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작은 섬 여행기
최근 일을 구해서 여수로 내려왔다. 365개의 섬을 품은 해안 도시는 탐험할 거리로 가득했지만 새로 맡은 일을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이 컸다. 약 1년 반 정도 일을 쉬었고, 예전에 일할 때처럼 힘을 내서 달려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또, 내향인이자 개인주의자인 내가 사람들과 잘 어울려 조직 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어쨌든 상황이 닥치면 사회인의 탈을 쓰고, 전문가라는 이름표를 달고 의연히 대처해 나가는 것이 도리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새로운 일을 헤쳐나가면서도 불안은 수그러지지 않았다. 불안에 잠식당해 너무 괴로워지자 이 녀석을 분석해보기로 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사실 새 일을 하기 전에도 불안은 내재되어 있었다. 일을 해도 불안, 안해도 불안이었다. 당장 일을 그만둔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불안은 생존욕구가 있는 생물이라면 갖는 당연한 감각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포식자가 나타나면 불안한 마음이 발동해 열심히 도망쳐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불안전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신체 능력이나 지능이 발달한다. 불안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평생 함께할 동반자라고 받아들이면 불안은 더 이상 적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불안을 길들일 수 있을까? 생존에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불안을 양산하는 이 자기파괴적인 작용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까? 한 마디로, 불안을 극복하고 마음 편히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우연한 계기인지 무의적인 행동인지 작은 섬을 여행하면서 답을 찾았다.
여수의 ‘사도’라는 섬이었다. 자동차는 한 대도 없고 총 주민 수가 40명 남짓한 자그마한 섬이다. 자동차가 없으니 길의 모양새가 다르다. 차가 아니라 인간의 몸에 맞춰 사람 두셋이 걸어갈 폭으로 길이 났다. 바람이 오래된 나무들을 솨아아아 지나가는 소리가 귀에 부드럽게 감긴다. 가게는 없고 파를 심은 밭이 군데군데 일궈져있다. 어느 곳에서든 도보 10분 거리 내 바다가 보인다. 바다 풍경과 바람 소리에 몸을 맡기면 인간으로서 가진 불안은 희미해진다. 골목길을 걷고, 해안길을 걷고, 작은 숲길을 걸으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함께 간 일행에게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불안할수록 자연을 가까이 하고 걸을 것. 불안과 마주하고 불안을 말하고 쓸 것. 최근 생활 환경 변화와 작은 섬 여행에서 얻은 지혜다. 파도가 찾아오고 바람이 불어도 떠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파도와 바람을 반기는 섬처럼, 마음의 날씨이자 친구인 불안을 잘 다독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