과 이주자들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질문한다. 단순한 듯 보이는 질문이지만, 막상 그에 대해 답하기가 쉽지 않다. 용산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본인이 살고 있던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과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여 임시 낯선 곳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가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다른 삶, 다르지만 연결될 수밖에 없는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주와 정착>은 이처럼 서로 대칭되는 두 그룹의 아카이빙 작업을 통해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거대한 이주의 파장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기획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접근을 통해 개인서사의 ‘역사지도’를 넘어‘이주문화의 지형도’를 그리고 있다.     


끝으로 <팽성읍 a.k.a 아메리칸 빌>은 미국부대가 있는 팽성읍과 팽성읍 안에서 급격하게 팽창되고 있는 ‘미국마을’에 대한 이미지 아카이브 작업이다. 캠프 험프리의 확장과 더불어 팽성에 유독 많아진 ‘아메리카들’. 나무 뒤에 보이는 집은‘American Vill’이고, 식당은‘American Din*r’(<Diner>, 2018)다. 뜬금없이 주택가에 등장한 자유의 여신상(<Liberty Town>, 2016). 각각의 사진에는 이질적이고 요소들이 공존하여 그 어디에도 없는 곳 같은 느낌을 만들어낸다. 사실 이 시리즈의 사진들은 이미지 자체가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에 다른 시리즈에 비해서 너무 직접적이고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황혜인은 꼼꼼하게 주변을 관찰하고 이미지를 치밀하게 구성함으로써, 이미지 자체의 읽기 즐거움을 더함으로써 그 위험을 교묘하게 피해갔다.       


예를 들어 <American Di*er>의 경우, 먼저 식당 앞에 지나는 외국인들과 American Diner만 언뜻 보면 외국의 한 변두리인가 싶다. 하지만 시선은 곧 거리 뒤편으로 빠져있는 ‘공지네’간판과 그 뒤에 있는 아파트 ‘가든B’로 옮겨가면서 이곳이 외국이 아닌 한국의 어디일 것이라 추측하게 될 무렵, 이미지 바로 앞에 우연처럼 들어와 있는‘카메라 녹화중’이라는 표지판을 통해서 이곳이 미국이 아님을 확신하게 된다. 이처럼 사진 이미지을 보는 내내 시선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적으로 흘러가면서 작가가 숨겨놓은 의도와 의미들을 추측해보게 한다     


<정상영업 #1>에서도 황혜인의 사진이 가지는 이러한 특징들이 잘 들어난다. 사진은 오래된 2층 양옥집의 옆모습이다. 정직하게 풀샷으로 잡은 양옥집의 옆벽에는 세 개의 광고판이 붙어 있다. 맨 위쪽에는‘애플부동산’의 광고다. ‘애플부동산’은 아마도 ‘브라운스톤’‘험프리스’지역 전문 부동산인 듯하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평택 외국인주택 임대인 협의회’의 간판이다. 아마도 ‘미군렌트주택’이 이 지역에 많은 것 같고, 임대인 협의회가 생겨날 만큼 뭔가 소소한 일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임대인 협의회는‘미군부대소식을 정기적으로 보내준다’고 한다. 그 정도로 협의회는 친절하다는 뜻일까? 어쩌면 이 지역에서 미군부대소식을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인가보다라며 시선을 옮기면 맨 아래 상대적으로 작은 간판에‘현위치 매매’와 연락처가 적혀있다. 세 개의 서로 다른 간판들에 쓰여 있는 문구들은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며, 이를 통해 이 지역이 여느 지역과는 다른 상황에 있는 곳이라는 것을 추측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 사진이 광고판을 통한 정보전달을 위한 사진만은 아니다. 광고문구도 흥미롭지만, 왼쪽에 절묘하게 짤려 있는 빨간불이 켜진 신호등과 마침 그때 그곳을 지나가는 자동차가 눈에 들어온다. 이처럼 간판 텍스트에서 신호등으로, 신호등에서 자동차로 시선이 옮겨가면서 작가가 이렇게 이미지를 구성한 의도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아마 간판이 없었더라면, 아주 심심했을 (아니 찍을 이유가 없었을) 사진이었을 것이다. 간판이 들어오면서 이미지는 복잡한 의미의 층위를 배회하고, 그로 인해 평면적이었던 이미지가 시간과 깊이와 운동을 담아내게 된다.      


사실,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저 변화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치밀하게 사건과 상황을 배치하고, 관람자의 시선이 가급적 오랫동안 이미지 안을 배회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쩌면 황혜인의 사진은 그저 기록하는 사진이라기보다는 계속 읽어야 하는 사진인지도 모르겠다. 맨 앞 유모차를 끌고 가다가 슬쩍 뒤를 돌아보고 있는 외국인 아줌마, 그 뒤에 한글로 쓰여 있는 세븐일레븐 미용실, 오른쪽에는 원색 컬러가 돋보이는 파라솔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 파라솔 앞 외국인이 입은 티셔츠에 쓰여 있는 뜻 모를 단어‘Broke/Da/Mouth’, 그리고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바닥에 쓰여 있는 ‘노인보호’라는 글자. 2018년 작품인 <5일장>은 X 자 구도 안에 좌우 앞뒤로 이질적인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서 시선이 이미지의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가며 소실점을 향해 뒤로 물러나게 한다. 시선이 물러나는 사이에 계속해서 많은 정보들이 들어온다. 이미지 정보를 계속해서 입력하면서 머리로는 계속 궁금해진다. 이곳은 과연 어디인가?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 다시 <기록과 기억>, <이주와 정착>을 만나게 한다.      


이렇듯 그녀의 사진은 기록에서 시작하여 전체 프로젝트를 연결하는 연결고리로, 관객에게 질문하는 질문의 수단으로 작동한다. 때문에 인터뷰, 영상, 사진, 책자로 이어지는 <리틀 아메리카>라는 프로젝트 안에서 어쩌면 사진은 꽤 작은 부분이면서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리틀 아메리카>가 사라지거나 변화하는 기록에 그쳤다면, 그냥 지나쳐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황혜인연의 <리틀 아메리카>는 기록으로 소환된 기억, 그 기억에 대한 공유이므로 남다르다. 그리고 사진 이미지와 영상, 책으로 엮인 그녀의 시선을 통해 질문한다. 그것은  변화에 대한, 책임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 사람과 삶에 대한 질문이다. 명시적이지 않으며, 무심하게 툭! 마음으로 던져지는 질문, 쉽게 답할 수 없는/어쩌면 답이라는 것이 없는 그런 질문,  <리틀 아메리카>는 그렇게 까다롭게 질문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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