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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을 내다

사내 컬럼을 기고하며

by nay

글쓰기는 다분히 자신을 향하는 행위이다.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상념, 아이디어, 고민, 이야기 등을 텍스트로 풀어내는 건, 솔직히 글을 쓰는 사람 본인을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 그걸 쓰지 않으면 너무 답답하니까, 마음이 정리되지 않으니까 반드시 따박따박 써내려 가야 한다. 그러면 복잡하게 얽혔던 생각들이 논리 정연하게 정리가 된다.


아니, 꼭 논리가 없더라도 쏟아내면 그 자체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작가가 쓴 글의 첫 번째 독자는 항상 자기 자신이다. 생산과 동시에 소비가 겹치는 셈이다. 그런데 독자가 1인칭을 벗어나기 시작하면 상황은 좀 달라진다. 독자가 특정되든, 불특정 다수이든 마찬가지다. 내 글이지만 남의 글이기도 하다. 쓰는 건 작가 마음인데 소비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회사 내에 컬럼니스트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 초, 게시판에 떴다. 사보에는 컬럼이 매주 실린다. 이는 커뮤니케이션팀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정기적인 기고문이 올라오는데 구성원이 그중 일부를 담당하는 방식이다. 글 쓰는 사람으로 어찌 관심이 없었겠는가. 매번 매의 눈으로 이 글은 누가 썼을까, 이 사람들은 어떻게 컬럼니스트가 되었을까 궁금했다.


모집 공고를 보면서도 지원을 망설였던 이유는, 독자들을 향하는 글이 되려면 일정 수준의 퀄리티를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기 때문이다. 브런치 독자들을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브런치는 ‘내가 좋아서’ 쓰는 글이라면, 사내 컬럼은 ‘남에게 좋은’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이 없지 않다. 또한 운영하는 부서가 요구하는 글의 방향성, 주제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사보로 발간되는 동시에 일반 대중들도 접근할 수 있는 사이트에 노출되므로 글의 내용과 분량 또한 회사의 공식적인 게시물로 적합해야 한다. 마감일도 있다. 쓰다가 흐지부지 되는 건 안 될 일이다. 오랜 기간 글을 써왔지만 크고 작은 제약들이 생기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여겨왔다. 애초에 글쓰기의 시작은 ‘나’였다는 핑계를 댔다. 그런 핑계들을 덮어두고 컬럼니스트 모집에 지원서를 던졌다. 안되면 말고(섭섭하겠지만)라는 정신 승리를 밑밥 깔았다. 당시 내 마음은 글을 선보일 자리가 탐난게 아니라 컬럼니스트라는 활동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지난 4월 25일이 첫 번째 원고 마감일이었다. 첫 글은 지원할 때부터 이미 정해 둔 주제를 어느 정도 써 둔 상황이라 여유롭게 쓰고 고치는 과정을 반복했다만, 커뮤니케이션팀 담당과 최종 확정을 할 시점에는 자신감이 훅 떨어져 버렸다. 마침내 사보에 공식적으로 올라오고 나니 뭔가 부끄러워졌다. 퇴고할 때는 괜찮아 보였던 내용이 영 미덥지 않다. 글쓰기가 처음이 아닌데도 그렇다. 게다가 글 아래에는 ‘좋아요’, ‘응원해요’, ’후속 기사 강추’ 같은 버튼들이 있어서 독자들의 반응 또한 실시간으로 반영되다 보니 어쩐지 사고 치고 나서 주인 눈치를 살피는 강아지 마냥 안절부절이었다. 그런 뜻이 아닌 걸 알면서도 글이 평가 받는 기분이 들었다.


대충 예상은 했던 일이다. 그럼에도 용기 내어 컬럼니스트를 지원했던 건, 스스로 만들어 둔 틀을 깰 필요가 있음을 느꼈던 까닭이다. 주어진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글을 쓴다는 건 어떻게 보면 내게 있어 새로운 도전이다.

가끔은 편하게 쓰는 글의 즐거움 대신 다른 보람을 찾아볼 때다. 소정의 원고료가 있다는 것도 그렇다. 돈의 액수와 상관없이 원고를 쓰는 사람으로서 제공하는 결과물을 책임진다는 뜻이다. 읽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장치나 표현이 더 정교해야 한다. 독자들의 흥미를 이끌고 그들에게 필요한 내용이 담겨야 한다. 비장한 마음까지는 아니지만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겼다. 특별한 상황이 만들어 내는 묘한 긴장감은 스트레스이자 나를 움직이게 하는 반가운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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