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2] 곰씨의 관찰일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by 나저씨

지난주 금요일에 회사에서 문자가 왔는데, 바빠서 문자를 확인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문자를 확인했는데, 망연자실했다. 회사 동료가 '소천'했다는 문자였다. 문자로 받은 직장 동료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은 몇 년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불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회사를 출근하면서 치료를 받았던 사람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당황스러웠다. 난 소천한 사람과 친분이 없다. 그저 회사를 오가면서 얼굴만 보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나에겐 큰 의미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세상을 떠난 그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50대 미혼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홀로 죽음'에 대한 현실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온건, 그의 죽음을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 알린 사람의 존재 때문이다. 그의 죽음을 알린 건 아내나 자식이 아닌 그의 '매형'이었다.


그의 죽음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나의 죽음을 알릴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나의 죽음에 슬퍼해 줄 사람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우울했다. 항상 머리로만 생각했던 고독사가 갑자기 몸으로 체험되는 듯한 경험이었다. 갑자기 죽음이 실감 나고 외로움이 사무치게 두려워졌다. 물론 죽으면 그걸로 끝이기에 두려움이나 외로움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죽기 전에 홀로 있거나 자신의 죽음의 순간에 함께 있어줄 사람이 없는 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황일 것이라는 건 명백하다. 이 세상에 이별을 고하고 눈을 감는 순간에 내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기분이 어떨지 생각하니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든다. 핸드폰을 열어서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걸어서 내 존재가 현실에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어머니와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고 소개팅으로 만난 친구 A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죽음...... 홀로 세상을 떠난다는 건 정말 무섭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내 죽음 이후에 날 기억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복잡한 마음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뛴다. 공황장애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공황장애가 마냥 싫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아직 내가 죽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고 세차게 뛰는 심장은 아직 내가 존재하는 걸 증명해 주는 것이기에...


아직은 빛이 있음에 (나저씨가 아이폰으로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