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들어 선 나는 금세 선입견에 사로잡힌다.
‘전공자도 아닌 내가 미술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미술관을 채운 많은 관람객 중에 가장 뚝딱거리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다. ‘이 그림에서 나는 무엇을 느껴야하지?’
노아 차니 작가는 미술품을 바라보는 독창적인 시각으로 여러 책을 썼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하다. 교수로서 강의를 진행하며 학생들은 ‘유럽의 조각사를 한 시간 안에 톺아보기’, ‘작품 30점으로 배우는 미술사조’와 같은 수업에 열광함을 알게 되었다.
어느덧 세상은 쇼츠(shorts-영상)의 시대가 된 만큼 이러한 수업에 대한 열광도 별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긴 글 아래에는 항상 ‘3줄 요약 바람’ 이라는 덧글은 “긴 글을 읽을 시간은 없지만 짧게 요약을 해주면 좋겠다”와 같은 반응일 테다. 나는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를 한 장씩 읽어나가며 이 책은 미술관이라는 긴 이야기를 솜씨 좋은 장인이 보기 좋은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술작품이 가진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은 많다. 노아 차니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훌륭한 미술품에 나쁜 일이 생길 때>
이러한 제목으로 시작되는 6장은 미술관에서 발생한 스릴러 이야기가 아니라, 미술품 보존과 복원에 관한 내용이다. 시스티나 성당이 10년간의 복원 공사를 끝내고 1994년에 재개관했을 때 전 세계가 탄성을 내질렀는데 실제 우리는 그 작품의 본래의 모습을 처음 보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먼지와 성당의 촛불, 등잔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림이 가진 온전한 색감과 아우라를 반감시켰다. 복원을 통해 작품은 본래의 모습을 회복했다.
과거의 보존 전문가들이 수 세기에 걸쳐 손을 댄 부분을 벗겨내자 원작의 놀라운 부분들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액자의 은박이 입체적인 효과를 내면서 그림 전체가 아주 달라 보이게 만들었다. 또한 그림에 붓질한 얀 반 에이크의 손길뿐 아니라 다양한 ‘손들’을 발견했다.
p220
이 책은 1장부터 11장까지 작가의 사려 깊은 가이드에 따라서 (흡사 강의실에 앉아 있는 듯하다. 잘 따라오고 있지요? 작가의 목소리가 중간중간 등장한다) 회화부터 조각, 미술사까지 도달한다. 책 표지의 부제가 이 책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미술 기초 체력 수업>이라는 말처럼 미술품 앞에 서 있는 내게 감상의 땔감들이 하나씩 쌓여간다.
이 책의 정수는 역시, 5장이다. 조각의 역사를 쭉 훑어가며 꼼꼼하게 실어놓은 작품사진은 2차원의 독서가 3차원으로 확장되는 경험이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봤던 조각상들을 과연 내가 봤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유럽조각의 역사는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소개된 조각 작품 중 <라오콘>은 그 설명이 어찌나 실감이 나는지, 분명 이 작품을 검색창에 찾아보게 될 것이다.
(라오콘)...조각은 이 순간을 보여준다. 진짜 같은 뱀이 라오콘을 물기 직전이다. 라오콘의 몸이 해부학적으로 정확하고 아름답게 묘사되었다. 라오콘의 단단한 근육이 옆에 있는 사춘기 아들들의 여리여리한 몸과 대조를 이룬다. 이 마법의 바다뱀을 물리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라오콘의 얼굴은 괴로움에 휩싸여 있다. 그의 턱수염은 아주 극적으로 깊이 있게 조각되었고, 부드러운 천이 그의 몸을 휘감고 있다. 라오콘의 구부리고 뒤틀린 몸은 아주 부자연스럽다. 정말 아름답고 극적인 조각이다.”
p167, 168
예술작품을 보는 정답은 없다. 각자의 심성과 취향, 그날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감상은 이루어진다. 다만 그러한 감상의 땔감같은 요소들이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땔감을 통해 우리는 좀 더 풍부하게 예술을 감상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