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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Dec 31. 2020

한국형 재난 서사의 의미와 가능성

넷플릭스와 한국형 재난 서사

1. 재난 서사에 숨어 있는 사회적 무의식     


영화와 드라마 같은 영상 서사는 대부분 많은 이용자의 관심을 원한다. 이용자의 관심이 곧 특정 서사가 갖는 상업적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방송 프로그램이라면 광고와 직결되어 있고, 영화라면 관객 동원과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영상 서사의 소재 선정과 주제의식은 사회적 분위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후지타 나오야는 『좀비 사회학』에서 특정 서사가 대중의 무의식을 표현하기도 하고 대중의 무의식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고 얘기한다. 그 인과관계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서사가 지향하는 가치와 다루고 있는 서사가 현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2020년 대중의 의식과 무의식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코로나라는 재난이다.     


코로나로 인해 OTT 이용량이 급격히 상승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이용자들은 가정에서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했다. 2020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목받은 매체는 단연 넷플릭스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필자는 대한민국 미디어 산업과 정책을 주로 연구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국내 미디어 산업을 근심을 가지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넷플릭스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파급력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넷플릭스를 통해 제공된 콘텐츠 중 2020년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개인적인 재난이나 사회적인 재난을 다룬 콘텐츠들이다. 이 글에서는 개별 작품들이 가진 미학적 가치나 산업적 영향력을 분석하기보다는 2020년 넷플릭스를 통해 주목받은 한국형 재난 서사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미를 짚어 보고자 한다. ‘비대면’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야외 활동보다는 집에서 미디어를 통해 여가생활을 해온 이용자들은 넷플릭스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했다. 넷플릭스로 인해 K-콘텐츠가 가진 경쟁력이 재조명되기도 했던 것이 2020년이기도 했다.      


코로나라는 재난,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량 증가, 한국형 재난 서사 이 세 가지는 묘하게 맞물려 있다. 코로나 때문에 넷플릭스와 같은 OTT 이용량이 늘어났고 그 중에도 유독 많은 관심을 받은 서사가 재난 서사이기 때문이다.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기나긴 혁명』에서 사회가 공유하는 마음의 집합을 ‘감정의 구조(the structure of feelings)’라고 명명하고 접근한다. 영상 서사는 한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교통과 통신의 발전으로 인해 전세계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지금 넷플릭스와 같이 글로벌하게 유통되는 매체에서 소비되는 콘텐츠는 특정 국가의 정서만을 대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제작된 콘텐츠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미를 짚어 보는 일은 글로벌한 의미를 조명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넷플릭스에서 2020년에 우리에게 소개된 한국형 재난 서사들은 어떤 마음의 구조를 담고 있을까? 혹은 어떤 사회적 무의식을 드러내어 보여주었으며,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   


2. <킹덤>: 권력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외척이 권력을 좌우하는 조선 시대 배경의 사극은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조선 초 태종 때부터 조선 말 고종에 이르기까지 외척을 어떻게 견제하는가는 왕조의 성패를 가늠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다. <킹덤>은 그 익숙한 서사를 임금을 좀비로 만들어 우리에게 새롭게 보여준다. <킹덤>의 설정이 시사적인 것은 외척에 휘둘리는 임금은 물리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권력이라는 관점에서 좀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대한민국은 정치와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항상 존재하는 국가다. 권력을 다루고 있는 사극이 현실로 소환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영상 서사로서 <킹덤>이 얼마나 흥미로운지를 다루는 것이 이글의 목적이 아니므로 왕이 좀비가 되었다는 설정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해 좀 더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       


영의정 조학주(류승룡 분)가 임금을 좀비로라도 만들어 살려 두고자 했던 것은 중전인 자신의 딸 조씨(김혜주 분)가 아직 대를 이를 아이를 출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좀비로라도 왕을 살려 두어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조학주를 비롯한 외척세력들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 이창(주지훈 분)은 자신이 왕권을 잡는 것을 포기한다. 외척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세자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학주는 이미 죽은 왕을 좀비로 만들어 권력을 획득하고자 했고, 이창은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포기한다. 이창의 선택이 옳았는지 옳지 않았는지를 가늠하는 것은 어렵다. 이창의 판단은 정치적 선택이 항상 모종의 딜레마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 딜레마를 발생시킨 것은 죽은 왕을 좀비로 만든 조학주의 판단이었다. <킹덤>은 좀비라는 소재로 이목을 끌고 권력의 정당성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이용자로 하여금 판단을 유보하게 만든다. 시즌3를 본다고 명확한 판단이 가능해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딜레마는 딜레마이므로. 킹덤의 서사가 대중적으로도 영리한 선택을 했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위의 결말은 이용자들로 하여금 시즌3를 궁금하게 했다는 것이다.    

 

3. <#살아있다>, <사냥의 시간>: 헬조선에서 청춘의 생존은 가능한가?     


