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언니가 있다. 전화를 하면 항상 힘이 없는 목소리다. 행복한 일이 없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언니는 그동안 고생만 했다. 이제는 고생스럽게 일을 안 해도 된다. 속 썩이는 남편이나 자식도 없다. 이제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행복을 누리며 살면 된다. 그런데 항상 “행복할 게 뭐가 있느냐?”라고 한다.
언니는 건강 상태도 그런대로 좋다. 경제적인 면도 넉넉한 상태는 아니지만 먹고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이다. 언니는 젊었을 때 남편의 벌이로 아이들 교육시키는데 충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일을 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안 해도 좋은 상황이다. 특별히 아픈 곳도 없다.
제3자인 내가 보기에 언니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 지금이 훨씬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장본인은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언니의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언니는 ‘사는 재미도 없고, 왜 사는지 모르겠다.’라고 한다. 근처 복지관에 나가서 사람도 만나고, 재미난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라고 해봤다. 돌아온 답은 “이 나이에 그런 것을 해서 뭐 하겠느냐?”라고 한다.
언니는 그동안 힘이 들었어도 자신이 해왔던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그러한 보람을 줄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인 듯하다. <미움받을 용기 2> 내용 중에는 “행복이란 그 자리에 머무는 채로는 향유할 수 없어. 걷기 시작한 길을 쉬지 않고 걷지 않으면 안 되네.”라고 했다.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에서는 행복을 느낄 수 없다. 무엇이 되었든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이 있어야 한다. 즉 목표가 있어야 한다. 언니가 지금의 삶이 재미없고,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 등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언니의 일만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는 100세 시대를 살아간다. 노후에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미리 준비해 놓지 않으면 우리 언니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나이 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미리 찾아내서 걷기 시작한 길을 쉬지 않고 걸을 수 있어야 노후가 행복할 수 있다. 언니가 조금 일찍 취미생활이라도 만들어 놓았다면 지금처럼 재미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억만장자들이 끊임없이 일을 하는 것은 행복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한다. 그들이 일을 하는 것은 오직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닌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냥 놀고먹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언니가 증명하고 있다. 어딘가를 향해 걸을 때 행복하다.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할지 망막할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없다.
80살에도 한글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하게 지내시는 분들도 있다. 우리 언니도 어느 날 너무 재미난 일을 찾아서 행복하다는 얘기를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사는 게 재미없는 나날을 보낸다는 것은 참으로 안쓰럽다. 젊은 날의 고생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는 노후가 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는 100세 시대가 황금시대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외롭고 쓸쓸한 노후가 된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