<#살아있다>는 제목 자체가 호출하는 무엇이 있다. 생존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21세기와 같이 물질적으로 풍족한 시대에 생존이라니? 여기서 말하는 생존은 물리적인 생존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생존이다. <#살아있다>에서 오준우(유아인 분)와 김유빈(박신혜 분)이 처해 있는 상황은 문자 그대로 물리적인 생존마저 힘든 상황이지만 대한민국의 많은 청춘이 느끼는 심정은 사회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이다. 오준우와 김유빈에게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것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좀비들이지만 불안정한 현대인들의 정체성 자체가 좀비와 닮아있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불안한 위치에 놓여 있는 청년층에 대한 메타포로 좀비를 호명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김홍중은 『마음의 사회학』에서 IMF 이후 사회를 지탱하던 패러다임이 ‘진정성’에서 ‘생존주의’로 전환되었다고 지적한다. 진정성과 같은 가치를 추구하기에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진 것이다. 이와 같은 생존경쟁은 자칫 서로를 좀비 같은 존재로 경계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나는 오준우와 김유빈이 구조될 때 과연 저들이 구조된 이후에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환경에서의 생존 문제를 다룬다. <사냥의 시간>은 청춘의 불안한 심리를 잘 담아 냈던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이 연출해 화제를 모았다. 넷플릭스에서 방영 여부를 둘러싼 공방도 있었던 작품이다. <파수꾼>에 출연했던 이제훈과 박정민이 다시 출연했고 안재홍, 최우식, 박해수도 출연했다. 다른 작품과 달리 작품 자체에 대한 설명을 길게 하는 것은 <사냥의 시간>이 그만큼 ‘청춘’에 관한 영화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냥의 시간>의 배경은 불분명한 근미래다. 분명한 것은 도시의 활력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청년들에게 다가올 미래는 공포에 가까워 보인다는 것이다. 도박장의 돈을 털고자 하는 준석(이제훈 분), 장호(안재홍 분), 기훈(최우식 분), 상수(박정민 분)의 계획은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박해수 분)에게 추격을 당하면서 이들은 다시 위기에 몰린다.     


<사냥의 시간>이 제시하는 근미래의 설득력이나 미학적 가치와 무관하게 <사냥의 시간>이 제시하는 배경은 현재 청년들이 놓여 있는 처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디스토피아에서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포기하거나 일탈하거나 둘 중 하나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사의 특징이 생존에 대한 공포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면 대한민국 청년들이 느끼는 불안과 본질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4. <반도>: ‘반도는 한계인가 경계인가     


<반도>는 여성 캐릭터가 돋보이는 영화다. 특히, 독보적인 레이싱 실력을 뽐내는 준이(이레 분)의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반도>의 카레이싱 장면이 인상적인 것은 대한민국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기 때문이고, 카레이싱을 주도하는 주체가 남성이 아닌 여성인 이레라는 점이다.        


<반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지상과제는 생존과 탈출이다. 탈출이 요원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좀비를 피해 다니면서 폐허 속에 남아 있는 것들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탈출을 소망하는 이들은 탈출이라는 기적을 기대하며 구원을 바라고 있다. ‘반도’라는 제목이 시사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 한계다.      


연상호 감독이 연출했던 전작 <부산행>의 속편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반도>에서는 <부산행> 만큼 생존을 위해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이기성과 탐욕이 드러나 있지는 않다. <반도>에서 느껴지는 것은 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좀비가 등장하는 서사에서 느낄 수 있는 생존에 대한 불안감과 더불어 고립감이다.      


올해 개봉한 <강철비2: 정상회담>과 같은 작품은 지정학적 위치와 국제질서로 인해 고립되어 있는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에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반도>에서는 좀비로부터 탈출 할 수 없는 극적 상황이 한국이 실제로 겪고 있는 국제 관계에 투영되면서 고립감과 절망감을 더하는 효과를 낸다. <반도>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반도라는 땅이 한계인가 경계인가를 다시 묻게 만든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한계가 아니라 더 뻗어 나갈 수 있는 경계이기를 소망할 수밖에 없지만.      


5. <>: 서태지로 1990년대를 소환하다     


2019년 말과 2020년 초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이 중 한 명은 양준일이었다. 양준일을 비롯해서 <슈가맨>이라는 프로그램이 주로 호출 한 것은 1990년대였다. 서연(박신혜 분)과 영숙(전종서 분)은 전화를 하면서 자신들이 20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집에 살고 있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서태지라는 공동의 관심사는 둘 사이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다. 주도권은 서연의 미래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영숙이 가지고 있다. 현재가 과거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1990년대는 지금의 대한민국 미디어, 문화산업이 있을 수 있게 한 혁신과 실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시기이다. 1990년대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에 있어 가장 역동적인 시기였다. 내가 가장 감수성이 민감한 시기인 10대에 1990년대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1990년대가 호출되는 것을 보면 1990년대 대중문화가 역동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넷플리스에서 제작되거나 유통되는 K-콘텐츠에서 1990년대를 호출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나는 이글을 <콜>이 호출하고 있는 1990년대와 2020년대에 관한 글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2020년이 시작될 즈음 내가 소망했던 바는 1990년대적 에너지가 2020년대의 새로운 에너지와 역동적으로 조우하는 것이었다. 연초에 이와 관련된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노창희, 2020. 1. 27. 2020년대 대한민국 콘텐츠 경쟁력 높일려면 1990년대적 역동성을 소환하라, <아주경제>). 코로나가 오기 전 상황이었다.        


이 글의 주제인 재난 서사는 생존, 불안과 같은 암울한 정서와 가까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어두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호오를 떠나 <콜>에 등장하는 서태지가 상징하는 것은 혁신과 실험이다. 넷플릭스를 상징하는 것 역시 혁신과 실험이다. 국내 미디어 산업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대한민국 미디어 산업과 넷플릭스 사이의 관계는 현재 갈등과 협력이 미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듯한 양상이다. 득과 실을 따지는 일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득이 많다 실이 많다를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 또한 조심스럽다. 아마 2021년에도 넷플릭스를 통해 많은 K-콘텐츠가 유통될 것이다. 2021년에는 1990년대가 어떻게 소환될 것인가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대한민국과 넷플릭스 모두에게 의미있는 협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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